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주목받았던 '은행잎추출물', 왜 지금 다시 눈길?
올들어 16건 품목허가...위축된 전문약 시장 대체재 역할 기대
“은행잎추출물 혈액순환개선제 시장 과열 조짐.”
31년 전인 1993년 5월 인터넷에 보도된 한 기사의 제목이다. 당시 은행잎추출물 특허가 만료됨에 이를 주성분으로 한 혈액순환개선제 품목 허가 신청이 잇따랐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같은 양상이 30여 년이 지난 2024년에 판박이처럼 재연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5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최근 은행잎건조엑스 성분을 함유한 신제품 품목 허가가 대거 이뤄지고 있다.
이달 1일 이연제약이 ‘징코맥스정240mg’을 승인받았고 지난달엔 현대약품의 '리플린정240mg'을 비롯해 3개 제품이 허가를 받았다. 4~5월엔 종근당 '코그닉스정' 등 9개 제품이 승인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들어 은행엽건조엑스 성분 품목 허가는 모두 16건에 이른다. 지난해 연간 6건이 품목 허가를 받은 것과 비교하면 폭발적 증가세다.
은행나무 잎에서 유효성분을 추출해 말린 은행엽건조엑스는 1990년대 크게 주목 받았다. 오랜 기간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다가 유럽과 미국 등에서 은행엽건조엑스의 효능 논란이 일고, 건강보험 급여가 제한되면서 성장세가 한풀 꺾인 모습이다.
현재 은행엽건조엑스 성분의 대표 주자는 SK케미칼의 '기넥신에프'와 유유제약의 '타나민'이다.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지난해 기넥신에프 매출은 236억원, 타나민은 106억원으로 1, 2위를 기록했다.
이 성분이 30년 만에 다시 제약사들의 관심을 모으는 것은 지난해부터 인지저하 개선 관련 전문의약품 시장이 흔들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인지장애 개선제 성분인 아세틸엘카르니틴, 옥시라세탐 등이 임상 재평가에서 유효성 입증을 못해 시장에서 퇴출됐고, 연간 시장 규모가 6000억원이 넘는 뇌기능 개선제 콜린알포세레이트도 임상 재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이 시장이 위축됨에 따라 은행잎건조엑스 성분의 일반의약품이 어느 정도 대체재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렇게 30년 전 모습이 '데자뷔'로 다가왔지만 그때와 다른 게 있다. 최근 허가를 받은 품목들은 모두 240mg의 고용량 제품이라는 점이다. 그간 시장에는 40mg, 80mg, 120mg 용량이 많았는데, 하루 1회만 복용하는 240mg 제품이 대거 추가되고 있는 것이다.
40mg·80mg은 말초동맥순환장애, 어지러움, 이명 등에 쓰이고, 1일 2~3회 투여가 권장된다. 120mg은 이명, 두통, 기억력 감퇴, 집중력 장애 등의 치매성 증상을 수반하는 기질성 뇌 기능 장애 치료에 1일 2회 투여한다. 240mg은 집중력 저하, 기억력 감퇴, 현기증(동맥 경화 증상) 증상이 동반되는 정신 기능 저하에 1일 1회 복용할 수 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기존 용량으로는 하루 두세 번 먹어야 했는데 240mg은 한 번만 복용하면 되니까 고령 환자들의 선호도가 높다”며 “또한 뇌기능 전문의약품(콜린알포세레이트) 재평가에 따른 레버리지 효과로 은행엽건조엑스가 잘 팔릴 것이란 기대감을 가지고 허가받는 회사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품목허가가 이어지는 만큼 하반기엔 시장에 여러 제품이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약품이 올해 11월 제품 출시할 예정이고, 대원제약도 하반기 중 약을 선보일 계획이다.
대원제약 관계자는 “고령화 시대에 뇌 기능 개선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고, 집중력 저하를 겪는 젊은 현대인들이 늘고 있다”며 “시장 규모도 확대되고 있다는 판단에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