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봉 "뇌전증 '3분진료' 하는데, 韓의료가 세계 최고?"

"미국선 30~60분 진료...지역에서 진료받게 '거점 지역병원' 운영을"

홍승봉 대한뇌전증센터학회장(맨앞)과 패널들이 뇌전증 국제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임종언 기자

"뇌전증은 약 주고 증상만 치료해서 되는 질환이 아니에요. 정신적인 치료도 함께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3분 진료를 하고 있어요. 세계 최고 의료는 웃기는 말입니다"

홍승봉 대한뇌전증센터학회장(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은 2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뇌전증 국제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국내 뇌전증 치료에는 정신사회적인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거점 지역병원' 운영을 제안했다.

뇌전증은 뇌신경세포에 과도한 전류가 흘러 반복적으로 신체 경련 발작이 일어나는 뇌병이다. 국내 환자 수는 40만명 정도이며 이중 약 30%(11만명)는 약물치료로 증상 조절이 안되는 난치성 뇌전증이다. 주목할 점은 이들의 높은 '돌연사율'이다. 난치성 뇌전증 환자는 일반인에 비해 돌연사 위험이 17배 높으며, 중증으로 발전 시 그 비율은 30배까지 높아진다.

홍 교수는 "뇌전증 환자 중에 멀쩡하게 음악하던 분이 갑자기 사망했는데 1년에 고작 1~2번 밖에 발작을 안하던 환자였다"소개하면서 "현재로선 뇌 병변을 제거하는 수술이 최선인데, 수술 시 돌연사율이 3분의 1로 감소되고 14년 장기 생존율도 50% 상승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 병은 치료 외적인 관리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만연해 환자가 정신질환에 노출될 위험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뇌전증 환자는 대체로 우울증 위험은 30~50%, 불안증은 20~40%, 자살 생각은 20~30%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그는 "뇌전증 환자는 병명을 쓰기만 해도 서류 전형에서 탈락되는 사례가 많다"며 "이 때문에 환자에게 병이라고 소개하지 말고 '뇌에 조금 불안정한 조직이 있다'고만 말하라고 권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홍 교수는 치료와 심리적 지원이 한번에 해결되는 '포괄적 뇌전증 치료'를 제시했다. 이는 현재 3분 진료의 한계를 개선하고 각 지역에 '거점 지원병원'을 지정해 집중 관리하자는 방안이다. 이를 테면 미국에선 거점 병원이 260개, 일본에선 28개가 운영되고 있다. 이에 따라 환자는 지역에서도 질 높은 포괄적 관리를 받을 수 있다.

홍 교수에 따르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현재 뇌전증 수술을 할 수 있는 전국 20개 상급종합병원에 뇌전증 지원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역의 환자는 굳이 서울 대형병원에 올 필요가 없어 접근성이 높아진다.

각 지역 거점병원에는 '뇌전증 지원 코디네이터'를 한 명씩 배정한다. 코디네이터의 역할은 △약물·수술·식이요법 안내 △환자, 가족 전문 상담 △뇌전증 인식 개선 활동 등 치료 외적인 부분을 담당하며 환자의 정신 질환 등 2차 피해를 예방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를 위한 예산 확보를 제안했다. 그는 "미국은 뇌전증 진료에 최소 30~60분을 쓰는데 우리나라는 3분에 그쳐 환자가 의사 눈치 보기에 바쁘다"며 "각 병원 코디네이터 마련에 10억원 정도만 투자하면 된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함께 한 미국 마운트시나이병원 유지연 전문의 역시 "뇌전증 수술은 환자와의 라포(친밀감) 형성이 중요한데 3~5분 진료로는 환자와 친분을 쌓기 어렵다"며 "새 환자는 최소 1시간, 팔로업 환자는 30분이 기본"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홍 교수는 뇌전증 치료에 대한 병원 자체 노력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뇌전증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은 고작 7개(수술 가능 전문의 7명)이며 이마저도 수술 로봇이 있는 곳은 3곳 뿐이고, 전문 간호사 등 인력이 없는 병원도 있다"면서 "병원 자체적으로 뇌전증 수술에 대한 (인프라) 투자가 꼭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했다.

기자회견과 함께 진행한 학술대회에서는 미국과 일본의 뇌전증 전문의를 초청해 각국의 우수 뇌전증 치료 사례와 방법을 소개하고 개선방안을 토의했다. 여기엔 홍 교수를 비롯해 △신동진 대한뇌전증학회장 △카와이 겐슈케 도호쿠대 의대 교수 △나카가와 에이지 국립 신경·정신의학 센터장 등이 참석했다.

    임종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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