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환자, 방문객이 한 엘리베이터 탄다고?
[김영훈의 참의사 찐병원] 미래 병원 건축의 조건
“건축가의 운명은 가장 짓궂은 것이다. 한 번도 살아 보지도 못할 건물을 낳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영혼, 심정, 정성을 쏟아붓는가.”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말이다. 괴테는 독일에 있는 노이슈반스타인 성, 호엔촐레른 성, 에렌펠스 성, 라인슈타인 성 등 수많은 옛 성을 보며 건축가의 얄궂은 운명에 동정심을 품었을 것이다.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이나 중국의 자금성, 유럽의 수많은 성을 지은 건축가와 노동자들은 그 궁과 성이 완성된 뒤 단 하룻밤도 그곳에서 잠을 자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의 백악관, 우리나라의 경복궁을 지은 건축가와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을 듯하다.
그런데도 건축가는 그 건물의 주인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정성을 쏟아붓는다. 그리고 100년 후, 500년 후에도 그 건축물이 남아있기를 소원한다. 현대에도 이는 마찬가지지만 현대 건축의 수명은 옛 건물들에 비해 그다지 길지 못하다. 특히 병원이 그렇다. 병원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100년 후에 어떤 질병이 지구를 지배하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코로나19가 닥치면서 병원 건물의 구조에 대한 전반적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감염병에 효율적으로 대비하는 설계가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2015년 메르스(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가 국내에 유입되면서 186명이 감염되고 39명이 사망했다. 그 후 의료법이 여러 차례 개정됐는데 2017년에는 감염병에 대응하는 방법의 하나로 병실 면적 규정이 강화됐다. 1인실과 다인실, 중환자실의 면적과 간격이 더 넓어진 것이다. 예컨대, 예전에는 중환자실에 3개의 침대를 놓았지만 규정이 바뀌면서 2개로 줄어들었다. 그러면 중환자실을 더 늘려야 하고, 그만큼 입원실이 줄어들게 된다.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건물 뼈대는 그대로 둔 채 내부 리모델링을 시행해야만 했다.
코로나19는 메르스보다 더 심각한 상황을 유발했다. 아직 병상 면적과 간격 관련법이 개정되지는 않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개선해야 한다는 데는 의료계가 공감하고 있다. 대형 병원과 건축 설계사들은 이에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질병의 변화에 따라 병원의 프로그램 역시 끊임없이 변한다. 그러나 병원 건물은 그렇게 쉽게 바뀔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건물은 변화를 위한 조력자가 되기도 하고, 당연히 제약이 되기도 한다. 앞으로 어떠한 시스템으로 50년 동안 사용할 것인지가 화두이다.
방문객 출입을 엄격히 관리하는 것은 시대 흐름
미래의 병원은 크기와 관계없이 특히 ‘상호 접촉의 강도와 빈도’를 최소화하는 데 주안점을 둘 것이다. 코로나19 이전 병원에서는 환자 면회가 비교적 자유롭게 이뤄졌다. 병원 규정에 따르면 면회객은 안내 데스크에서 면회 신청을 한 후 허락을 받아 방문증을 달고 환자를 지정된 장소에서 지정된 시간에만 만나야 한다. 그러나 사실 이 규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이를 엄격히 시행하는 병원도 많지 않았다.
누구든 환자가 입원해 있는 병실에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들어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갔다. 병원에서 식사를 제공하지만, 집에서 만든 음식을 가져와 냉장고에 넣어 두기도 했다. 그것을 제지하는 사람도 없었다. 한국인이 지닌 특유의 정(情) 문화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오면서 이러한 무질서는 어느 정도 사라졌다. 뜻밖에 얻은 소득 중 하나이다. 앞으로는 이 규제가 더욱 강화돼야 한다.
방문객의 출입 통제를 강화하고, 병동별로 환자 동선을 분리하고, 의료진의 전용 동선을 확보해야 한다. 입원 환자는 일반 환자와 감염병 환자, 중환자실 환자로 구분된다. 다리가 부러진 환자가 감염병 환자와 같은 병동에 머물면 전염의 위험이 있다. 비포 코로나 시대에는 이 구분이 없었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 공조 시스템도 현재보다 진화된 방식으로 설계돼야 한다. 또한 의료진과 환자들이 생활하는 곳, 다니는 동선도 구분돼야 한다. 의료진이 감염병에 전염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입원 병동을 실제로 총괄하는 간호 간병 통합 서비스도 새롭게 설계돼야 한다. 분산형 간호국(NS∙Nurse Station)으로 개편하는 것이 적합하다. 즉 하나의 층에 통합 NS가 있고, 복도를 중심으로 좌우 병실 라인에 2~3개의 NC(Nurse Corner)가 배치되는 것이다. NS는 청결실과 오염실을 관리하고, 일반인용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모든 방문객을 바라볼 수 있다. 통제가 가능해지는 셈이다. 이때 의료진용 엘리베이터는 반대편에 배치해 일반인과 마주치지 않게 한다. 이 설계는 면적의 크기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이상적 설계라 할 수 있다.
