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성물질 3대 이어져"...조부모 몸속 살충제, 손자 DNA 손상
워싱턴대 동물실험, 독성 화학물질 노출이 후대에 영향...환경 변화에 경각심 가져야
조부모가 노출된 독성 화학물질의 영향이 나는 물론 그 다음 세대에도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만약 당신이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면 이것이 DNA의 영향보다 조부모 등이 독성 화학물질에 노출된 영향이 더 클 수 있다는 동물 실험 결과가 최근 《환경 후성유전학(Environmental Epigenetics) 저널》에 발표됐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진은 인간의 각 세대가 화학물질에 노출된 과정을 연출하기 위해 3세대에 걸친 쥐를 대상으로 각 세대별 특정 독성 물질에 노출시켰다. 1세대 쥐는 라즈베리, 양상추, 키위, 포도, 잔디 등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을 막을 수 있는 살충제인 빈클로졸린, 2세대 쥐는 탄화수소 화합물인 제트 연료, 3세대이자 임신한 암컷 생쥐는 DDT로 알려진 살충제, 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에 노출했다.
빈클로졸린은 내분비계 교란 물질로 성기 발달과 생식 능력에 영향을 미쳐 사춘기를 지연시킬 수 있다. 제트 연료는 제트엔진에 사용되는 가솔린을 말하며 DDT는 유해성이 알려져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 농약으로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로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이 저서 '침묵의 봄'에서 DDT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와 비교를 위해 살충제에 노출되지 않은 3세대를 따로 사육했다. 연구진은 독성물질 노출로 인한 후성유전체의 변화를 파악하고자 했고 그 결과 첫 세대에서 독성 물질에 노출된 경우 각 세대에서 비만, 신장 질환, 전립선 질환의 발병률이 증가했고 쥐가 독성물질에 노출되지 않은 3세대의 경우 이러한 질환의 발병 위험이 70%까지 증가했다.
연구진은 이전 연구는 독성물질이 단일 세대 노출에 미치는 영향만을 조사했지만 이번 연구는 각 세대가 서로 다른 독성 물질에 노출되면 일부 질병이 생길 확률이 증폭되거나 복합적인 영향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자평했다. 미국과 유럽 인구의 비만율이 약 50%에 달하는데 1950년대 DDT에 처음 노출되고 3세대가 지남에 따라 여러 독성 화학물질에 대한 세대별 노출이 이어져 후성유전체가 변했고 이로 인해 비만 등 질병에 취약한 집단이 생겨났다는 설명이다.
후성유전체는 유전체(게놈) 상의 자체 조절이나 노화 및 환경에 의해 변화하는 서열 정보의 총합을 말한다. 다시 말에 DNA 염기서열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경험하는 스트레스, 공해, 독성물질, 환경, 습관, 음식 섭취, 후천적으로 형성된 성격 등이 DNA에 메틸화해 축적돼 다음 세대로 유전되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환경 노출이 현재 뿐 아니라 다음 세대는 물론 영구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환경 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고 자평했다. 또, 유전적으로 이어지는 DNA가 질환 발병에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진짜 문제는 후성유전체라고 강조했다.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DNA 돌연변이 중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은 1%에 불과하며 하나의 질병이 생기려면 한 두 개의 유전자가 아니라 적어도 수 백 개의 유전자가 필요하고, 이들 유전자는 후성유전체에 의해 활성화 돼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