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P-1 비만약 '살빼는 비밀' 국내 연구진이 풀었다
최형진 서울대 의대 교수팀, '인위적 배부름 이유' 세계 최초 규명
'삭센다'나 '위고비' 등으로 친숙한 'GLP-1(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1)' 기반 비만 치료제들이 가진 강력한 체중 감량 효과의 비밀이 풀렸다.
GLP-1은 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혈당조절과 포만감 유지, 식욕억제 등에 깊이 관여하는 정도로만 알려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국내 연구진이 이들 GLP-1 비만약이 뇌 시상하부의 배부름에 관여하는 신경들을 활성화해 음식을 보는 것만으로도 배부름 효과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규명하는데 성공했다.
최형진 서울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내분비내과 전문의) 연구팀이 진행한 연구는 ‘GLP-1의 시상하부 회로를 통한 인지적 배부름 조절 메커니즘 및 GLP-1 유사체의 치료 원리 규명(영문 제목 GLP-1 increases preingestive satiation via hypothalamic circuits in mice and humans)’이라는 제목으로 세계적 학술지인 ≪사이언스(Science)≫ 28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이 연구에는 연구실 소속 김규식(의과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과 박준석(서울대 의대 졸업) 학생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다.
먼저 연구팀은 GLP-1 비만약을 투여한 환자 사례를 통해 단순히 음식을 생각하고 보는 것만으로도 배부름이 생겼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따라서 연구는 GLP-1에 의해 활성화되는 뇌 부위를 찾기 위해 영상장비인 MRI(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를 통해 환자의 뇌 조직에 위치한 GLP-1 수용체의 분포를 분석했다.
그 결과 GLP-1 수용체는 환자들의 뇌 구조 상 등쪽 안쪽 시상하부 신경핵(Dorsomedial hypothalamus, 이하 DMH)에 많이 분포했다. 쥐 실험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나아가 연구팀은 뇌 신경신호 전달 과정을 빛으로 볼 수 있는 광유전학을 이용해 쥐의 DMH에 있는 GLP-1 수용체를 인위적으로 활성화했다. 그러자 배부름이 유발된 쥐들은 식사를 멈췄으며, 반대로 해당 수용체를 억제하자 배부름이 없어져 식사를 지속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연구팀은 뇌 신경전달 신호를 눈으로 볼 수 있는 '칼슘 이미징'을 통해 특정 장소나 행동이 음식과 연관돼 있다는 것을 쥐에게 학습시켰다. 레버를 누르면 음식이 나온다거나 특정 장소에 음식을 놓는 방식이다.
학습한 쥐에게 이러한 식사 상황을 제공하자 DMH에 있는 GLP-1 수용체 신경이 활성화됐다. 이에 따라 배가 부르다고 생각한 쥐는 음식을 구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쥐에게 GLP-1 약물을 투여했을 때에도 동일한 뇌 신경이 더 민감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 교수는 이같은 작용원리를 활용한다면 기존 비만 치료제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은 줄이고, 약효는 극대화할 수 있는 신약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현재 삭센다나 위고비는 미식거림, 구토, 무기력증 등의 부작용이 보고된다"며 "뇌 시상하부의 신경 활성화 기술을 잘 이용한다면 딱 배부름만 느끼게 할 수 있어 부작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들 GLP-1 비만약은 아미노산 염기서열 합성을 해야 해서 가격이 굉장히 비싸다"며 "이 기술을 이용해 아스피린과 같은 저분자 화합물 합성을 시도한다면 저렴하게 경구 알약으로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