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약 시기 놓치면 무슨 소용"...희귀질환 약제 심의제도 개선 목소리
비정형 요독성 용혈증후군, 승인률 해마다 감소...올해 승인 단 2건
건강보험(건보) 급여적용으로 희귀질환자들에게 고가의 치료제를 사용하도록 해주는 '희귀질환 약제 사전심의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준다는 측면에서는 의의가 있지만 심사절차가 까다로운 것은 물론 승인회의 탓에 치료 적기에 약을 쓰지 못하는 등 실효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왔었다.
지난 1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은 '희귀질환 약제 사전심의 제도 개선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특히 이날 토론회에서는 비정형 용혈성 요독증후군(aHUS)에 대한 솔리리스(에쿨리주맙)의 낮은 사용 승인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희귀질환 보장성 강화 측면에서의 약제 사전심의제 고찰을 주제로 발표한 순천향대 천안병원 원용균 교수(방사선 종양학과)는 "aHUS 환자가 중환자실에 있으면서 투석을 받고 있는데 응급상황에서 (사전심의를) 신청해 다른 질환이 아닌 걸 명확하게 증명해야 급여가 가능하다"고 지적하며 "응급한 상황임에도 심의신청에 필요한 검사 결과를 기다리다보면 적절한 시기 투약하지 못하는 부분이 아쉽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이어 "희귀질환 약제가 수억을 호가하다보니 장기투여자의 경우 건보 재정에 큰 압박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도 "해당 제도가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몇 가지 개선사항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건보재정이 아닌 별도의 재정(기금)마련 △중단이 가능한 환자들에겐 휴약 기간 고려 △장기 투약 환자에 대한 약가 인하(제약회사) △바이오시밀러(복제약)를 통한 경쟁력 강화 등을 제안했다.
이어 대전을지대병원 신장내과 이수아 교수도 희귀질환 환자들이 적기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선 투약 후 심사' 제도 도입 등 새로운 심의제도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희귀 질환 약제 사전 심의 제도의 취지는 알고 있지만, 취지에만 몰두한 나머지 현장에서 진료하는데 있어선 오히려 장애물로 다가온다"며 "환자를 살리는 것이 최우선이므로 응급 환자는 약제를 선 사용하고 후 심의하는 좀 더 유연한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사전심의 기간 단축·사후 심사 방안' 검토하겠다
토론회에 참여한 정부 관계자들은 현행 14일 정도 걸리는 사전심의 기간을 단축하고 솔리리스 등 안정적으로 오랜 기간 승인되고 있는 약제부터 '사후심사' 형태로 심사 방식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보건복지부 오창현 보험약제과장은 "약제 사전심사를 하는 이유는 고가라는 측면도 있겠지만 투약 경과의 불확실성, 오남용의 우려 등도 있다"면서도 "솔리리스 등 오래된 약제 중 안정적으로 승인되는 약제부터는 사전 승인을 사후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심의일 기준으로 14일 이내로 접수일자를 바꿔 환자들과 의료기관들의 편의성을 높이고자 한다"며 "접수일과 통보일, 서식도 정형화해 병원 작업도 수월하도록 좀 더 논의하겠다"고 덧붙였다.
또한 질병관리청 이지원 희귀질환관리과장은 "aHUS의 경우 50%가 일차성(질병 자체가 원인)이고 나머지가 이차성(다른 질병이 원인)으로 사전심의 과정에서 이차성을 배제해야 하기에 사전심의 제도 자체 필요성은 존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다만 심의 기준이나 실제 심의과정에 있어 좌절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하고 정부도 희귀질환 환자들의 목소리를 더 듣고 더 나은 정책방향에 대해 검토해 보고 폭넓게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한편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aHUS의 치료약제 솔리리스의 사전 승인 처리 지연 및 거절로 사망한 환자는 2020년 기준 12명(신청자 59명 중)이다.
게다가 솔리리스 승인율도 해를 거듭할 수록 낮아지고 있다. 2018년 솔리리스 승인율이 47.7%로 절반에 근접한 수준을 보인데 반해, 2021년 15.9%로 3분에1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또 올해는 1~8월까지 35건의 사전승인 요청을 환자들이 보냈지만, 승인된 것은 단 2건이었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김진아 사무국장은 "희귀질환은 종류는 많지만 질환별 환자 수는 적어 환자 중에서도 특히 약자"라며 승인율을 높이기 위해 "심의 과정에서 해당 병을 진단한 의료진의 처방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필요 시 의료진에 승인 회의 참석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