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간병하는 남편... 중년 부부의 선택은?

[김용의 헬스앤]

서로 사랑하며 결혼 반지를 끼워준 부부도 늙고 병들면 '요양병원 이별'이 예정된 수순일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아내가 집에 혼자 있어서... 고맙지만 다음에 보기로 해요...”

동창 몇 명이 나이 든 은사님께 식사 초대 전화를 드렸더니 완곡한 거절의 응답이 왔다. 사모님의 건강이 안 좋다는 것은 알았지만 많이 나빠진 것 같았다. 선생님 집 근처서 뵙자고 해도 “한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다”고 했다. 사정을 알아보니 선생님은 뇌경색(뇌졸중)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사모님을 혼자서 간병 중이었다. 한쪽 몸이 마비되고 언어 장애에 시력도 나빠져 거의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상태였다.

자식들은 요양병원 입원을 권했지만 선생님이 “내가 직접 돌보겠다”고 한사코 거부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유행 중 요양병원-시설에 들어간 환자들 가운데 사망자가 많이 나온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보내느니 자신이 직접 간병하는 게 안전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는 “평생 나 때문에 고생한 아내가 혼자 아프게 할 순 없다”고 했다. 동창들은 나이 든 은사님의 아내 사랑에 숙연한 모습이었다.

86세 어머니를 공원에 방치한 57세 아들... 일본 뿐일까?

지난 10월 14일 새벽 일본 미야기현에서 한 고령 여성이 공원 벤치에 오래 앉아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구급대원이 출동해 보니 이 여성은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진 후 사망 판정을 받았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소지품 하나 없어 신원 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 두 달 여의 수사 끝에 86세 어머니를 일부러 공원에 방치한 57세 아들을 체포했다. 경찰은 아들에게 돌봄이 필요한 어머니를 공원 벤치에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적용했다. 아들은 지난 2014년부터 노모와 함께 살며 간병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일본에선 돌봄을 둘러싼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돌봄 관련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처음부터 병든 부모나 배우자를 방치하는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 병시중을 하다 보면 처음 먹었던 마음이 점차 사라질 수 있다. 몸이 불편한 가족을 몇 년 동안 돌보다 지쳐서 나쁜 선택을 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중년의 나이에 뇌졸중, 치매가 일찍 찾아오면서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간병 문제는 이제 나에게 다가온 발등의 불이다.

나는 부모 부양하지만, 자식에겐 바라지 않아”... 5060낀 세대

‘긴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이 있다. 효자라도 부모가 장기간 병을 앓으면 시중에 소홀해 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젠 정말 옛말이 되는 것 같다. 예전처럼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최근 19~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녀에게 부모 부양의 의무를 지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응답이 83.2%나 됐다. 50~60대 중년들은 이른바 ‘낀 세대’다. 자신은 나이든 부모를 돌보지만 자식에겐 바라지 않는 세대다.

중년 부부들은 나이 든 양가 부모님을 챙겨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특히 부모님이 치매를 앓게 되는 것에 대한 걱정이 크다. 연로한 부모님이 몸져 누울 경우 간병에 대한 심리적-경제적 부담감이 높아진다. 예전처럼 집에서 간병하는 것은 어렵다.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요양병원이다. 경제적 부담이 크면 위생 수준이 떨어지는 시설의 다인실에 입원해야 한다. 코로나 유행이 아니더라도 평소에도 폐렴 등 노인에겐 치명적인 호흡기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은 곳이다.

남편, 아내가 병으로 거동이 매우 불편한 경우... 어떤 선택?

지금 중년 부부에겐 간병-돌봄이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60대에 뇌졸중을 겪고 치매를 앓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배우자가 병으로 거동이 매우 불편한 경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요양병원에 보내야 할까? 아니면 내가 집에서 끝까지 돌봐야 하나? 어차피 자식들에게 부담을 줄 수는 없다. 남편, 아내가 스스로 책임지고 선택을 해야 한다.

집에서 전문 간병인을 쓰면 한 달 300만~400만 원에 달하는 경제적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 요양병원이 싫다면 장기요양보험의 재가(집)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다. 현재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은 노인이 집에서 머물면 재가급여로 100만원 정도의 서비스를 받는다. 그러나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의 재가급여를 250만 원까지 늘리면 요양보호사의 체류시간이 2배가 되고, 의료진이 한 달에 1~2번 집에 직접 와서 건강을 살펴준다. 병원 동행에 목욕 지원, 도시락 배달도 가능하다.

늙고 병들면 꼭 시설로 가야 할까?... 온 가족의 숨결이 어린 내 집은?

“평생 나 때문에 고생한 아내가 혼자 아프게 할 순 없다”는 나이 든 남편의 토로는 중년 부부의 마음을 울린다. 긴병에는 효자는 물론, 배우자도 없을지도 모른다. 힘든 돌봄은 지원 인력에게 맡기고 나이 든 남편은 병든 아내의 손만 잡고 위로만 할 순 없을까? 장기요양보험의 재가(집) 급여를 크게 늘리고 질을 높이는 방안이 빨리 마련돼야 한다.

늙고 병들면 부부의 ‘요양병원 이별’이 예정된 수순이 돼선 안 된다. 오래도록 정든 내 집을 떠나 낯선 시설에서 꼭 숨을 거두어야 할까? 세상을 떠나도 온 가족의 숨결이 어린 내 집에서 떠나는 날이 와야 한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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