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혁명" …환각성 물질로 뇌손상 치료한다
아프리카산 관목의 환각성분 이보게인, 한 달 만에 80% 치료효과
‘엑스터시’의 성분인 MDMA와 ‘마법버섯’의 성분인 실로시빈에 이어 아프리카산 관목에서 추출된 환각성분인 이보게인(Ibogaine)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우울증 치료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5일(현지시간) 《네이처 의학(Nature Medicine)》에 발표된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과학전문지 《네이처》가 보도한 내용이다.
이보게인은 중앙아프리카가 원산지인 관목인 타베르난테 이보가(Tabernanthe iboga)의 껍질에서 추출되는 환각성 물질이다. 스탠퍼드대 놀런 윌리엄스 교수(신경과학) 연구진은 퇴역군인 대상의 소규모 임상시험에서 이보게인 투약 후 한 달 만에 PTSD와 우울증 같은 외상성 뇌손상(TBI) 증상이 평균 80% 이상 감소했다고 밝혔다. 윌리엄스 교수는 “이 약은 광범위하고 극적이며 일관된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TBI는 폭발이나 전투로 인한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인한 뇌손상으로 PTSD와 우울증, 불안장애를 포함한 다양한 인지적, 신체적 증상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연구진은 TBI 증상이 있는 참전용사들이 MDMA나 실로시빈에 비해 덜 알려진 이보게인을 찾는다는 소문을 접하고 그 약효를 검증하기 위한 TBI 증상을 겪고 있는 30명의 남성 퇴역군인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실시했다.
연구진은 이보게인을 직접 처방하지 않았다. 대신 멕시코의 한 시설에서 이를 투약 받은 참가자들에게 부작용을 낮추기 위해 마그네슘 보충제를 제공했다.
연구진은 치료 한 달 후 참가자들이 PTSD 증상에서 88%, 우울증 증상에서 87%, 불안장애 증상에서 81%가 평균적으로 감소한 것을 발견했다. 인지기능과 이동성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참가자들은 치료 전에 경증에서 중등도의 장애를 가졌으나 치료 후 1개월 후에는 사실상 해당 장애가 사라졌다고 보고했다.
참가자들 중 어느 누구도 심장 부작용을 경험하지 않았다. 논문을 검토한 뉴욕대 그로스만의대의 마리아 스틴캄프 교수(임상심리학)는 적절한 선별과 투여가 해로운 부작용의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개념적 증거”라고 말했다. 퇴역군인의 PTSD를 연구해온 그는 “이보게인은 아편성 진통제(오피오이드) 중독증 치료가 아니면 의료진도 사용을 꺼리는 약물”이라면서도 “PTSD 치료를 위해 새로운 개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UC버클리)의 귈 돌렌 교수(신경과학) 연구진의 동물실험 결과는 신경계가 유연한 상태를 유지하는 임계기(critical period)를 일시적으로 다시 열어주는데 이보게인이 탁월한 효능을 보인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보게인과 다른 환각제 4종을 생쥐에게 투약하고 임계기가 다시 열리는 기간을 조사했을 때 실로시빈의 경우 임계기가 최대 2주 유지된 반면 이보게인은 최소 4주 동안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을 검토한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의 앨런 데이비스 교수(임상심리학)은 이번 연구로 “이보게인의 효능과 안정성에 대한 엄격한 시험이 시작되기에 충분한 데이터”라고 인정했다. 그렇지만 그는 이보게인 연구에 다시 수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미 말기 임상시험이 진행 중인 MDMA와 실로시빈이 “훨씬 더 나은 후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논문은 다음 링크(https://www.nature.com/articles/s41591-023-02705-w)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