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에 벌레 기어가는 느낌… ‘이 병’ 치료할 수 있다?
노인의 약 10% 겪는 하지불안증후군…’유전적 단서’ 드디어 찾아 치료 가능성 열었다
하지불안증후군은 잠자리에 들면 다리에 무언가 기어가는 듯 불쾌한 느낌이 들고, 움직이면 잠을 이루기 힘든 병이다. 하지만 아직 그 원인을 잘 모른다.
노인에게 특히 많이 발생하는 하지불안증후군의 유전적 단서를 발견해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독일 뮌헨공대 인간유전학연구소 등 국제 연구팀은 하지불안증후군환자 10만명 이상과 일반인 150만명의 DNA를 비교 분석한 결과, 하지불안증후군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 결과(Genome-wide meta-analyses of restless legs syndrome yield insights into genetic architecture, disease biology, and risk prediction)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유전학(Nature Genetics)≫에 실렸다.
서울대병원 의료정보에 따르면 하지불안증후군은 주로 잠들기 전에 다리에 불편한 감각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 다리를 움직이면 수면 장애를 일으키는 병이다. 국내 만 21~69세 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전체 인구의 약 5.4%가 이 증후군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불안증후군 환자, 당뇨병 비롯해 심혈관병 우울증 함께 앓는 사례 많아
연구의 공동 저자인 케임브리지대 스티븐 벨 박사(정보생물학·종양학)는 “노인 10명 중 1명이 하지불안증후군 증상을 겪는다. 정체가 불분명한 이 병의 유전적 단서를 이번에 찾아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연구는 하지불안증후군의 유전적 기초를 이해하는 것 중 최대 규모다. 연구 결과가 하지불안증후군 환자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에 의하면 하지불안증후군은 다리 불쾌감 탓에 득득 긁거나 움직이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일부 환자는 저녁이나 밤만 되면 증상이 부쩍 심해져 불면에 시달린다. 특히 이 병 환자는 당뇨병을 비롯해 고혈압, 심혈관병, 우울증, 불안증 등을 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왜 그런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의 공동 저자인 뮌헨공대 인간유전학연구소 나탈리 샌드라 박사(신경유전학)는 “이 결과는 하지불안증후군의 위험이 가장 높은 사람을 식별하고 잠재적인 치료법을 제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연령, 성별, 유전자 표지자(마커) 등 기본정보를 이용해 10명 중 9명에서 이 병을 앓을 위험이 높은 사람을 정확히 가려낼 수 있다”고 말했다.
신경과 뇌 기능에 중요한 특정 유전자와 밀접한 관련…환자는 여성이 남성의 2배
종전 연구에서는 하지불안증후군 발병 위험 증가와 관련된 변화를 포함하는 유전체 영역(22개의 유전적 위험 유전자좌)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번에 게놈(유전체) 전체 연관성 논문 3건에서 얻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했다. 또한 새로운 유전적 위험 유전자좌 140개 이상을 확인해 관련 유전자좌를 164개로 크게 늘렸다. 여기에는 X염색체에 있는 유전자좌 3개가 포함됐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신경과 뇌 기능에 중요한 특정 유전자(글루타메이트 수용체 1과 4)가 하지불안증후군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를 항경련제(페람파넬, 라모트리진) 등 기존 약물의 표적으로 삼거나 신약 개발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연구팀은 내다봤다. 하지불안증후군 환자는 초기 실험에서 이들 약물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불안증후군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2배 더 흔하다. 하지만 연구팀은 남녀 사이의 뚜렷한 유전적 차이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연구팀은 유전과 환경(호르몬 포함)의 복잡한 상호작용 때문에 성별 차이가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하지불안증후군이 당뇨병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연구팀은 핏속 철분 수치가 낮으면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수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하지불안증후군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하지불안증후군과 철분 대사의 유전적 연관성을 찾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