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한센병 유행의 원흉은 모피 무역?
영국 한센병 환자와 북방 청설모 유골에서 유사 균주 발견돼
중세의 한센병 유행이 청설모(Red Squirrel) 모피 무역의 산물일 수 있다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3일(현지시간) 《최신 생물학(Current Biology)》에 발표된 영국과 스위스 미국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영국 가디언이 보도한 내용이다.
나균(Mycobacterium leprae)에 의해 전염돼 나병으로도 불린 한센병은 역사적 연원이 깊은 전염병이다. 현재는 대부분의 발병이 동남아에 집중돼 있고 항생제로 치료 가능한 질환이지만 중세에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광범위하게 발병했다. 다람쥐인 북방 청설모의 서식지 역시 유라시아 대륙에 집중돼 있다.
종전 연구는 중세 영국, 덴마크, 스웨덴 사람들이 오늘날 잉글랜드 남부에 서식하는 북방 청설모에서 발견되는 것과 유사한 한센병 유형을 가졌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 때문에 바이킹에 의해 스칸디나비아에서 수입된 청설모 모피거래가 이 병을 퍼뜨리는 요인일 수 있다는 가설이 제기됐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이러한 가설에 힘을 실어준다. 연구진은 영국 윈체스터에 900년 전~600년 전에 살았던 세 사람의 샘플에서 발견된 나균과 1000년 전~9000년 전 모피상인의 창고에서 발견된 북방청설모 유골의 나균 유전자를 분석했다. 연구진이 윈체스터에 주목한 것은 중세 시대 주요 도시로 한센병병원이 있었고 모피상도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분석 결과 인간과 북방 청설모에게서 발견된 한센병 균주가 유사했다. 논문의 공동 저자인 영국 레스터대의 사라 인스킵 박사(골고고학)는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동물 숙주에서 나균을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두 균주의 유사성은 중세 청설모 균주와 현대 청설모 균주의 유사성보다 더 크다“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가 인간과 다람쥐 사이에 한센병 전파가 이뤄졌음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샘플이 적은데다 인간에서 청설모로 전파된 것인지 청설모에서 인간에게 전파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는 한계가 있다. 인스킵 박사는 아메리카대륙에 서식하는 아르마딜로에게 한센병을 옮긴 건 인간이지만 반대로 동물에 의한 인간 감염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떻게 전염이 일어났을 수 있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다면서 모피무역으로 청설모의 균주가 인간에게 전파됐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1384년 한 해에만 37만7200개의 청설모 가죽이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포함한 해외에서 영국으로 수입됐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다람쥐과 동물이 애완동물로 많이 길러진 점은 또 다른 접점이 될 수 있다. 인스킵 박사는 "두 가지 메커니즘이 모두 가능하며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해당 논문은 다음 링크(https://www.cell.com/current-biology/fulltext/S0960-9822(24)00446-9#%20)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