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퉁 붓는 희귀병, 주사 한 방으로 완치한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로 유전성 혈관부종 증상 95% 억제
고통스럽고 치명적인 희귀 유전병을 겨냥한 유전자치료법이 소규모 임상시험에서 90%이상의 완치율을 보였다. 1일(현지시간)《잉글랜드의학저널(NEJM)》에 발표된 뉴질랜드와 네덜란드, 영국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영국 가디언이 보도한 내용이다.
유전성 혈관부종(HAE)은 5만명 중 1명이 걸리는 희소 질환이다. 유전자 돌연변이로 염증을 완화하는 C1 억제제가 제대로 생산되지 않는다. 그러면 칼리크레인이라는 단백질이 과잉 생산되고 혈관 부종과 관련된 단백질 브래디키닌의 축적을 촉진해 입술과 입, 목, 장, 손, 발을 붓게 만든다. 증상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발생하며, 한 번 발생하면 몇 시간에서 며칠까지 지속된다. 부종이 장에 영향을 미치면 병상에 누워있어야 하고, 목에 부종이 일어나는 경우 질식사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진은 영국, 뉴질랜드, 네덜란드에서 진행된 소규모 1상시험에는 1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미국의 제약회사 인텔리아 테라퓨틱스(Intellia Therapeutics)가 개발한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한 유전성 혈관부종 치료제를 임상 시험했다. 특정 DNA에 결합하는 유전물질과 해당 부위를 잘라내는 효소 단백질을 결합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칼리크레인 유전자가 작동하지 않도록 해 브래디키닌의 과잉생산을 막는 원리의 치료제다. 치료제 성분은 간세포가 흡수하는 지질 나노입자로 캡슐화돼 환자에게 주입된다.
10명의 임상 환자는 모두 치료받은 이후 첫 6개월 동안 부종 발작 횟수가 95% 줄었다. 10명 중 9명은 1년 동안 발병하지 않아 완치 수준으로 판단됐다. 가장 낮은 용량의 치료를 받은 나머지 1명은 한 번의 경미한 증상만 보였다. 연구를 이끈 뉴질랜드 테 토카 투마이 병원의 힐러리 롱허스트 연구원은 “1회 투여 요법만으로 환자들에게 장애와 같았던 증상을 영구 치료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임상시험에 참여한 54세 암성 환자는 18개월 전 치료를 받은 이후 발작 증상이 사라졌다. 그는 “예측 불가능하고 무작위적인 증상 발현으로 인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는데,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급격하게 향상됐다”고 말했다. 역시 임상시험에 참여한 뉴질랜드의 간호사 주디 녹스는 과거 안드로겐 약물을 복용해야 했지만 이젠 더 이상 필요 없게 됐다며 “의료적 마법지팡이가 따로 없다”고 밝혔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병원의 파드말랄 구루가마 박사도 “3주에 한 번씩 발작을 일으켰던 남성 환자가 지난 18개월 동안 어떤 발작도 일으키지 않았고 어떤 약도 복용하지 않았다”면서 “정말 놀랍다”고 말했다.
이번에 바표된 논문은 1상 임상시험의 결과만 다뤘지만 이미 2상 임상시험에서 25명의 환자를 추가로 치료했고, 내년에 대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최종 3상 임상시험을 준비 중이다. 극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이 치료법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치료법의 하나여서 일반인이 이용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카디프대의 폴 모건 교수(면역학)는 “최근 리뷰에 따르면 1회 치료비용이 100만 달러(약 13억2500만 원)에서 200만 달러(약 26억5000만 원)로 추정된다”면서도 “유전적 혈관부종 환자들에게 잠재적 치료법이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는 결과”라고 밝혔다.
해당 논문은 다음 링크(https://www.neurology.org/doi/10.1212/WNL.0000000000208104)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