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고환까지 미세혈관을 잇는다...장기 이식 어디까지 왔나
[박준규의 성형의 원리]
2005년 11월 말, 제가 대학병원에 근무할 때였습니다. 교수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 교수실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던 중, 교수실의 전화가 울렸습니다.
전화를 받으신 교수님께서 "아는 기자가 전화했네. 박 선생, 통화가 오래 걸릴지도 모르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하자."라고 말씀하셨고,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수실을 나왔습니다. 문을 열고 나오는 짧은 시간 동안, 통화하는 교수님의 목소리를 본의 아니게 약간 듣게 되었습니다.
"뭐? 안면 이식을 했다고? 그럴 리가 없어. 남의 조직을 이식하면 면역 때문에 그 조직은 살 수가 없거든. 그래서 평생 면역 억제제를 먹어야 한다고. 그러니까 이식은 심장이나 콩팥처럼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장기에만 하는 거야." 교수실을 나서며 저 또한 의아했습니다. '안면 이식이라니,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 아닌가.'
그런데 그날 저녁, 세계 최초로 안면 이식이 시행되었다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식은 세계적으로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많은 언론들이 영화 '페이스오프'를 언급하며 의학의 발전에 놀라움을 표했습니다. 누군가는 안면이식의 윤리적 검토에 대해 우려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얼굴을 쉽게 바꾸는 세상이 올까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안면이식이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수술이지만, 당시 의사들이 느꼈던 충격은 비단 수술의 난이도나 복잡성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전까지 '이식'이란 심장, 간, 폐, 신장처럼 생명유지를 위해 대체 불가능한 장기에 한해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수술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물론 '얼굴이 없는 삶'의 고통은, 신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투석을 받아야 하는 고통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하지만, 큰 수술을 받고 평생 면역억제제를 먹으며 '면역 결핍 상태로 사는 부담'을 감수하는, 생존 그 자체를 위해서만 할 수 있다 생각했던 치료법이, 얼굴이라는 '삶의 질'에 관련된 조직에서도 시행 가능하다는 관점은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잠시, 장기 이식과 성형외과의 관련성을 굳이 설명드리자면, 안면이식 뿐 아니라 이식 팀에는 성형외과 의료진이 늘 포함됩니다. 이식에서 성형외과 의사가 중요한 이유는 장기와 기관의 형태를 만드는 것이 성형외과의 주 업무여서이기도 하고, 현미경으로 혈관을 잇는 등 이식 수술의 핵심 과정인 '미세수술'이 성형외과의 전문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1954년 최초로 인간에서 신장이식을 성공했던 조셉 머레이(Joseph E. Murray) 역시 하버드 의대의 성형외과 교수였습니다. 그는 최초로 신장이식 수술을 성공하고, 이식 후 거부반응과 면역억제에 대해 연구해 온 업적으로 199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식의학의 발전은 수술법 뿐 아니라, 면역억제와 거부반응, 이식된 장기 혹은 기관의 기능적 회복, 윤리적 문제까지 포함하는 복잡한 길을 거쳐왔습니다.
최근 새로운 장기이식에 대한 뉴스가 거듭 들려왔습니다.
10월 30일에는 미국에서 세계 두 번째로 유전자 변형 돼지 심장을 이식받은 환자가 6주가량 생존 후 사망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분명 고무적인 소식이지만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입니다.
인간에게 면역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변형하여 생산한 돼지 등 동물의 장기를 이용하는 이종이식(xenotransplatation)은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 방법으로 기대를 받고 있으며, 이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11월 11일에는 세계 최초의 안구 이식을 알리는 뉴스가 들려왔습니다. Eduardo D. Rodriguez 성형외과 교수가 이끄는 뉴욕대 의료진은 업무 관련 고전압 전기 사고로 왼쪽 얼굴, 코, 입, 왼쪽 눈이 손상된 46세 환자에서 안면과 왼쪽 눈을 함께 이식하는 것에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안구를 이식하고 시신경을 연결한다고 해서 시력이 회복되지는 않습니다. 아직까지 안구 이식의 주된 목적은 '외양'입니다. 이식된 눈은 혈액 공급이 잘 되어 뚜렷한 회복의 소견을 보인다고 합니다. 건강해 보이는 눈이 있는 것만으로 외양적으로도 훨씬 나은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아직은 안구 이식이 시각의 회복을 위한 것이 아니지만, 이것이 미래에도 시력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실험적으로는 도롱뇽 등에서 눈 이식으로 시력이 회복되는 연구 결과들도 있습니다. 안구가 생존해 있기 때문에 이후 전극 삽입을 통해 뇌의 신경 네트워크와 눈을 연결하는 등의 연구 가능성도 열릴 것입니다.
11월 17일에는 국내 최초의 자궁이식 뉴스가 있었습니다. 올해 1월 MRK 증후군으로 선천적으로 자궁이 없는 35세 환자에게 44세 뇌사자의 자궁을 이식했고, 현재 10개월가량 지나 자궁이 정상 기능을 회복하고 있어 임신을 준비한다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이제 장기이식이 출산의 영역까지 다룰 정도가 된 것입니다. 자궁 이식 초기엔 면역억제제의 사용이 태아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 등도 제기되었지만, 자궁이식 후 출산은 이미 세계적으로 두 자릿수의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 사기 피의자의 '고환 이식'이라는 이야기가 가십 뉴스에 오르내리기도 했습니다. 고환 이식이 기술적으로 특별히 어려운 수술은 아닙니다. 이미 1970년대에 일란성 쌍둥이에서 실제로 시행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극히 드물게 시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널리 시행되는 수술이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대체재가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굳이 고환 이식이라는 방식이 아니라도 정자를 제공받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이식된 고환에서 생산된 정자는 기증자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한계도 존재합니다. 일례로 아프가니스탄에서 폭탄으로 하반신의 상당 부분을 잃게 된 퇴역군인에게 음경과 음낭을 이식하는 수술이 2019년 존스 홉킨스 의대에서 성공적으로 시행되었지만, 당시에도 같은 이유로 고환은 이식하지 않았습니다.
'시행하지 않으면 사망하는 장기만 이식할 수 있다’는 기준은 이제 더 이상 통용되지 않습니다.
과거의 기준으로 '그럴 리가 없는 수술'들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현실화될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는 아직 이런 수술들에 대한 동의와 지침들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윤리적인 논의가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의학의 발전은 생명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인체는 교체 가능한 부품으로 이루어진 기계가 아닙니다.
국내 최초 자궁 이식의 기증자는 출산 경험이 있는 44세 뇌사자였다고 합니다. 딸, 엄마, 아내를 떠나보낸 기증자의 가족에 대해 우리가 함께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