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쌓이는 약봉지' 방치하면?... "약 뺄 줄도 알아야 건강"

분당서울대병원 입원전담진료센터 김선욱 교수 인터뷰

노인들은 약물을 먹는 데 주의해야 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국 노인들은 지나치게 약을 많이 먹는다. 202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3개월 이상 5개 이상 약물을 만성적으로 복용하는 75세 환자 비율'은 무려 70.2%에 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사한 7개국 평균인 48.3%보다 월등히 높다.

2025년 초고령 사회에 진입을 앞두고 노인들의 약 복용 패턴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여러가지 약 복용과 관련한 '다약제' 연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11월에는 무려 10년 간에 걸쳐 330만 노인들의 다약제 복용과 부적절약물 실태를 조사한 발표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분당서울대병원 입원전담진료센터 김선욱 교수와 서울아산병원 정희원 교수,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윤지은 성과연구팀장과 함께 노인 인구에서 다약제(5개 이상 약물) 복용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실시하는 66세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을 받은 이들이 대상으로 했다. 김 교수는 "다약제 연구가 가장 많이 비판 받았던 지점은 인과 관계를 제대로 증명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다시말해 원래 몸이 안좋아 약을 많이 먹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후에 여러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처럼 같은 나이에 건강검진을 받은 이들을 대상으로 통계적으로 보정하면 비슷한 질환을 가진 사람, 질환 개수가 비슷한 사람, 노쇠 정도가 같은 사람 중에서도 부적절 약물을 더 많이 먹고 있는 사람들과 덜 먹고 있는 사람을 비교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약 안주면 진료실 안나간다는 환자도"...처방 관행 역시 영향 

연구에 따르면 다약제 복용자는 물론 부적절 약물 복용자가 매년 늘고 있다. 이로 인한 사망 혹은 장애 위험도 늘었다. 우려의 목소리는 계속 나왔지만, 개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대규모 데이터를 통해 나타난 것이다.

김 교수는 이 이유에 대해 환자는 물론 의료계 대부분도 여전히 '덧셈'에만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어디가 안좋으면 약을 먹는다는 인식이 깊숙히 뿌리 박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약물을 줄이는 것이 되레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아직은 낯설다는 것이다. 다만 노인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뺄셈'에 대해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알려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Q. 노인 환자들의 약물을 줄이기 어려운 주된 이유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어디가 안좋으면 약을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정말 강한 것 같다. 노인병 내과 근무했을 당시 환자들이 당시 복용하는 약의 양을 보고 정말 놀랐다. 종류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것은 건강을 고려해 약을 줄여주거나 노인 부적절 약물을 바꿔주면 환자들이 다시 재방문을 하지 않거나, 이전의 패턴으로 다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신 분들이 많다. 상태가 좋아지면 약을 끊을 수도 있는 건데, 약을 뺀다고 하면 의사가 '나를 포기하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진료실에서 약을 처방해주지 않을 경우 과하게 더 달라고 하는 떼를 쓰거나, 의사가 약을 처방해주지 않으면 진료실에서 아예 안 나가겠다고 하는 경우마저 있다.

처방관행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의대에서 어떤 병에는 어떤 약을 쓰라는 것은 많이 배우지만, 언제 약을 끊을까에 대해서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때문에 어쩌면 관성적으로 환자가 증상을 이야기 하면 약을 처방해주는 경우가 많다.

Q. '노인 부적절 약물'을 좀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

-약물 이름을 어떻게 붙일까를 두고 연구진들이 고민을 많이했다. 가장 표현이 센 용어는 노인 부적절 약물, 가장 약하게 말한 것은 노인 주의의 약물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번에 연구진이 쓴 용어는 '잠재적 노인 부적절 약물'이다. 잠재적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미국에서도 PIM(potentially inappropriate medication), 잠재적 부적절 약물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말 그대로 쓴다고 해서 바로 건강에 해를 입히는 것은 아니지만 잠재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것이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on-Steroidal Anti-Inflammatory Drug)라고 할 수 있는데, 어깨가 아프거나 다리, 허리가 아플 때 사용하는 진통제들이 있다.

Q. 너무 흔하게 먹는 약물들 아닌가?

-맞다. 정말 흔하게 먹는 약들이다. 문제는 장기간 복용하는 경우다. 시간이 길어지면 위장관 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염증이 생기거나 출혈 위험이 높아지는 것이다. 피를 토한다던지 혈변을 쏟아낸다던 지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위궤양과 십이지장궤양을 같이 소화성 궤양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동반되면 속이 쓰리거나, 속이 불편, 소화불량 등 증상이 나온다. 또 신부전(콩팥), 심부전(심장) 등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 두 증상이 더 악화된다. 따라서 몸이 더 부을 수도 있고, 숨이 차고 콩팥기능도 일시, 영구적으로 나빠질 가능성도 있다.

아울러 혈압약을 먹는 사람의 경우, 이런 진통제를 같이 먹는 경우 혈압약의 약효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생길 거나, 통풍의 위험도 높아질 수 있다.

