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틀란디아호와 국립의료원, 2024 한국 의료

[이성주의 건강편지]

2024년 03월 18일ㆍ1613번째 편지


어제 국립중앙의료원장이 전공의들의 집단사직과 관련한 긴급기자 간담회를 갖고, 전공의들의 복귀를 호소했지요. 뉴스 댓글들 가운데 국립의료원을 폄훼하는 것들이 보이더군요. 위의 사진이 떠올랐습니다. 6.25 전쟁 때 ‘천사 병원선(病院船)’이라고 불렸던 유틀란디아 호에서 간호사들이 어린이 환자를 돌보는 사진이지요.

덴마크는 전쟁이 일어나자 의료지원을 결정하고, 왕실 소유의 상선을 수술실 4곳, 병상 356개, X선 장비실 등을 갖춘 최신 병원선으로 개조했습니다. 선장 카이 하메리히는 이 배에 타기 위해 덴마크 적십자사 의장을 사직했습니다. 승무원 97명에 의료진 97명이 승선했는데, 의사들도 서로 가겠다고 자원했으며 간호사는 42명 모집에 무려 400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렸습니다.

유틀란디아 호는 1951년 1월 프레데릭 9세와 잉그리드 왕비, 1만 명의 시민의 환송을 받고 코펜하겐 항을 떠나 3월 부산항에 도착했습니다. 원래 군인들만 치료하기로 돼 있었지만, 의료진은 전쟁 고아를 비롯한 수많은 민간인들을 치료했습니다. 1953년 8월까지 군인 4981명, 민간인 6000여 명을 치료했는데 의료진이 몰래 치료한 민간인 환자를 합치면 1만 80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유틀란디아 호에서 간호사들이 한국 어린이들을 돌보고 있다.

이웃 스웨덴은 1950년 9월에 현재 부산 서면의 롯데백화점 본점 자리에 있던 부산상고 교정에 스웨덴 적십자병원을 짓고 군인과 민간인을 치료했으며 정전 이후엔 부산스웨덴병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당시 한국 의료진이 진료하기 어려웠던 중환자들을 치료했습니다. 노르웨이는 1951년 7월 동두천에 노르웨이 육군 이동식 외과병원을 짓고 1954년 10월 귀국할 때까지 1만 4700여 명을 치료했습니다.

이들 스칸디나비아 3국의 의료진이 본국으로 돌아가려 할 때 우리 정부는 계속 남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국립의료원입니다. 스칸디나비아 3국이 참여했다고 해서 스칸디나비아 병원으로 불렸고, 메디컬센터라고도 불렸습니다.

1958년 개원한 국립의료원은 7층 405병상으로 당시 국내 최대 규모였고, 아시아 최고 시설의 병원이었습니다. 북유럽 의료진을 위한 ‘스칸디나비아 클럽’은 국내 최초의 뷔페식 식당이어서 서울 상류층의 ‘로망’이기도 했습니다. 외국인 의사들의 실력은 아시아에서 소문이 났으며, 이들의 고난도 수술이 잡히면 일본에서 의사들이 참관 올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 의사들에게 의술을 전수해 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은 물론입니다. 무엇보다 이 병원은 환자의 75%를 국비로 지원했기 때문에 ‘가난한 환자의 천국’이었습니다.

1958년 국립중앙의료원 개원식 때 도열한 북유럽의 의사와 간호사들.

국립의료원은 공익만 추구하다 보니, 규모와 경쟁을 추구하는 다른 병원들에 밀려, 존재감이 흐려져왔지만, 사스나 코로나19 등 주요 위기 때마다 다른 병원들이 못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존재 가치를 알려왔습니다.

유틀란디아 호나 국립의료원은 우리 의료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세계 각국의 의료진이 전쟁통에 숱한 의료진을 보내서 우리를 도왔습니다. 미국은 한국 의사들을 미국으로 데려가 교육시키는 ‘미네소타 플랜’을 운영했고, 한국 의사들의 성장을 적극 도왔습니다.

이런 국제사회의 지원이 빛바래지 않도록, 대한민국 의사들은 ‘한강의 기적’ 못지 않은 ‘한국 의료의 기적’을 이뤘습니다. 해외에 간 의사들은 하나라도 더 배워오기 위해 이를 악물고 온갖 고초를 이겼습니다. 국내 병원의 의사들은 밤새워 연구하고 진료해서 세계적 수준에 근접하게 성장했습니다. 한마디로 국제 사회의 지원, 의료진의 노력과 헌신, 국민의 지원과 후원 등이 합쳐져서 의료가 급속도로 성장했지만 이 과정에서 온갖 모순이 쌓였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의료계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지금까지 의료진의 신뢰를 얻지 못해 전공의 집단 이탈이 장기화하고 있습니다. 식자들은 세계 수준으로 근접하고 있던 의료 시스템이 무너질 위기라고 걱정합니다. 의사는 환자를 떠나선 안 될 것 같은데, 이들이 환자 곁으로 되돌아오게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의료 개혁의 총설계자인 대통령이 나서 설득하면, 떠난 의사들이 돌아올까요? 이 파국을 디딤돌 삼아 오히려 더 바람직한 의료시스템을 만들 수는 없을까요, 세계가 함께 이룬 대한민국 의료인데···.

덴마크 국민가수라는 칭호를 받았던 킴 라르센의 ‘Jutlandia’ 준비했습니다. 2018년 작고한 라르센은 록과 덴마크 정서를 결합한 노래로 사랑을 받았으며, ‘유틀란디아’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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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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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kl*** 2024-03-18 11:03:32

      공공의료를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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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w*** 2024-03-18 10:00:20

      세계가 함께 이룬 대한민국 의료. 가슴이 뭉클합니다. 잊고 지내던 국립의료원 스칸디나비아클럽에 대한 옛 추억도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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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ik*** 2024-03-18 08:06:57

      어제 mbc 스트레이트 를 보고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것을 알았습니다.이번사태가 빨리 해결되기를 바랍니다.좋은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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