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마비 걸려 "철 통에서 72년 삶"...그가 숨쉬었던 방법은?
철폐를 의지해 통안에서 산 '72년의 기적'...폴 알렉산더, 코로나 걸린 후 숨 거둬
70년 넘게 철통 안에서 숨쉬며 살아 온 폴 알렉산더가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폴은 6살 때 소아마비로 전신이 마비돼 1920년대 만들어진 '철통 폐 장치(iron lung chamber)'안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머리만 내밀고 베개를 벤 채 목부터 몸통까지 금속 실린더에 속에 평평하게 누워 72년간을 생활해 온것이다.
폴은 철제 폐 속에서 지내면서도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됐다. 입에 펜을 물고 8년에 걸쳐 자서전을 쓰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삶을 살았다. 폴의 가족은 고펀드미(GoFundMe)의 알렉산더 치료비 모금 페이지를 통해 비보를 알렸으며, 많은 사람들이 고인을 추모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 여러 외신 매체들은 최근 폴 알렉산더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그가 살아온 철폐 챔버 안에서의 삶을 조명했다.
해당 철통 폐 장치는 미국 하버드 대학교 연구팀이 흉부 근육 마비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져 1928년 보스턴 아동병원에서 8세 소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처음 사용됐다. 철제 폐는 1900년대 중반 소아마비 병동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고, 미국에서는 약 1000개, 영국에서는 700개의 철제 폐가 사용됐다.
이 철제 폐가 소아마비 환자들에게 쓰인 것은 폐로 산소를 공급하기 위함이다. 의학적으로 소아마비는 폐를 직접 손상시키지 않는다. 대신 바이러스가 척수의 운동 신경세포를 공격해 중추신경계와 근육 사이의 소통을 약화시키거나 호흡을 단절시킬 수 있다. 호흡을 가능하게 하는 근육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면 사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폴은 횡격막에도 마비가 생겨 숨을 제대로 쉬지 않으면 죽을 수 있었다. 이를 사전에 막기 위해 이 철통 장치가 폐를 대신한 것이다. 미국에서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유행하며 6만건이 넘는 소아마비 환자가 발생한 해, 폴도 호흡이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악화하자 이 철제 폐에 들어가게 됐다.
폴이 '오래된 철마'라고 불렀던 철 폐는 모터로 구동되는 가죽 벨로우즈 세트가 실린더에서 공기를 빨아들이는 방식으로 작동됐다. 진공 상태가 만들어낸 음압으로 인해 폐가 팽창하고 공기가 다시 흡입되면 압력의 변화로 인해 폐가 부드럽게 수축한다. 기계가 숨을 쉬는 듯한 리드미컬한 작동 소리가 폴의 생명을 유지시켜 준 것이다.
철제 폐 안에서도 '개구리 호흡법' 배워 몇시간 씩 나와 있기도
철제 폐는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됐지만 처음에는 신체가 회복할 기회를 주기 위해 2주 동안만 사용하도록 고안됐다. 폴은 3년 동안 이 철 폐를 사용한 후 '설인두 호흡법'을 배웠고, 한 번에 몇 시간 동안은 철폐를 사용하지 않아도 됐다. 그가 '개구리 호흡'이라는 별명을 붙인 설인두 호흡법은 평소보다 더 크게 숨을 쉬는 방식이다. 마치 개구리가 침을 꿀꺽 삼키는 것과 비슷하다 하여 개구리 호흡법이라 부른 것이다. 이를 통해 몇 시간이고 철폐를 벗어날 수 있었지만 말년에는 5분 이상 철폐 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검은색 고무 바퀴가 달린 노란색의 철제 폐는 간병인이 원하는 대로 높이를 조절할 수 있었다. 상단에는 창문이 있어 내부를 볼 수 있었고, 측면에는 4개의 포트홀이 있어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 기계 위에 부착된 거울을 통해 폴은 주변상황을 확인 할 수도 있었다. 무게가 거의 660파운드(300kg)에 달하는 이 기계를 열려면 간병인이 머리 부분의 봉인을 풀고 사용자를 내부 침대 위로 밀어내야 했다.
1960년대 철제 폐 대신 인공호흡기로 대체, 폴은 계속 통 안에서 생활
의학의 발전으로 1960년대에는 철제 폐가 쓸모없어졌고 현대식 인공호흡기로 대체됐지만 폴은 철제 폐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계속 철통 안에서 생활했다. 그 안에서도 학업에 대한 열정이 컸다. 입에 붓과 펜을 물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자신이 터득한 호흡법으로 철제 폐 밖으로 나올 수 있을 때는 휠체어를 타고 학교에 가기도 했다.
그의 열정과 노력의 결과로 1978년 텍사스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수여했으며, 1984년 법학 학사 학위를 받았고 변호사 시험도 합격했다. 마비된 몸을 지탱할 수 있는 특수 휠체어를 타고 법정가서 변호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사망 전 그는 틱톡 계정을 만들어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기도 했다. 한 영상에서는 자신은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은 목표와 꿈이 있고, 소아마비와 이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수백만 명의 어린이에 대해 쓰고 싶다는 포부를 전하기도 했다.
그러던 지난 2월 말,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고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치료 후 퇴원은 했지만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잘 먹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알렉산더는 지난 11일 댈러스의 한 병원에서 삶을 마감했다.
지금은 거의 퇴치된 소아마비, 당시 얼마나 악명 높았나
영국에서 철제 폐를 마지막으로 사용한 사람은 2017년 12월 7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50년대 소아마비 백신이 발명된 이후 서구에서 소아마비가 거의 퇴치된 후에도 폴이 가장 오래 산 것으로 기록됐다.
소아마비는 전 세계적으로 흔했던 심각한 바이러스 감염병이다. 이 바이러스는 최대 6주 동안 목과 장에 잠복하며, 증상 발현 전후 7~10일 사이에 가장 전염성이 높다. 척수로 퍼지면 근육 약화와 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 이 바이러스는 영유아에게 더 흔하며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환경에서 발생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염 징후를 전혀 보이지 않지만 20명 중 1명 정도는 발열, 근력 약화, 두통, 메스꺼움, 구토와 같은 경미한 증상을 보인다. 환자 50명 중 1명 정도는 목과 등에 심한 근육통과 경직이 발생한다. 소아마비 환자의 1% 미만이 마비를 일으키고, 그 중 10명 중 1명은 사망에 이른다.
소아마비는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공기 중의 비말을 통해, 또는 감염된 사람의 대변과 접촉할 때도 걸릴 수 있다. 감염된 사람의 음식, 물, 옷, 장난감 등이 모두 포함된다. 유럽, 아메리카, 동남아시아 및 서태평양 지역에서 대부분 퇴치된 '야생' 소아마비에는 세 가지 변종이 보고된다. 2형과 3형은 전 세계적인 대규모 백신 캠페인 덕분에 퇴치됐다. 1999년과 2012년에 각각 마지막 사례가 발견됐다.
나머지 1형 야생 소아마비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두 나라에서만 여전히 풍토병으로 남아 있다. 백신 덕분에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 야생 소아마비가 퇴치됐다. 그러나 백신이 전 세계적으로 보급되면서 백신 유래 소아마비 바이러스라는 새로운 유형의 변종이 생겨나기도 했다. 처음에는 생백신에 사용됐지만 지역사회로 유출돼 야생 버전과 더 유사하게 행동하도록 진화한 균주로 보고된다.
국내에서는 예방접종의 대중화로 1983년 이후 현재 소아마비 환자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인간승리 입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