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파랑? 의사와 눈치싸움"...누리꾼 "이제라도 위헌 다행"
헌법재판소 ‘태아 성감별 의료법‘ 위헌 결정
"요즘도 남녀 구분했었냐", "왜 이제서야 바뀐 것이냐", "원래 의미 없었다", "시대적 변화에 이제라도 맞춰 다행이다" , "지금은 성별이 아니라 출산율 자체이긴 하다"
임신 초에 어떤 아이가 뱃속에 있는지 부부로선 궁금증 투성이다. 준비해야 할 육아용품들이나 양육 방식에 대한 계획들이 아들이냐 딸이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제 의사와 몰래 ' 딸? 아들?' '분홍이?' '파랑이?' 눈치 싸움을 해왔던 '관습'도 사라진다. 누리꾼들도 대다수 이제라도 '위헌' 결정을 환영한다는 반응이다.
서울 서초에 사는 김은아(34, 가명)씨는 임신을 계획 중에 있는 가운데, 이같은 결정이 반갑다. 김씨는 "아이를 가지려 노력 중이다. 임신에 성공하면 빨리 성별을 알고 싶다. 딸도 좋고 아들도 좋지만 우리가 임신 초기부터 어떤 성별의 아이를 가졌는지 아는 것은 부모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위헌 결정을 반긴다"고 말했다.
앞으로 임신 주수에 관계없이 예비 부모가 태아 성별을 알 수 있게 됐다.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한 무분별한 여아 낙태를 막기 위해 마련된 ‘태아 성감별 금지법’이 제정 37년 만에 사라지면서다.
헌법재판소는 28일 ‘임신 32주 전 태아의 성별을 의사가 임산부나 그 가족에게 알려주면 안 된다’는 내용의 의료법 20조 2항에 대해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가 꼽은 위헌 결정 이유는 시대 변화에 따른 성평등 의식 확대와 성비 불균형 해소다. 해당 조항이 지난 10년간 기소 사례가 한 건도 없어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점도 근거가 됐다.
위헌 결정된 의료법 20조 2항은 지난 2009년 개정된 조항이다. 앞서 1987년 제정된 의료법은 임신 기간에 상관없이 의사가 태아 성별을 알려주는 행위 자체를 금지했다. 당시 남아를 선호하는 시대적 분위기에 태아 성별을 가려 출산하려는 경향이 생기면서 남녀 성비 불균형이 발생하자 강력한 규제 조항이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2008년 헌재는 해당 조항에 대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런 결정 취지를 반영해 다음 해 임신 32주가 지나면 성별 고지가 가능하다는 법안이 마련됐다.
이번에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 6명(이영진·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정형식)은 “의료법 20조 2항은 태아 성별을 이유로 하는 낙태를 방지하겠다는 입법 목적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낙태로 나아갈 의도가 없는 부모까지도 규제하고 있다”며 “부모가 태아의 성별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본권을 필요 이상으로 제한하는 과도한 법률”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를 어긴 의사는 2년 이하 징역, 2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는 조항이 있지만 사문화됐다”고 말했다. 헌재가 검찰에 사실 조회한 결과 해당 의료법 위반으로 지난 10년간 고발, 송치 또는 기소된 사건이 단 한 건도 없었다.
다만 이종석 헌재 소장과 이은애·이형두 재판관은 “남아선호사상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며 국회에 개선 입법 시한을 줘야 한다는 헌법 불합치 의견을 냈다. 위헌 결정으로 해당 조항이 즉시 무효되면 낙태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성별을 이유로 한 낙태 발생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고, 부모도 자녀 성별에 대한 선호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완전 무효보다는 현행 기준을 앞당기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 소장 등은 “국가는 낙태로부터 태아 생명을 보호할 책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며 “태아의 성별 고지를 앞당기는 것으로 개정함으로써 침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