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 살리고 떠난 약사 아빠...아파트 화재 눈물의 발인
불길 피해 딸 품에 안고 4층에서 뛰어 내린 아빠... 28일 발인
“늘 가족과 이웃을 챙기던 분이었는데...”
성탄절 새벽 서울 도봉구 방학동 아파트 화재로 숨진 사망자 2명의 발인식이 28일 엄수됐다. 유족과 조문객들은 그날의 안타까운 장면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쳤다. 숨진 30대 남성 2명은 거센 불길과 매캐한 연기 속에서 가족을 먼저 대피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25일 새벽 방학동 23층 아파트 3층에서 치솟은 불길이 번지자 4층에 살던 B씨(33)는 먼저 2세 딸을 이불에 감싸고 1층의 대피용 재활용 포대 위로 던졌다. 아내도 뛰어내린 것을 확인한 그는 생후 7개월 딸을 품에 꼭 안고 뛰어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두 딸은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없지만 아빠는 떨어지면서 머리를 크게 다쳐 병원에서 끝내 숨졌다. 딸을 꼭 안은 아빠의 몸이 쿠션 역할을 해 막내 딸이 크게 다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엄마는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어깨와 허리 골절상을 입어 입원 치료 중이다. 간호사인 엄마는 고등학교에서 보건 교사로 일하며 남편의 약사 시험 준비를 뒷바라지했다. 아빠는 지난해 약사 시험에 합격해 집 근처 약국에서 일하면서 가족의 미래를 설계해왔다. 대학 시절부터 의약품을 취약 계층에 전달하는 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등 이웃 사랑도 남달랐다.
이날 발인식에 입원 치료 중인 엄마와 두 딸은 참석하지 못했다. 조문객들은 “아빠가 유난히 가족들을 아껴 참 단란한 가정이었는데... 엄마와 아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안타까워 했다.
서울 노원구에서 약사로 일했던 고인은 늘 자상하고 친절했다. 약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주민들의 주목을 받았다. 조문객들은 갑작스런 화재로 애꿎은 가족들이 고통받고 있는 것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아파트 화재를 처음 신고한 뒤 비상계단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던 L씨(38)의 발인식도 이날 엄수됐다. 고인도 가족을 먼저 대피시키고 화재 현장을 빠져나오다 세상을 떠났다.
성탄절 새벽을 덮친 화마로 인해 단란했던 가족들의 마음에 엄청난 생채기가 났다. 연말이면 유난히 가족 사랑이 절실한 시기인데 큰 기둥들이 너무 일찍 떠났다. (가족들을 지키며 먼저 떠난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