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사업 기대 컸는데"...길리어드 좌절시킨 폐암 임상 결과?
신약 '트로델비', 폐암 환자서 세포독성항암제와 효과 차이 없어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항암제 사업이 초반부터 암초를 만났다. 길리어드는 B형과 C형 간염, 에이즈 치료제 매출을 기반으로 글로벌 빅파마 대열에 합류한 전통적인 항바이러스제 전문 개발사다. 최근 기업 로드맵 발표를 통해서는 오는 2030년까지 항암제 사업에 주력하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그러나 시작이 순탄치가 않다. 지난해 말 야심차게 출시한 유방암 표적 항암제 ‘트로델비(성분명 사시투주맙 고비테칸)’가 폐암 적응증 확대 임상에서 실패했다. 당초 길리어드는 항암제 시장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는 표적 항체-약물접합체(ADC) 신약을 통해 유방암을 시작으로 폐암, 두경부암, 부인암 및 위장관 암 등으로 영역을 넓혀나간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길리어드는 22일(현지시간)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트로델비의 글로벌 임상 3상(EVOKE-1 연구)의 주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이전에 항암화학요법 치료 경험을 가진 비소세포폐암 환자에서 트로델비를 사용했을 때 수명을 연장하는 효과를 확인하지 못했다. 더욱이 기존 항암화학요법인 도세탁셀과의 치료 효과를 비교했을 때에도 유의미한 차이가 관찰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임상의 성패를 가늠하는 연구의 1차 평가변수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길리어드는 입장문을 통해 "백금 기반 화학요법 치료 이후에 암이 진행된 전이성 비소세포폐암을 치료하는 것은 상당한 도전 과제"라며 "임상데이터의 전체 분석 결과는 관련 학술대회에서 발표될 예정이며, 규제당국과 이번 임상 결과를 논의할 계획에 있다"고 밝혔다.
항암제 트로델비는 최초의 Trop-2 표적 ADC 약물이다. 국내에는 작년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고 10월 출시됐다. 세포독성항암제를 제외하고, 유전자 변이나 바이오마커와 관계없이 전이성 삼중음성 유방암 환자의 2차 이상 치료에서 허가를 받은 유일한 치료제이기도 하다.
Trop-2 단백질은 유방암을 포함한 다양한 암종에서 높은 발현을 보인다. 트로델비는 이 단백질과 결합해 종양 세포 내부로 약물을 방출한다. 이를 통해 건강한 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종양미세환경까지 파괴하는 효과를 지녔다. 약물과 항체의 비율이 높아 대량의 약물을 효과적으로 종양 세포에 전달할 수 있으며, Trop-2 발현에 대한 별도의 검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차별점이다.
이러한 강점을 바탕으로 길리어드는 기존 '항바이러스제 전문'이라는 기업 이미지를 탈피해, 항암제 사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실제로 길리어드는 작년 연말 열린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앞으로 유방암을 포함해 폐암, 방광암, 위장관 암 등 다양한 암종에서의 치료 혁신을 이루겠다”며 "2030년까지 전체 매출의 3분의 1을 항암제 품목에서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하지만, 이번 폐암 임상 실패로 트로델비의 영역 확대에는 제동이 걸렸다. 현재 ADC 시장에서 트로델비의 처방 영역은 HR 양성, HER2 음성 및 삼중음성 환자로 제한됐다. 반면 경쟁약물인 다이이찌 산쿄와 아스트라제네카의 ADC 치료제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는 분위기가 다르다. 이 치료제는 최근 새로운 유방암 유형인 HER2 발현이 낮은 환자에서도 처방 확대를 허가받으며, 트로델비의 시장 점유율에도 압박을 가하고 있다.
시장 조사기관인 리링크 파트너스는 "이전에 HER2 음성으로 분류되기도 했던 HER2 발현이 낮은 환자의 경우 미국 유방암 진단의 60%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된다"며 "엔허투의 치료 대상이 넓이짐에 따라 트로델비의 시장 점유율도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폐암 임상 실패 소식이 알려지자 길리어드의 주가는 10%가깝게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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