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닫았으면 한의원으로?”…의협-한의협 갈등 ‘새로운 불씨’

[박효순의 건강직설]

대한한의사협회가 최근 전국 한의원·한방병원에 배포한 대국민 포스터. 의대 정원 파동에서 한의계의 역할 확대를 내세우고 있다. [사진=대한한의사협회 제공]
“의사 파업, 양방 의원이 문을 닫았다면 근처 한의원·한방병원을 이용하세요!”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회장 윤성찬)가 의대 정원 문제로 촉발된 의대생 휴학·전공의 사직·의사 휴진 사태에 대해 최근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언론 홍보활동의 강화가 두드러진다.

한의협은 지난 13일 보도자료를 통해 “의료 공백에 따른 국민 불편 최소화를 위해 총파업 당일(6월 18일) 야간진료 권고했다”고 밝혔다. 17일에는 “양방의 진료 총파업에 따른 의료 공백으로부터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진단과 치료에 적극 나설 것”임을 선언하고, “전국의 한의원과 한방병원을 대상으로 다빈도 질환 포스터 5종을 시리즈로 제작해 배포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20일에는 “대법원 제2부가 최근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과 관련한 재상고심 선고에서 ‘상고기각’ 결정을 내림에 따라,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활용하는 것은 합법임이 최종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21일에는 “양방 의료기관의 휴진율 50%가 넘는 의료취약지역에 공중보건 한의사의 적극적인 활용을 촉구했다”면서 “정부와 지자체는 행정지도와 명령 통해 공중보건 한의사의 활용 폭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약 1주일 사이에 언론 홍보자료를 중점 배포한 배경에는 의대 정원 파동이 장기화함에 따라 이 기회에 국민건강과 질병 치료에 대한 한의사들의 역할을 제고하고, 한의약의 위상을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할 계획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의협에 따르면, 한의원과 한방병원들은 진료 시간 연장을 통해 감기, 급체와 같은 다빈도 질환 등 일차진료를 포함한 한의 진료는 물론, 응급환자 발생 시 효율적인 연계와 처치도 진행하게 된다. 전국 한의원·한방병원에 온라인을 통해 배포된 포스터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걸리는 질환인 △감기 △급체(소화불량) △담결림 △발목염좌 등 4종, 통합 포스터 1종(사진) 등 총 5종이다.

한의협은 “해당 질환들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침과 뜸, 부항, 추나, 보험용 한약 제제를 활용해 적은 부담으로 충분히 한의원에서 치료할 수 있다”면서 “한의원에 내원하시면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으실 수 있다는 점을 널리 알림으로써 의료 공백에 따른 국민의 불안과 불편함을 최소화한다는 차원에서 이번 포스터를 제작·배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한의협은 “일차 의료, 필수 의료 분야에서 3만 한의사의 역할을 확대하고, 한의약을 적극 활용한다면 국민의 소중한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진료 선택권과 편의성은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현재, 의대 정원 파동(일명 의사 파업)으로 생긴 의료 공백과 이 때문에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해 한의협이 나서겠다는 점에 대해 국민 여론은 호의적이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의협·회장 임현택)와 한의협이 ‘불구대천, 견원지간’ 등의 용어가 무색할 정도로 서로 배척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한의협의 공세는 향후 의협의 반격 의지에 기름을 붓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한의협과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18일 집단휴진을 강행해 휴진율이 50%가 넘은 전국의 시·군·구는 전북 무주군(90.91%)과 충북 영동군(79.17%), 충북 보은군(64.29%), 충남 홍성군(54%) 등 총 4곳이다. 이들 지자체는 정부가 별도의 행정처분을 내릴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가 김원이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23년 5월 기준으로 전국 1217개의 보건지소 중 무려 340곳의 보건지소에 공중보건 의사가 없다.

이외에도 한의협은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서둘러야 하고, 아울러 헌법재판소가 한의사의 사용을 인정한 5종의 의료기기(안압측정기, 청력검사기, 안굴절검사기, 세극등현미경, 자동시야측정장비)와 혈액검사 등도 하루빨리 행위 등재가 이뤄져야 한다고 보건당국에 촉구하고 있다.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 이후로 뇌파계와 X-레이 방식 골밀도측정기까지 한의사의 사용을 허용하는 법원의 판결이 잇따르고 있는 만큼, X-레이와 관련된 법령도 신속히 개정해 줄 것을 보건복지부에 요청했다.

한의협의 이런 일련의 행보에 대해 의협은 아직 별다른 대응이 없다. 정부와 첨예하게 대치하는 상황에서 신경 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여력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한의협이 요즘처럼 ‘명분도 살리고 실리도 챙기는’ 일련의 정책을 계속 펴나가는 것에 대해 의협 한방대책특위에서 조만간 강도 높게 칼날을 세울 것이란 전망이 높다. 그래서 이번 ‘의대 정원 파동’의 장기화는 정부와 의협(의료계)의 대치에 이어 ‘의협과 한의협 갈등’의 심화라는 새로운 국면을 낳고 있어 씁쓸하기까지 하다.

    박효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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