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의 재발견…배가 볼록 나오는 ‘이 희귀병’ 호전됐다

서울아산병원 이범희·황수진 교수팀 10년간 추적 연구

장기가 비대해지는 증상 탓에 배가 볼록해지는 ‘고셔병’이 최근 감기약 복용으로 증세가 크게 호전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왼쪽) 고셔병 환자 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일러스트=서울아산병원]
감기약으로 흔히 쓰이는 암브록솔 성분이 장기가 비대해져 배가 볼록해지는 ‘고셔병’ 환자의 치료에 효과를 보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유전적인 원인으로 체내 세포에 특정 당지질이 축적되는 고셔병은 국내 10만명 당 1명 꼴로 발생하는 희귀병이다. 주요 증상으로는 간·비장 비대 외에 △만성 피로 △혈소판 감소 △빈혈 △폐와 뇌기능 저하 등이 나타난다. 증상이 심각하면 뇌전증 발작, 보행 장애와 같은 신경 퇴행까지 일어날 수 있다.

다행히 ‘애브서틴주(성분명 이미글루세라제)’라는 치료제가 개발돼 쓰이고 있지만 발작, 인지기능 장애 등 신경학적 증상까지 치료하지는 못한다. 이에 따라 장기적으로 증상을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이 필요한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센터 이범희·황수진 교수 연구팀은 지난 2013년부터 약 10년 동안 고셔병 환자 중 신경학적 증상이 있는 환자 6명(증상이 약한 환자 4명, 강한 환자 2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방법은 기존 표준 치료인 효소대체요법(체내 이상이 있는 효소를 정상 효소로 대체하는 기술)과 암브록솔 치료법을 병용해 장기 추적 관찰하는 식이었다.

암브록솔은 가래를 묽게 해 배출을 돕는 약물로, 감기약으로 흔히 쓰인다. 과거 이 약이 고셔병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발표되긴 했지만, 10년 이상 치료 예후를 추적 관찰한 연구는 없었다.

관찰 결과, 연구 참여자들의 신경학적 증상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증상이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증상이 약한 환자의 발작 빈도는 대략 2주에 5회 정도였다. 그러나 병용 치료 후 초기에는 발작 횟수가 조금 증가하다가 5년 후부터 2주에 약 2번, 9년 후부터는 발작 증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신경학적 증상이 진행된 환자들도 2주에 약 10번 발생하던 발작 증상이 치료 10년 후에는 절반인 5번 정도로 크게 줄어들었다. 6명 중 5명의 환자에게서 저요산혈증, 기침 및 가래, 단백뇨 등의 가벼운 부작용이 있었지만 모든 환자가 큰 문제 없이 회복됐다.

환자들의 고셔병 삶의 질 점수(mSST)를 측정한 결과 신경학적 증상 발생 초기 환자들은 평균 7.5점에서 병용 치료 10년 후 6점으로 낮아졌으며, 신경학적 증상이 진행된 환자들은 평균 17점에서 11점으로 낮아졌다. 해당 점수는 낮을수록 삶의 질이 높은 것을 의미한다.

이범희 교수는 “아직 고셔병 신경학적 증상 치료를 위한 약이 개발돼 있지 않다 보니 하루에 수십 알의 감기약을 복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면서도 “암브록솔 성분의 약으로 고셔병의 신경학적 증상을 큰 부작용 없이 호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장기 연구로 밝혀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퇴행성 뇌질환인 파킨슨병 환자의 5% 정도가 고셔병 발생 유전자의 보인자라고 알려진 만큼 고셔병과 파킨슨병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제 개발에 이번 연구 결과가 바탕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미국혈액학회지(American Journal of Hematology)》 최근호에 발표됐다.

닥터콘서트
    임종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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