10년간 진단 못한 '이 병'...최신 분석법으로 실마리

채종희 서울대병원 교수팀, 유전체 변이 식별 기법 구축

국내 연구진이 신경세포핵내봉입체병이라는 신경 희귀병을 진단할 수 있는 분석법을 개발했다.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연구진이 희귀 신경퇴행성 질환의 유전자 변이를 식별하는 분석 기법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10여 년간 미진단 상태로 살아온 청소년 환자의 병명을 성공적으로 찾아낼 수 있었다.

해당 환자는 19세 남성 A군으로, 9살 때부터 운동기능이 퇴행하면서 보행장애와 균형을 잡지 못하는 실조증 등 신경 증상을 앓았다. 자기공명영상(MRI)에서 백질뇌병증과 소뇌 위축 소견이 나왔지만 유전자 진단이 어려워 정확한 병명을 찾지 못했다. A군과 같은 증상을 앓던 누나가 16세 나이로 사망하면서 정확한 진단과 그에 따른 치료 계획 수립이 절실해졌다.

채종희·문장섭·이승복 서울대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교수와 최정민 고려대 의과학과 교수 공동연구팀은 2019~2023년 서울대병원에 내원한 환자들과 한국 바이오뱅크 코호트에 등재된 대규모 유전체 정보를 분석했다.

앞서 A군은 '신경세포핵내봉입체병' 의심 진단을 받은 바 있다. 이는 신경세포 핵 안에 비정상적인 단백질(봉입체)이 축적되는 신경퇴행성장애다. 발병 원인은 NOTCH2NLC 유전자에서 GGC 염기서열이 비정상적으로 반복되는 '단연쇄반복 변이' 때문이다. 성인기에 발병하며 백질뇌병증, 진행성 인지기능 장애, 실조증과 같은 다양한 신경학적 증상을 동반한다.

신경세포핵내봉입체병 환자 뇌 MRI 사진과 정상인 뇌 MRI 사진 비교 [사진=서울대병원]
그러나 유전체를 짧은 단위로 나눠 분석하는 '쇼트리드(short read)'를 이용한 기존의 차세대염기서열분석은 단연쇄반복 유무를 식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신경세포핵내봉입체병 의심 소견이 나타나더라도 정확한 유전자 진단이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연구팀은 단연쇄반복 변이를 식별하기 위해 유전체를 긴 단위로 분석하는 롱리드(long read) 방법을 도입한 최신 분석 기법을 구축했다. 이를 활용해 서울대병원에 내원한 원인 불명 백질뇌병증 환자 90명 중 신경세포핵내봉입체병 소견이 있는 환자의 유전체 분석이 이뤄졌다.

그 결과, 16명(17.8%)에서 단연쇄반복 변이가 확인됐다. 즉 국내 원인 불명 백질뇌병증 환자 10명 중 1~2명은 신경세포핵내봉입체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A군 역시 이 과정에서 최종 확진 받았으며 현재 연구진과 함께 적절한 치료 계획을 수립해나가고 있다.

나아가 연구팀은 국내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 3887명의 유전체 정보(한국 바이오뱅크 코호트)를 분석했다. NOTCH2NLC 유전자의 GGC 염기서열 반복 횟수 분포를 확인하고, 이 염기서열이 '65회 이상' 반복될 때부터 신경세포핵내봉입체병으로 추정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 기준을 적용한 결과, 한국 바이오뱅크에 등재된 미진단 신경퇴행 환자 6명을 신경세포핵내봉입체병으로 새롭게 추정할 수 있었다.

채종희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희귀병 진단 연구에 있어 대규모 데이터에 입각한 유전체 분석의 중요성을 보여준다"며 "국가 차원에서 구축한 바이오 빅데이터를 초석 삼아 향후 희귀병의 새로운 진단법 및 치료제 개발로 이어지는 확장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신경유전학(Neurology Genetics)》 최신호에 게재됐다.

    임종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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