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파이도록 긁는다" 심하게 몸 가려운 아이들...아토피 아닌 '이것' 때문?
진행성 가족성 간내 담즙정체증 PFIC, 국내에도 수십명 환자 보고...관련 질환 정보 많지 않아 진단과 치료에 애먹기도
#1. 현재 3살인 챈들러는 태어날 때부터 간에 문제가 있었다. 세상에 7주 일찍 태어나 약 한 달 동안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어야 했던 챈들러. 의료진은 이 아이의 간에서 담즙으로 배출되는 빌리루빈(Bilirubin) 수치가 상승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럼에도 미숙아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증상과 비슷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수치가 계속 높자 5주째에 담도 폐쇄증을 확인하기 위해 생검을 받았고 별 문제가 없다는 음성으로 나왔다.
챈들러는 몸을 계속 긁어댔다. 가려움증이 보통보다 심한 상태로 여겨졌다. 등과 배가 가려웠는지 누운 자리에서 몸을 앞뒤로 비비곤 했다. 부모는 처음에 단순히 성장과정의 일부라고만 여겼지만 챈들러의 긁는 행동은 갈수록 심해졌다. 여기저기 너무 가려워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실은 챈들러의 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징후였다. 무의식중에 심하게 긁어 피가나고 상처가 나지 않도록 챈들러의 손톱을 늘 짧게 잘라줘야 했다.
아직 아기인 챈들러에게 왜 극심한 가려움증이 나타나는지 원인에 대해 지난해 9월에서야 정확한 진단이 나왔다. 챈들러는 '진행성 가족성 간내 담즙정체증(Progressive Familial Intrahepatic Cholestasis, 이하 PFIC)'라는 생소한 희귀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6개월 안에 간 이식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 진단 3개월 후인 2021년 12월에 챈들러는 간 이식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간 이식으로 인한 합병증, 간 효소 수치 상승, 질병의 재발은 항상 존재하기 하기 때문에 챈들러는 여느 아이처럼 마음놓고 놀 수 없다. 고작 3살인 그는 간 이식을 받은 지금 12가지 약을 복용해야한다.
#2. 케네디라는 아이도 몸을 무섭게 긁어대는 습관이 있었다. 손톱에 긁힌 상처와 딱지들로 온 몸이 뒤덮인 케네디를 보고 가족들은 가려움증 원인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해왔다. 의사가 처방해준 세 가지 약을 먹었지만 그의 가려움증은 멈추지 않았고 더 심하게 긁어댔다. 차가운 물에 목욕을 시켜주면 증상이 나아지지 않을까 했지만 그때마다 케네디는 배를 너무 심하게 긁어댔다. 긁는 것이 아니라 살을 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할 정도였다. 그렇게 극심한 가려움에 의해 몸에 상처투성인 케네디는 사계절 내내 긴옷을 입어야 했다.
케네디도 결국 PFIC 질환을 진단받았다. 간 이식이 필요했고, 이 수술을 받자마자 가려움증이 사라졌다. 즉각적인 변화가 일었다. 편하게 옷을 입을 수 있게 됐고 무엇보다도 밤새도록 잠을 잘 수 있어 케네디도 가족도 한결 생활이 나아졌다.
PFIC, 가장 심각한 증상이 가려움증...살이 패일 정도로 긁어 상처나기 일쑤, 가족 전체가 힘든 희귀질환
희귀질환 글로벌 PFIC 네트워크에 따르면 위 사례의 아이들이 겪는 PFIC는 담즙 형성을 방해하고 간세포 기원의 담즙정체증의 형태로 나타나는 만성 질환이다. 희귀 유전 질환으로서 유아기에 증상이 시작되어 10세 이전에 진행성 간 질환을 유발하고 간경변 및 말기 간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확한 유병률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전 세계적으로 5만~10만명 중 1명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되며, 국내 환자 수는 수십명으로 추정된다.
PFIC에는 6가지 이상의 유형이 있다. 그 증상이 중복될 수는 있지만 각 유형마다 질병 발현이나 예후가 다르게 나타난다. 특히 주요 특징 중 하나는 심각한 가려움증(소양증)이다. 가려움증이 매우 심할 경우 약물 치료에 지속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린 아기의 경우 스스로 긁기 어렵기 때문에 가려움증을 식별하기 쉽지 않다. 처음에 아이들이 가려움증을 호소해 부모가 아토피와 같은 피부 질환이 아닌지 의심하는 경향이 크다. 아토피와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에 의해 나타나는 PFIC는 아이의 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발생한다. 대표적인 증상으로 황달과 극심한 가려움증에 시달려 항상 짜증을 내고 우는 경우가 많다. 평균적으로 생후 3개월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청소년기까지 황달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가려움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참지못해 피가 날 때까지 긁어대기 일쑤다. 한여름에도 긴 팔과 긴 바지를 입을 수밖에 없다.
국내 환자 정보 극히 드물어 해외 데이터에 의존하는 현실...간이식이 대안이었지만 최근 새로운 치료제 개발로 치료 기대
아기들이 가려움으로 인해 귀와 눈을 긁기 시작하면 그 상처가 두드러지기도 한다. 귀와 눈은 흔히 출혈과 흉터가 가장 먼저 나타나는 부위다. 이 때문에 정상적인 활동과 수면을 방해해 학습과 학업을 방해할 수 있다. 아기가 잠을 못 자기 때문에 가족의 수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PFIC를 앓는 아이가 있다면 가족 전체가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질환이 나타나는 원인으로는 담즙 형성과 관련된 간세포 수송 시스템 유전자의 돌연변이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문맥고혈압, 간부전, 간경화, 간세포암종, 간외 증상을 발생시킬 수 있으므로 빠른 치료가 중요하다. 글로벌 PFIC 네트워크에 따르면 치료 방법으로는 모든 유형 PFIC 환자에게서 우르소데옥시콜산(UDCA)이 대증적인 요법으로 고려돼왔고, 거의 간 이식술만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이가운데 최근 회장 담즙산 수송체 억제제(IBAT inhibitor)가 개발되면서 PFIC의 치료옵션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내에서는 환우회나 환자 커뮤니티 등 공론장도 마련돼 있지 않아 질환 관련 정보가 부족한 실정으로 PFIC 환자 보호자들은 거의 대부분의 정보를 해외 사이트에서 얻고 있다. 치료제 접근성도 낮은 까닭에 환자는 물론 가족들은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