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가 아프리카 환자인 희귀 혈액병...치료약은 수십억 원?
겸상적혈구병, 유전자가위 활용 치료법 개발에도... '그림의 떡'
전 세계 환자의 75%가 빈국이 모여있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겸상적혈구병(SDC)에 대한 두 가지 획기적인 유전자 치료법이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그렇지만, 치료제 비용만 수백만 달러(수십억 원)에 이르는 가격이라 정작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겐 ‘그림의 떡’과 같다고 미국의 뉴욕타임스(NYT)가 9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겸상적혈구병은 적혈구의 산소 운반 성분인 헤모글로빈을 비정상적으로 생성하는 유전자 변이로 인해 발생한다. 원형이어야 할 적혈구가 낫 모양(겸상)으로 형성돼 혈류를 방해하면서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거나 뇌졸중과 장기부전을 초래한다.
건강한 사람의 골수(조혈모세포)이식만이 유일한 치료법이지만 수술로 인한 사망률이 5~20%에 이를 만큼 위험하기에 중증인 경우 한해 이뤄진다. 그래서 대다수 환자는 정상적 적혈구를 정기적으로 수혈하거나 적혈구를 둥글게 유지해줘 고통을 덜어주는 ‘히드록시우레아(hydroxyurea)’라는 알약을 복용해야 한다.
이번에 승인된 유전자 치료법은 정상적 헤모글로빈을 생성할 수 있도록 유전자를 교정해 평생 지속되게 해준다. 미국 제약사 버텍스 파마슈티컬스와 크리스퍼 테라퓨틱스가 공동 개발한 ‘캐스제비(Casgevy)’는 크리스퍼(CRISPR) 유전자가위 기술이 적용된 최초의 치료법이다. 환자의 골수에서 줄기세포를 채취해 실험실에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세포의 DNA를 절단하거나 편집한 뒤 환자에게 다시 주입한다. 또 미국 제약사 블루버드 바이오가 개발한 '리프제니아(Lyfgenia)'는 환자에게 변형된 유전자 사본을 주입해 기형 세포 발생을 억제하는 특정 헤모글로빈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식의 치료법이다.
문제는 이들 치료법의 가격이다. 승인 직후 발표된 정찰가격은 리프트제니아 310만 달러(약 41억원), 캐스제비 220만 달러(약 29억원)였다. 리프트제니아는 미국 시장을 우선 겨냥하고 있으며 캐스제비는 전 세계 겸상 적혈구 인구의 2%가 사는 6개 부유한 국가(미국,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독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우선적으로 승인을 획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 겸상적혈구병 환자의 4분의 3이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 살고 있다. 이들 중 해당 치료법이 절실히 필요한 중증환자만 해도 수백만 명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경우 전체 겸상적혈구병 환자 10만 명 중 중증환자가 약 2만 명이 되는데 대부분 흑인 아니면 히스패닉이다.
겸상적혈구병을 유발하는 돌연변이는 서아프리카에서 7000년 전에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전세계적으로,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프리카 혈통이다. 이 병은 말라리아가 풍토병인 지역에서 가장 흔해졌는데, 이는 2개의 유전자 사본 중 하나가 말라리아 감염을 예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유전자 사본을 2개 모두 갖게 되면 적혈구를 혈관을 막는 낫 모양으로 변형시키게 되면 극심한 고통과 함께 평균 수명이 55세 이하로 떨어지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아프리카 국가에 사는 환자들에겐 가격뿐 아니라 의료 기반 시설의 부족도 커다란 장벽이다. 이 치료법을 투여하는 것은 줄기세포 이식을 할 수 있는 의료 센터에서 수개월에 걸친 과정이다. 환자들은 세포를 채취해서 생산을 위해 실험실로 옮겨져야 하고, 혹독한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며, 오랜 입원 생활을 견뎌야 한다.
버텍스의 최고 과학 책임자인 데이비드 앨트슐러 박사는 "이처럼 자원 집약적인 약은 의료를 위한 자원의 양이 더 제한적인 많은 곳에서는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의 겸상적혈구병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알약 등 더 저렴하고 쉬운 접근법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우리는 다음 단계의 시작에 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블루버드 바이오의 대변인 제스 롤런즈는 그러한 유전자 치료에 필요한 기반 시설이 “세계의 많은 곳에 존재하지 않는” 불행한 현실이라며 블루버드가 “앞으로 세계적인 접근을 지원할 수 있는 접근법에 계속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약들은 종종 세계의 저소득 국가에 도착하기 몇 년 전에 고소득 국가에서 먼저 출시된다. 엄청난 가격의 최첨단 치료법이 부자나라 환자들의 삶을 바꾸어 놓으면서, 이러한 격차는 최근 몇 년간 악화돼 왔다. 제조업체들은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곳에서 더 높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그 비용을 지불할 여유가 없는 것이 명백한 국가에서도 고가 정책을 유지한다. 특히 버텍스는 획기적 낭포성섬유증(CF) 치료제를 여럿 개발했지만 고가정책을 유지해 저소득 국가의 수만 명의 환자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과 그 밖의 고소득 국가에서 '캐스제비'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줄기세포 이식수술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은 의료센터에 가게 된다. 미국에 본부를 둔 '세포치료제 인증재단' 인증을 받은 임상프로그램은 8개국 근 200개인데 대다수는 미국이 대다수이고, 아프리카는 한 곳도 없다.
접근성에 대한 의문은 미국에 사는 겸상적혈구병 환자들에게도 적용된다. 흑인과 히스패닉이 대부분인 그들은 빈곤층이 많으며 이 병에 대해 의료보험 혜택을 주지 않는 주에 사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대부분의 아프리카 겸상적혈구병 환자들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니다. 아프리카 국가 중 소수만이 부유한 국가에서 표준적으로 행해지는 신생아에 대한 겸상적혈구병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검사를 받지 못한 아기들은 겸상적혈구병 환자에게 치명적인 페렴 감염을 막기 위한 페니실린 치료법을 놓친다. 그 결과 나이지리아에서는 겸상적혈구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의 반 정도가 다섯 번째 생일 전에 죽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알약 히드록시우레아 복용도 쉽지 않다. 나이지리아에서 이 약은 환자 당 매달 약 7달러가 드는데 이는 물론이고 그를 대신할 기본적인 진통제조차도 구입할 여유가 되지 않는 가정이 대부분이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몇몇 의료 센터들이 최근 겸상적혈구병 환자를 위한 골수 이식을 시작했지만, 소수의 부유한 아프리카 환자들에게만 가능하다. 탄자니아의 수도인 도도마에 있는 벤자민 음카파 병원은 환자 당 약 5만 달러의 비용을 정부 부담으로 이식수술을 해주고 있지만 지금까지 다섯 차례에 불과했다.
적지만 점점 더 많은 수의 아프리카 환자들이 골수 이식을 위해 인도로 여행을 떠나고 있다. 인도에서는 골수 이식 수술을 하는 것이 더 저렴하고 병원들이 더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아프리카 국가의 의료진들은 인터넷을 통해 유전자치료법 개발 소식을 접한 환자들로부터 언제쯤 그 치료를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있지만 뭐라 답해줘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