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교육평가원 "2000명 증원, 의대 폐교 부를 수도"
"전문가 협의체 구성해 증원 규모-적응시기 논의"
의대 교육과정 평가인증 기관인 한국의학교육평가원(평가원)이 정부의 2000명 의대 증원 강행에 반대 목소리를 더했다.
평가원은 24일 성명문을 통해 정부의 2000명 증원 강행이 의학 교육 현장에 심각한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며 최악엔 법적 근거에 따라 폐교되는 의대가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성명문은 "(정부가) 증원하더라도 현재의 의학교육 수준과 향후 배출될 의사의 역량이 저하되지 않는다고 공언하면서 그 근거로 평가원의 인증기준을 준수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면서 "(평가원은) 이번 증원 규모를 결정하기 위한 논의나 조사 활동에 참여한 적이 없으며 증원이 일시에 대규모로 이루어진다면 의학교육의 질이 저하될 우려가 있음을 일관되게 지적해 왔다"고 밝혔다.
평가원에 따르면 이 기관은 중립적이고 객관적 입장을 유지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공개적 입장 표명을 자제해왔다. 평가원 한희철 이사장이나 안덕선 원장이 언론이나 토론회 등에서 관련 발언을 했지만 모두 '개인 입장'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원은 이날 현재 국내 의대 교육 환경이 2000명 증원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검토 결과를 내놓았다. 이번 사태로 △일시에 최대 8000명이 한 학년에 몰릴 수 있다는 전망과 △법이 규정하는 평가인증에 근거해 최악의 경우 일부 의대가 폐교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대로면 '폐교 의대' 나올 수도...규정상 6년간 매년 추가평가 진행해야"
평가원은 의료법과 고등교육법에 근거해 전국 40개 의대에 대해 교육평가인증을 시행한다. 교육부의 인정을 받은 기관이지만 의학교육계가 스스로 만든 기관이기도 하다. 이사회 22명 가운데 18명이 의사이고 나머지 4명은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 교육계 언론계 법조계 인사 각 1명이다. 한희철 이사장은 고려대 의대 학장, 고려대 의학전문대학원 원장 등을 거쳤고, 안덕선 원장은 고려대 의대 교수 출신이다.
정부의 증원 계획이 실행되면 평가원은 규정상 30개 의대에 대해 재평가를 시행해야 한다. 입학정원이 10% 이상 증원되면 의학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인 '주요변화'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요변화 추가평가'는 이들 의대생이 입학한 후 졸업할 때까지 6년간 매년 진행해야 한다.
평가원은 "정부의 입학정원 배정 계획에 의하면 30개 대학이 주요변화 평가 대상이 되고, 평가 결과에 따라 해당 대학의 인증유형과 인증기간이 변경될 수 있다"면서 "불인증을 받는 대학은 관련 법령에 따라 정원 감축 및 모집 정지, 학생의 의사국가고시 응시 불가와 더불어 해당 대학의 폐교까지 처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희철 이사장 역시 지난달 한 토론회에서 이와 관련한 내용을 언급한 바 있다. 한 이사장은 "의대 교육인증평가의 기준은 최소한의 기준일 뿐 충분 조건은 아니다"라면서 "인증 기준에만 만족했다고 '해당 의대가 교육을 정말 잘하고 있다'고만 말하기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증원 시엔) 강의실, 실습 교보재 인프라와 기초의학 교수들이 부족하다"면서 "임상의학 교수들은 이미 업무가 과중한 상황에서 수업이 늘어난다면 교수직 이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 학년 8000명' 사태 우려...회복하기 힘든 의학교육 손상 초래
아울러, 평가원은 정부의 의대 증원과 이로 인한 의대생의 대규모 휴학·유급 사태가 함께 작용하며 "의학교육 현장에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평가원은 "기존 3000여 명의 재학생에 더해 유급·휴학생, 신규 증원된 2000명의 학생이 더해진다면 한 학년에 최대 8000여 명의 학생을 매년 교육해야 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고 언급했다. 이어 "이는 우리나라 의대와 의학교육에 회복하기 힘든 손상을 가져올 것"이라며 " 정부는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평가원은 "대학별 증원 규모와 적용 시기를 논의하는 전문가 협의체에 평가원을 포함해 구성하라"고 정부에 제안했다. 성명문은 "양질의 의학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학생 규모에 걸맞은 교육 여건 조성이 선행돼야 한다"면서 "교육 여건에는 충분한 숫자의 교수 확보, 교육 인프라 확충과 더불어 교육 역량이 담보돼야 하며 이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