방문객의 출입 통제를 강화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면 NS는 주통로를 사이에 두고 2개가 마주 볼 수 있으며, 병실 접근성에 주안점을 둔다면 복도 가운데에 2개를 설치할 수 있다. 부산 Y 병원은 간호 동선을 최소화한 NS를 배치했으나 방문객 통제는 취약한 편이다. 반면 서울의 S 병원은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 NS를 배치해 방문객 관찰이 가능하지만, 간호 동선이 길어지는 단점이 있어 보조 NS를 설치했다. 이처럼 어느 것이 최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방문객 출입 통제가 강화되는 쪽으로 가야 한다.
환자와 의료진은 만나지 않을수록 좋다
환자별로 동선을 분리하는 문제 역시 쉽지 않다. 이는 방문객과 의료진, 환자가 뒤섞이는 현재의 병원 시스템에서 여실히 볼 수 있다. 병원 엘리베이터는 보통 일반용과 환자용 2개로 분리되어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두 엘리베이터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방문객은 의료진용 엘리베이터가 먼저 오면 망설이지 않고 탄다. 적극적으로 제지하는 사람도 없다. 그 반대로 의료진과 환자가 일반용을 타기도 한다. 비포 코로나 시대에는 감염병 팬데믹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그처럼 설치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해외의 선진 병원에서는 방문객용과 환자 및 의료진용을 처음부터 분리해 설치한 곳들이 적지 않다. 미국 샌디에이고의 팔로마 메디컬 센터는 6억 6000만 달러(약 8580억 원)의 예산을 들여 건설한 의료 단지이다. 병상 수는 360개로 의외로 적지만 최첨단 기능을 갖춘 미래형 병원이다. 이곳은 중앙에는 방문객용 엘리베이터가 있고, 좌우에는 각각 환자·의료진용이 있어 구분이 명확하다.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 있는 클리블랜드 클리닉도 두 엘리베이터가 나뉘어 있다. 그래서 환자 및 의료진과 일반인이 마주칠 일이 드물다.
세계적 추세에 맞추어 우리나라에서도 새로 건설되는 병원은 두 라인을 구분하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분리되면 감염병의 전파를 막을 수 있으며, 혼잡을 줄여 준다. 나아가 팬데믹이 발동되면 병동이 각각 독립적으로 가동할 수 있다. 한 병동은 코호트 격리를 하되 한 병동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앞으로 세워지는 모든 병원은 이처럼 두 라인을 분리해야 병원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
의료진과 환자가 활동하는 곳, 다니는 길이 다르면 모두에게 편리하고 안전하다. 하지만 서울의 대형 병원들도 동선이 분리되지 않아 혼잡스럽기만 하다. 화물용 엘리베이터에 방문객, 의사, 수술을 받으러 가는 환자가 함께 타기도 한다. 음료수 한 상자를 든 방문객이 수술용 침대 위에 누워 있는 환자를 바라보는 것은 피차 서글픈 일이다.
중국도 최근 들어 건설하는 대형 병원에 동선 분리를 엄격하게 지켜 나가고 있다. 건물의 한 층이 둘로 나뉘어 한쪽은 병동, 한쪽은 의료진 공간이다. 환자들이 의료진 공간에 아예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다. 칭다오(淸島) 지모(即墨)병원이 대표적이다. 일본의 아시카가(足利)적십자병원도 의료진 구역을 별도로 설정해 환자와 철저하게 구분한다. 이 병원은 《차세대 그린 호스피톨의 실현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학술서로 국내에 소개된 곳이기도 하다. 미래 병원 건축의 모델이라 할 수 있는 분리 측면에서도 모범을 보인다. 의료진은 중앙 공간으로 이동하고, 환자들은 양옆의 병실을 사용한다. 그래서 의료진이 1층에서 5층의 병동에 올라가 업무를 처리하고 내려올 때까지 단 한 명의 환자와도 마주치지 않는다.
병실 엘리베이터 중 하나는 일반 침대용 엘리베이터의 크기 2배 정도의 대형으로 설치한다. 이는 산소 라인, 온갖 모니터와 기기 장치가 부착되어 있고, 침대 폴더에 주렁주렁 혈관 주입 링거, 수혈백이 달려 있으며, 때로는 침대 위에서 심폐 소생술을 시행하면서 중환자실로 이송해야 하는 환자 전용이다. 나아가 대형 의료 장비나 집기의 신속한 운반에도 쓰일 수 있다. 이렇듯 이때까지 비교적 정형화된 병원 건축 구조의 프레임을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바꾸어야만 앞서 말한 일들이 가능해진다.
우리나라 미래 병원은 이 모든 것을 종합해 최소 50년을 유지할 수 있는 건물이 되어야 한다. 100년도 충분히 갈 수 있지만 어떠한 팬데믹이 어떤 형 태로 언제 닥칠지 알 수 없기에 50년 후를 상정하는 것이다. 이 다양한 요구들과 시대 흐름을 반영하여 한정된 땅에 병원 건물을 짓자니 매우 힘들 것 이다. 그래도 괴테의 말처럼 모든 정성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러나 몸이 건강해 그 병원에서 단 하루도 머물지 않는 것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