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와 젠더, 뇌 서로 다른 영역에 영향 미쳐”
섹스는 시각처리, 감각처리 및 운동제어 영역에 영향…젠더는 성 관련된 감각 영역과 주의력, 사회적 인지 및 감정처리 영역에 영향
아이들의 뇌를 분석해본 결과 생물학적 성별인 섹스(sex)와 사회적 성별인 젠더(gender)가 뇌의 다른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12일(현지시간) 《사이언스 애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된 미국암학회(ACS)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CNN이 보도한 내용이다.
9세와 10세 미국 어린이 약 500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 연구진은 서로 다른 경험이 뇌를 형성하듯 섹스와 젠더가 어떻게 뇌에 “측정 가능하고 독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최초의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논문의 주저자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 오크스에 있는 파인스타인 의학연구소와 주커 힐사이드병원의 엘비샤 다말라 교수(정신과)는 “앞으로 뇌를 더 잘 이해하려면 섹스와 젠더를 따로 구별해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섹스를 출생 시 아이에게 부여된 것으로 정의했다. 미국에서는 임상의가 생식기를 기준으로 성별을 분류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성 또는 남성으로 분류되며, 나머지는 생식적이고 해부학적 구조가 남녀의 이분법에 맞지 않는 간성(intersex)으로 분류된다.
이와 달리 젠더는 개인의 태도, 감정, 행동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역할로 정의됐다. 연구진은 특히 젠더는 이분법적이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을 여성 또는 남성으로만 식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섹스와 젠더는 모두 인간 경험의 핵심 부분이다. 이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인식하는 방식과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의 핵심이다. 둘 다 건강뿐만 아니라 행동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은 미국에서 4757명의 어린이(출생 시 여성으로 지정된 2315명과 출생 시 남성으로 지정된 2442명)의 뇌 영상 데이터를 조사했다. 이들은 미국에서 두뇌발달과 아동건강에 대한 장기연구인 청소년 뇌 인지 발달(ABCD) 연구에 참여한 9세와 10세의 어린이들이었다. 10년에 걸쳐 ABCD 연구에 참여한 어린이들은 포괄적인 신경 영상, 행동, 발달 및 정신과 평가를 받았다.
연구진은 자기공명영상(MRI)과 같은 검사 외에도 연구를 시작할 때와 1년 뒤 아이들과 그 부모들을 대상으로 젠더에 초점을 맞춘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아이들은 어떻게 그들의 성별을 표현하고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놀 때 생물학적 성별에 따른 행동이나 아이에게 ‘젠더 위화감(gender dysphoria)’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젠더 위화감은 출생 시 지정 받은 생물학적 성정체성과 스스로의 젠더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아 발생하는 임상적 고통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이다.
연구진의 일원인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다니 S 바셋 교수(생명공학 신경학 정신의학)는 부모들이 연구의 핵심적인 부분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이들이 특정한 종류의 젠더 행동이나 젠더 표현을 보일 때 이는 부모와 다른 보호자, 친구, 가족 등이 아이들과 상호 작용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자녀의 젠더에 대한 부모의 인식에 대한 정보를 통해 연구진은 자녀의 사회적 환경과 그것이 자녀의 뇌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인공지능의 기계학습을 통해 아동의 성별을 예측할 수 있는 모델을 구축하고 뇌 스캔 데이터를 토대로 젠더를 보고하게 했다. 연구진이 아이들의 뇌 스캔을 조사한 결과, 성별은 시각 처리, 감각 처리, 운동 제어와 관련된 뇌의 다양한 영역과 실행 기능과 관련된 일부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아동의 생물학적 성별을 예측하고 뇌 스캔을 통해 사회적 성별을 보고할 수 있는 모델을 구축한 머신러닝이라는 일종의 인공지능(AI)을 사용했다. 뇌 스캔 결과는 생물학적 성별이 시각 처리, 감각 처리 및 운동 제어에 관여하는 뇌의 여러 영역과 정보를 조직하고 통합하는 실행 기능에 관여하는 일부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젠더는 성과 관련된 일부 감각 관련 네트워크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이지만 주의력, 사회적 인지 및 감정처리와 같은 실행 기능과 관련된 다양한 뇌 네트워크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감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말라 교수는 “젠더가 어떻게 뇌에 지도화되는지를 포착할 수 있다는 사실은 기본적으로 젠더가 우리 뇌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인간 뇌의 구조는 전문지식과 경험에 의해 형성될 수 있다. 지도나 GPS 없이도 영국 런던의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광범위한 시험을 거쳐야 하는 런던 택시운전사들에 대한 연구는 다른 사람들보다 공간 기억력과 길찾기 관련된 뇌의 부분인 해마의 뒤쪽 부분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줬다. 다말라 교수는 “그와 비슷하게 개인으로서나 인간으로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젠더에 대한 전문가”라면서 “따라서 젠더도 우리 뇌에 지도화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뇌 스캔과 설문조사로 포착한 제한된 스냅샷만으로 어떤 사람이 어떤 젠더를 갖게 될 것인지 예측할 수 없었다. 연구진은 젠더가 반드시 정적인 것이 아니며 성별에 대한 개인의 이해는 평생 동안 바뀔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연구는 또한 누군가의 환경에서 어떤 것들이 섹스나 젠더 측면에서 뇌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지 판단할 수 없으며, 개인의 성적 지향이 무엇인지도 식별할 수 없었다. 바셋 교수는 “성적 지향은 섹스 및 젠더와 별개이며 뇌에서 다르게 지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언젠가는 섹스와 젠더가 개인의 삶에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그리고 이들이 평생 동안 서로와 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더 많이 배우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들은 또한 다양한 문화가 개인의 젠더와 두뇌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연구진의 일원인 미국 럿거스대의 아브람 홈즈 교수(정신의학)는 신경과학 분야에서 연구 내 포용성에 대한 편견과 장벽이 인정되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됐다면서 섹스와 젠더 측면에서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게 되면 잠재적으로 과학자들이 뇌 관련 질환을 앓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더 나은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이번 연구는 태어날 때 남자로 지정된 사람들이 약물 남용 및 주의력 결핍 장애 진단을 받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점을 발견했다.
홈즈 교수는 “성별과 젠더가 반드시 질병 발생률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속한 문화가 특정 질병이 발생할 수도 있고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어린이가 발달 전반에 걸쳐 겪는 환경적 압력의 유형은 초기 뇌 생물학과 관계없이 질병을 경험할 위험을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고 밝혔다.
해당 논문은 다음 링크(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adv.adn4202)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