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루한 삶을 자처한 세계 최고 건축가
[이성주의 건강편지]
1926년 오늘(6월 10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성 가족성당(Sagrada Familia) 인근 산타크루병원. 한반도에서는 순종의 장례식에 맞춰 ‘6.10 만세운동’이 벌어진 그날, 세계사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가 가운데 한 명이 숨을 멈췄습니다. 안토니오 가우디가 사흘 전 교통사고를 당해 혼수상태로 실려왔다가 이날 천국으로 떠난 것입니다.
가우디는 남루한 옷차림에 너덜거리는 구두를 신고 평소처럼 인근 성당에 기도와 고해성사를 하러 가다가 전차에 치었습니다. 사람들은 노숙자로 알고 급히 이송하지 않았고 일부 택시 기사는 승차를 거부했습니다. 행인들에 의해 겨우겨우 병원에 옮겨졌지만 병원에서도 행려환자로 취급해 응급처치만 하고 방치하는 바람에 치료 시기를 놓쳐 버렸습니다.
가우디는 1915년부터 성 가족성당 건축에 삶을 바칩니다. 이 성당 건축은 바르셀로나의 출판사 사장 호셉 마리아 보카벨라가 이탈리아 로레토의 산타 칸사 성당을 보고 감동받아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보카벨라가 협회를 만들어 기부금을 모았고, 협회에선 첫 건축책임자로 프란시스코 데 폴라 델 빌라르를 임명합니다. 그러나 빌라르는 1년 만에 협회와 갈등 끝에 사임하고, 협회는 가우디를 적임자로 낙점하고 일을 맡아달라고 부탁합니다.
가우디는 “신의 뜻이군요”하며 수락합니다. 사람들이 완공에 몇 년 걸릴 것이냐고 묻자 “내 의뢰인은 급하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의뢰인은 협회가 아니라 신이겠죠? 가우디는 다른 곳에서 200년 계획을 언급합니다.
가우디는 새 성당이 ‘가난한 사람을 위한 성스러운 장소’가 돼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재산, 모든 재능을 성당 건축을 위해 바치고 스스로 빈자의 삶을 실천했습니다. 넝마 같은 옷에 발가락이 튀어나올 듯한 구두를 신은 채 기도하고 금식하며 오로지 ‘빈자의 성당 건축’에만 몰두하다 12년 만에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우디가 숨지자 제자들이 위대한 작업을 잇습니다. 스페인의 천재 미술가 살바도르 달리는 “천재가 죽었으므로 이 건축물은 미완성인 채 남겨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가우디의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겠지요? 1936년 스페인 내란 때엔 혁명군이 가우디가 만든 모형물을 부수고 드로잉을 불태웠지만, 제자들이 남은 것들을 모아서 차곡차곡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2012년에는 가우디가 성당 건축을 처음 맡았을 때와 같은 나이인 31세의 조르디 파울리가 7번째 수석 건축가로 임명돼 지금까지 건축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2016년엔 바르셀로나 시가 성 가족성당의 건축허가가 나지 않은 것을 뒤늦게 발견, 허가를 내주며 2026년을 기한으로 정했는데,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완공 시기가 늦춰질지 모른다고 합니다. 2026년까지 외형은 완성하고, 인테리어는 2030년대에 마무리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합니다.
성 가족성당은 찾는 사람의 숨을 멈추게 합니다. 웅장하면서도 아름답고, 섬세하면서도 기묘합니다. 완공이 몇 년 남지 않았다고 하니 설렙니다. 저는 두 번 방문 때마다 감동의 결이 달랐는데, 세 번째 방문 때에는 어떨까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뜁니다.
가우디의 기일에 드는 이런 생각은 비현실적인 걸까요? 왜 그 시대의 부자들보다 가난했던 가우디가 역사의 주인공으로 남아 우리를 뜨겁게 할까요? 사람들이 남보다 더 벌려고 애쓰고, 부유할수록 자기 것을 더 가지려고 악다구니를 쓰는 세상에서 가우디처럼 자기 것을 버리고 헌신하는 행복은 의미가 없는 걸까요? 굳이 위대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가치에 헌신하며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자녀손주를 위해 한푼이라도 더 모으는 사람보다 더 부자라고 여길 수는 없나요? 왜 가우디는 성직자들이 아니라 빈자를 위한 성당을 건축하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겼을까요?
오늘은 스페인 주제의 음악 한 곡 준비했습니다. 프랑스 작곡가 에두아르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입니다. 스페인 바이올리니스트 마리아 듀에냐스와 미하일 게르츠가 지휘하는 에스토니아 국립 교향악단의 협연입니다. 제목은 교향곡이지만 바이올린 협주곡에 가깝죠?
아주 좋은글 입니다.감동 입니다.고맙고 감사합니다.가우디를 위해 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