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면 건보료도 벅찬 데... 국민연금 64세까지 납부?
[김용의 헬스앤]
“퇴직하니 건보료(건강보험료) 내기도 빠듯한데, 국민연금 보험료를 64세까지 어떻게 내요?”
오랫동안 지지부진했던 국민연금 개혁안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아직 확정된 내용이 아닌 계속 토의하거나 연구해야 할 안(案)이다. 국회 연금개혁 공론화위원회는 12일 기자회견에서 보험료율(내는 돈)과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조합한 2개의 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 개혁안은 앞으로 500인 시민대표단의 토론을 거쳐 이 중 하나의 안을 결정해 국회 특위 논의 등을 거쳐 입법화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퇴직 후 생활비도 부족한데... 국민연금 보험료 64세까지 납부?
개혁안 가운데 눈에 띄는 내용은 현행 59세까지인 국민연금 의무가입 연령을 64세까지 늘리는 것이다. 2개 안 모두 이 내용은 일치했다. 국민연금에 내는 돈(보험료)을 64세까지 연장한 것이다. 연금을 받는 나이는 65세를 유지하는 안이 채택됐다. 현행 법적 정년이 60세이니 퇴직 후 집에서 놀고 있어도 보험료를 내라는 얘기다. 대학교수(65세 정년), 고위 공무원 출신 공기업 임원, 일부 대기업 사장을 제외하곤 64세까지 재직하는 월급쟁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60세 정년을 채운 회사원도 운이 좋은 사람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은 평균 49.5세에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다. 경영이 어렵지 않더라도 세대교체를 빌미로 오랫동안 헌신했던 40~50대들을 대상으로 명퇴 공고를 내는 회사들이 많다. 압박을 견디다 못해 사표를 던지면 갈 곳이 없다. 어럽게 재취업해도 터무니없는 저임금에 1~2년 재직이 고작이다. 경제학 용어인 ‘노동 유연성’은 우리나라에선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소득 공백에 힘든 중년들... “손해 보면서 국민연금 앞당겨서 받아요”
중년의 퇴직인들은 이내 ‘소득 절벽’과 맞닥뜨리게 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빙하의 갈라진 틈(크레바스)처럼 생활비 마련에 허덕이는 절벽 같은 시기다. 50세에 명퇴했으면 15년 이상을 아끼고 아껴야 한다. 아직 공부하는 자녀가 있으면 허리띠를 더 졸라 매야 한다. 생활비가 부족하니 손해를 감수하고 국민연금을 앞당겨서 받는 사람도 늘고 있다. 연금액이 깎이는 조기 노령연금을 선택한 사람이 지난해 100만 명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롯이 개인 혼자 내야 하는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보험료는 퇴직인들의 또 다른 크레바스다. 직장에 다닐 때는 회사가 절반을 부담했지만 퇴직하면 100% 개인이 내야 한다. 평생 일해서 힘겹게 장만한 아파트 한 채라도 있으면 매월 내는 건보료만 20만~30만 원이다. 1년에 한 번도 병원에 안 가는 사람은 억울하기 짝이 없다. 여기에 국민연금까지 내야 한다면 수입이 빈약한 퇴직자는 돈 걱정에 잠을 못 이룬다.
많이 더 내고, 더 받고 vs 더 내지만, 수령액은 그대로
연금 공론화위가 제시한 개혁안은 2가지가 골자다. 보험료를 ‘더 내고’ 국민연금 수령액을 ‘더 받는’ 안, 그리고 보험료는 ‘더 내지만’ 수령액은 ‘똑같이 받는’ 안이다. 현재 9%(직장인은 회사가 절반 부담)인 보험료율을 13%로 4%포인트 올리고, 42%(2028년까지 40%로 하향 예정)인 소득대체율(평균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을 50%로 늘리자는 안이 1안이다.
반면에 보험료율을 12%로 3%포인트 인상하지만 소득대체율은 40% 그대로 유지하는 안이 2안이다. 내는 돈의 인상 폭은 적지만, 연금 수령액은 현재 수준이다. 1~2안 중 어떤 안이 채택되더라도 1998년 이후 내는 돈(보험료율)이 많아지게 된다. 두 안을 ‘개혁’이란 이름으로 내놓았지만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점을 볼 때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재 상태에선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점을 2055년으로 예측하고 있다. 1안이 채택되면 2062년으로 7년, 2안은 2063년으로 8년 늦춰지는 것에 불과하다.
노인(65세) 직전까지 국민연금 내야 하나...정년 연장은 언제?
특히 국민연금 보험료를 64세까지 납부해야 하는 개혁안은 논란의 대상이다. 생활비가 모자라 손해를 감수하고 국민연금을 몇 년 앞당겨 받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노인 연령(65세) 직전까지 보험료를 내라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것도 직장인처럼 회사가 절반 부담하는 게 아니라 곧 노인이 되는 퇴직자가 오롯이 혼자 부담해야 한다. 건보료 부담에, 생활비조차 없는데 어떻게 보험료를 낼 것인가.
정년 연장 얘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청년 취업난을 감안하면 시간이 오래 걸릴 전망이다. 지금도 법이 정한 정년(60세)을 공무원-공기업처럼 ‘칼 같이’ 지키는 사기업은 많지 않다. 40대 중반만 돼도 회사원은 좌불안석이다. 명퇴 소문이 들려오면 “혹시 나도?” 불안감에 휩싸인다. 뉴스에 나오는 대기업, 은행 재직자는 그래도 행복한 편이다. 직장인의 80% 이상이 다니는 중소기업은 상시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요즘은 불경기로 인해 회사 경영이 어려워 자발적 퇴사자도 늘고 있다고 한다.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은 가입 기간(20년 정도)을 채우면 퇴직 후 비교적 빨리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이들 연금은 재직 중 기여금(보험료)를 많이 내기 때문에 연금액도 많은 편이다. 나는 여기서 연금액수를 비교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생활비 마련에 급급한 노년 초입 나이까지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는 안은 숙의가 더 필요하다. 향후 예정된 시민 공개 토론에서 현실을 적극 반영한 건설적인 의견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