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술 한 잔 안마셨는데”…혈중 알코올 농도 30배 치솟아, 무슨 일?

자동양조증후군이라는 희귀질환...장내 미생물이 이상 증식해 체내 탄수화물을 에탄올로 전환시켜

“평생 술 한잔 안마셨는데”…혈중 알코올 농도 30배 치솟아, 무슨 일?
소화기관발효증후군(gut fermentation syndrome)이라고도 하는 자동양조증후군은 소화기에 서식하는 박테리아와 곰팡이가 일반 음식이 포함된 탄수화물을 에탄올로 전환하는 희귀질환이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평생 술 한 잔 입에 대지 않았지만 혈중 알코올 농도가 정상인 수준의 15배~30배까지 치솟는 여성의 사연이 공개됐다.

혈중 알코올은 보통 ℓ당 2밀리몰(millimole) 이하를 정상으로 보는데 그의 혈중 알코올은 30밀리몰~62밀리몰까지 올라가곤 했다. 62밀리몰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치명적 양이다. 술고래도 30~40밀리몰을 넘기기 힘들다.

최근 《캐나다 의사협회 저널(cmja)》에 발표된 토론토 지역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CNN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올해 50세의 한 여성은 술 때문이 아닌 혈중 알코올 농도로 2년간 7번이나 응급실로 실려 왔다. 응급실 의사들은 모두 그의 음주습관을 의심했다. 그러나 3명의 정신과 의사는 알코올 사용 장애 진단을 내리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는 종교적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했고 남편도 그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가 걸린 병명은 ‘자동양조증후군(Auto-Brewery Syndrome‧ABS)’으로 밝혀졌다. 소화기관발효증후군(gut fermentation syndrome)이라고도 하는 이 병은 소화기에 서식하는 박테리아와 곰팡이가 일반 음식이 포함된 탄수화물을 에탄올로 전환하는 희귀질환이다.

ABS의 첫 사례는 1946년 아프리카에서 5세 소년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위가 파열되면서 보고됐다. 부검 결과 그의 복부에서 술 냄새가 나는 ‘거친’ 액체가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했다.

2021년 4월 발표된 연구 리뷰에 따르면 1974년 이후 영국 의학 문헌에서 20건의 ABS 진단 사례가 보고됐다. 일본에서 ABS 사례가 보고됐는데 ‘알코올 자동 중독 증후군’으로 불린다.

ABS는 특정 종의 박테리아와 곰팡이가 사람의 장내 미생물군집을 과도하게 증식시켜 기본적으로 위장관을 정지된 상태로 만들 때 발생한다. 과학자들은 이 과정이 소장에서 일어나며 우리 몸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대장에서 일어나는 정상적인 장내 발효와 크게 다르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병원체가 원인이 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사카로미세스(Saccharomyces)와 칸디다(Candida)라는 두 종의 곰팡이가 과도하게 증식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칸디다균은 몸과 입, 소화관 및 질에 서식하며, 한 두 차례의 항생제로 유익한 박테리아가 죽으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몇 년간 설명할 수 없는 만취상태를 겪다가 맥주 발효과정에 발견되는 효모인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아(Saccharomyces cerevisiae) 장내 과잉 진단을 받은 61세 남성의 사례도 있었다.

이 증후군 환자들은 대부분 알코올 단속에 걸려 병명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40대 후반의 남성은 경찰의 음주운전 단속에 걸렸을 때 혈중알코올농도가 0.2%로 법적 허용치의 약 2.5배에 해당했지만 술을 마신 것이 아니라 ABS 환자인 걸로 밝혀졌다.

ABS, 염증성 장질환, 단장증후군 등 위장질환, 당뇨와 간질환 과 같은 다른 질환 발병 위험

ABS 환자 옹호단체의 바바라 코델 회장은 “ABS 진단을 받은 300명 이상의 사람들을 알고 있으며 개인 페이스북 지원 그룹에 800명 이상의 환자와 간병인이 활동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증후군의 미스터리 중 하나는 어떻게 이 사람들이 극도로 높은 수치를 가지고 여전히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안개 속을 걷는 느낌으로 돌아다니며 피곤함을 느끼는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ABS는 다른 질환 발병을 부를 수 있는 위험 요소가 있다. 논문의 주저자인 토론토대병원의 감염병 전문의 라헬 제우드 박사는 “소장이 손상되거나 짧아지는 염증성 장질환, 단장증후군 등 위장질환뿐 아니라 당뇨와 간질환도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대사능력이 떨어질 경우엔 더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제우드 박사는 “ABS가 개인에게 나타나기 위해서는 여러 위험 요소들이 상호 작용해 대사 폭풍이 발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토론토 여성 환자의 경우 40대 중반부터 요로 감염이 동시에 발생하여 항생제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대사폭풍이 발생했다. 장내 유익한 박테리아가 죽기 시작했고, 그 자리를 곰팡이가 차지하게 됐다.

그렇게 늘어난 효모는 음식의 탄수화물에서 그 연료를 얻게 된다. 토론토 여성환자는 48세가 될 무렵 흡수한 거의 모든 탄수화물을 알코올로 바꾸게 됐다.

항생제 내성이 주요 원인 될 수 있어…장 손상 야기해, 탄수화물 제한 식단 따라야 

제우드 박사는 “탄수화물을 많이 먹지 않으면 증상이 그렇게 심하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케이크 한 조각이나 탄수화물이 많은 식사를 하면 알코올 수치가 급격히 상승해 아이들 점심을 준비하다가도 잠이 들어 주방 조리대에 머리를 부딪히는 경우도 있었다.

ABS의 치료는 조직검사나 대장 내시경 검사를 통해 장에 서식하는 특정 병원균을 확인한 후 일군의 살진균제 처방으로 시작해야 한다. 여러 곰팡이를 겨냥한 광범위한 살진균제 처방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제우드 박사의 설명이다.

“항생제 내성은 ABS의 주요 원인”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그는 “사람들이 이 병에 걸리는 이유 중 하나는 장을 손상시키는 빈번한 항생제 사용 때문”이라며 “좁게 시작해야 하며, 환자가 해당 살진균제에 내성을 갖게 되면 다른 살진균제를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효모를 죽이는 것 외에도 환자는 극도로 제한된 저탄수화물 식단을 따라야 한다. 제우드 박사는 “탄수화물을 전혀 섭취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유익한 박테리아를 다시 만드는 프로바이오틱스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토론토 여성환자는 더 이상 살진균제를 복용하지 않지만 재발 후 초저탄수화물 식단을 유지하고 있다. 제우드 박사는 “이 환자의 남편은 그녀의 입에서 술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즉시 저에게 연락했다”며 “이 증후군이 있을 경우 주변 사람들이 발 빠른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해당 논문은 다음 링크(https://www.cmaj.ca/content/196/21/E724)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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