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나랑 MBTI가 안맞는 사람이 많다면?
[최낙천의 건강세상, 건강국가]
우리나라 만큼 사람을 유형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동질감과 이질감, 심지어는 이성 사이의 궁합까지도 설명하려는 나라가 있을까. 요즘 젊은 세대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젊었을 때만해도 소개팅을 하면 전공이나 직업, 가족과 같은 기본적 호구조사 못지 않게 반드시 등장한 질문이 혈액형이었다. 수혈을 걱정해서가 아니고 처음 만난 사람이 어떤 타입인지 나랑은 잘 맞는 사람인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혈액형의 개인 성격에 대한 설명력을 믿고 안믿고를 떠나서 다들 재밌는 에피소드 하나 쯤은 들어 보았을 것이다.
MBTI로 마음의 안정 찾고 싶은걸까
“4명의 친구가 모여서 오랜만에 회포를 푸는데 한참 분위기 좋다가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자리가 어색해졌다. 이때 AB형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리고, O형은 나간 친구 붙잡겠다고 따라 나서고, B형은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마시던 술에 빠져있고, A형은 혹시 나 때문에 나간 게 아닌지 밤새 걱정한다”는 식의 이야기이다. 이 비유에 따르면 필자는 자타공인 트리플 A형이다. 양친이 모두 A형이니 필시 생리학적으로는 AO보다는 AA 타입으로 예상된다. 근데 왜 트리플이냐고? A형으로 설명되는 소심함이나 다른 사람의 시선에 대한 예민함이 강한 편이다 보니 주변에서 붙여준 설명이다. 혈액형에 따르면, 필자는 이런 공적인 공간에서 남에게 보여질 글을 쓰기에 적합한 성격은 아니라는 뜻이다.
최근에는 이런 혈액형을 기준으로 한 비과학적(?) 분류에서 탈피해 사회심리학적 요인을 내포한 MBTI라는 성향 분석 도구가 유행하고 있다. 독자 중에도 재미 삼아 검사를 받아 본 사람이 적지 않을 거 같다. MBTI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투입된 여성 인력의 보직 분류에 활용된 성격 유형 검사의 일종이라는 게 정설처럼 되어 있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칼융의 심리유형론을 기반으로 개발된 것으로 에너지방향(E: 외향 vs. I: 내향), 인식기능(S: 감각 vs. N: 직관), 판단기능(T: 사고 vs. F: 감정), 생활양식(J: 판단 vs. P: 인식) 등 4가지 분야 성향을 조합해 총 16가지로 사람의 유형을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비과학적이며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비판에 직면하곤 한다.
필자의 회사 임직원이 20여 명 남짓이던 설립 초기, 인력개발 업체에 조직 단합과 구성원 간 상호 이해를 돕기 위한 워크숍을 위탁한 적이 있다. 업체는 워크숍 사전 준비로 전직원에 MBTI 검사를 시행했고, 직원들이 스스로의 성향을 이해하고 동료 간 소통과 케미를 활성화하는데 활용하도록 돕고자 하였다. 근데 임직원들의 활용은 사뭇 다르게 나타났다. ‘나와 잘 맞는 사람은 누구이고, 잘 안 맞는 사람은 누구인지’, ‘내 주변에 어떤 타입이 많은 지’ 등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이해 못지 않게 조직 내에서 소속감이나 타인과의 동질감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가지려 하는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조직 또는 사회로부터의 소외감은 종종 극단적인 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나라는 2017년 한 해를 제외하고 2003년 이후 지속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인구 10만 명 당 자살 수)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2022년 기준, OECD 평균 자살률은 10.6명인데 반해 우리나라 자살률은 25.2명이다. 연간 약 1만3000여 명, 하루 약 35명이 소중한 생명을 스스로 마치고 있다.
자살 위험 높은 직장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통계청이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자살통계를 보면, 우리 사회가 근로자들의 정신건강에 대해 깊게 고민해야 할 때임을 시사하는 내용들이 눈에 띈다. 우선,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30대부터 남성과 여성 간 자살률 격차가 2배 이상으로 벌어진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비중이 각각 2.1배, 1.6배 높은데도 남성 자살률이 여성보다 높다는 점은 직장 내에 정신건강을 위해하는 구조적 이슈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에 충분하다. 또한, 전체 자살의 약 50%가 30~50대의 근로 기간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직장인 자살에 대한 연구가 전무한 국내에서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오대종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상원·조성준 교수 연구팀이 지난 12월에 공개한 연구가 눈에 띈다. 직장인들에서 발생하는 번아웃과 자살 사고 간 연관성에 관한 것인데, 다양한 직업군에서 번아웃, 우울증 그리고 자살 사고 사이의 연관성을 확인한 최초의 대규모 단면 연구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연구 결과는 신체·정서적 탈진이 있는 직장인들의 경우 자살 위험이 77% 증가함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업무 강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없거나, 직장 내 분위기가 우호적이지 않은 경우 자살 사고 위험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직장 내 임직원의 건강과 관련된 주요 관심사가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 관리였다면 최근의 관심은 정신건강으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다. 특히, 남성과 여성의 자살률에 심각한 격차가 있는 것은 직장이라는 공간에 오랜 시간 노출돼 왔던 남성들이 정신건강에 더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승진과 같은 사회적 성취는 피라미드식 조직구조 안에서는 성취한 자보다는 더 많은 누락자를 양산하게 된다. 임금피크제와 같은 새로운 제도의 도입은 ‘보직해임’과 ‘연하상사’와 같은 개인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의 보편화를 의미한다. 건강한 조직은 조직 내 수평적 의사소통이나 건강한 노사관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조직 내 구성원들이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영적으로 건강한 상태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기업들은 조직 내 갈등을 넘어 한 개인의 내적 갈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