Q. 노인들에게 특히 위험한 이유가 있나?

-약은 우리 몸 속에 들어와 4단계를 거친다. 흡수, 분포, 대사, 배설이다. 노인이 되면 각 단계를 관장하는 신체의 기능이 젊은 사람에 비해 떨어진다. 결국 같은 약을 먹더라도 노인의 경우 더 큰 타격을 받을 수도, 효과가 덜 나올 수도 있다. 간이나 신장의 기능이 젊은 사람에 비해 급격하게 약화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증상이 있으면 무조건 약부터 찾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증상을 조절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약 없이도 나아질 수 있는 증상도 있어"...전문인력 양성도 시급 

지나치게 많은 약물을 복용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빼기'가 쉬운 일만은 아니다. 각 개인별 건강 상태나 질병이 제각각인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있으면 무조건 약부터 찾는 '관성'만 버려도 약을 줄일 수 있는 경우는 많다고 김 교수는 지적한다.

Q. 부적절하거나 불필요한 약물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특정 증상이 있으면 일단 약을 먹고 본다는 식의 태도를 바꾸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수면 장애 때문에 신경안정제나 수면제를 처방해달라고 하는 환자들 중 생활패턴 자체가 잘못된 경우도 있다. 중간에 낮잠을 잔다거나 하는 식이다. 이런 경우 생활 습관만 바꿔도 약을 줄일 수 있다.

이에 더해 증상이 개선되면 약을 끊는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 일단 시작한 약이라고 해서 모두 끝까지 계속 먹어야 할 필요는 없다. 증상이 개선될 경우 의사와 적극적으로 상의를 해보고 끊는 시기를 정해보는 것도 좋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정책 당국에서도 1년에 한번씩은 노인들에게 부적절 약물에 대해 정리를 해준다거나, 검토를 해주면 더욱 좋을 것이다.

Q. 우리나라에는 노인 약물 복용에 대한 가이드라인 있나?

-미국의 가이드라인을 주로 이용한다. 미국노인학협회에서는 노인에게 제한할 약물 목록을 정리한 비어스 크라이티리어(Beer's criteria)를 제공한다. 유럽노인병학회는 스톱앤드스타트(STOPP/START)라는 관련 리스트를 내놓는다. 각 병원 자체적으로 가이드라인을 가진 경우가 많다. 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 같은 곳에서도 복용약을 입력 시 안전성을 점검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중복 약물이나 노인 부적절 약물 등을 알람으로 알려준다.

다만 지침이 있다고 해도 획일적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건강상태도 다르고 가지고 있는 질병이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지고 있는 질환이 2~3개로 늘어날 경우에는 더 쉽지 않다. 같은 노인이라도 건강이 괜찮아 젊은 사람 수준으로 혈압과 당뇨를 관리해도되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 더 느슨한 기준으로 관리돼야 되는 노인도 있다

Q. 부적절 약물을 줄이기의 핵심은 결국 '개별 관리'라는 말인데

-부적절 약물이라고 하더라도 일괄적으로 줄이는 것은 강제할 수는 없다. 앞서 언급한 개인적 차이도 있고, 일부 약물의 경우 안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통증이 있으면 소염제를 먹고, 잠이 안오면 수면제를 먹는 것이 널리 퍼진 처방 관행이다. 게다가 노인복지센터나 복지관에서는 약을 노인들끼리 나눠먹는 경우도 있다. 또 먹다보면 약이 쌓이기도 한다. 그것을 버리지 않고 상비약처럼 쌓아놓고 먹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강제적으로 어떤 지침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개별적인 부분을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고, 제도나 수가 조정도 필요하다. 문제는 관리해줄 인력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것은 실질적으로 관리해줄 수 있는 훈련된 전문가들이다. 그러나 현재 노인병센터나 노인내과가 있는 병원이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준이다. 제도를 만들어도 잘 관리되기는 쉽지 않다.

Q. 노인병학회 등 단체에서 약을 줄이는 방향으로 논의되는 것이 있는지

-병원들마다 다약제와 관련해 관리를 하고 있는 곳들이 있기는 하다. 약의 효과, 용량, 변경 여부, 사용목적 살피기 등을 관리하는 것이다. 다만 일부 병원에 지나지 않는다. 노인병학회 등에서도 노인병과 약물에 대해 전문적 지식을 갖춘 핵심 인력을 늘려가야 하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할 일이 더 많아질 것으로 본다. 여러 자리에서 혹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도 강연을 진행하면서 대중과 의료계 관심이 증폭될 수 있게끔 하는 시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다약제 복용에 대해 추가적으로 연구할 부분은?

-어떤 사람들의 약을 줄여주는게 가장 효과가 좋을 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약을 줄여도 건강 유지에 무리가 없고, 만족도도 높은 환자들을 골라내 이들에 대한 조사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연구 결과 좋은 결과가 도출되면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지금까진의 데이터를 보면 무엇보다 '의지'가 중요한 것 같다.  자신이 먹는 약이 너무 많다고 줄여달라고 먼저 찾아온 사람들은 매우 만족했고 유지율도 좋았다. 또 약물 부작용을 경험한 사람이 있는 경우 약을 줄여 만족도와 유지율이 좋았다. 결국은 약을 많이 먹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교육하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입원전담진료센터 김선욱 교수 [사진 임종언 기자]
    윤은숙 기자
    임종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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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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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ik*** 2023-12-12 10:58:47

      아주 좋은 건강정보 입니다.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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