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퇴직 부부의 한숨... “건보료 줄일 수 없나요?”
[김용의 헬스앤]
“명퇴 후 좌절감에 빠져 있는 데... 건보료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직장에서 밀려나 집에서 쉬고 있는 중년 퇴직자는 또 다시 ‘충격’을 경험한다. 남편 퇴직 후 긴축 살림 중인 아내는 “이 액수를 우리가 다 내야 하나?”라며 놀라워한다. 남편이 직장에 다닐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건강보험료(건보료) 부과 기준을 알아보는 등 부산을 떤다. 건보료가 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바뀌면서 ‘체감 액수’가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평생 이 건보료를 내면 안정된 노후가 흔들린다는 생각에 서둘러 알바 자리라도 구하려고 한다.
간신히 집 한 채 마련했는데... 회사 퇴직하니, 건보료가 보인다
회사는 규모가 크고 작든 따뜻한 ‘온실’의 기능을 한다. 이런 현실을 잘 아는 중년 직장인들은 인사부에서 명퇴 압박을 해도 버티는 경우가 있다. 퇴직하면 그야말로 ‘차가운 거리’로 내몰리는 것이다. 직장에 남아 있으면 건보료도 회사(사용자)와 직원(직장 가입자)이 절반씩 부담해 액수가 ‘적게’ 보이는 착시 효과가 있다. 아내도 건보료로 얼마를 떼가는지 신경을 거의 안 쓴다. ‘따박따박’ 월급이 들어오는데 그깟 건보료가 대수냐는 반응이다.
하지만 퇴직하면 상황이 180도 달라진다. 건강보험이 지역 가입자로 전환되어 오롯이 개인 혼자서 부담해야 한다. 평생 허리띠를 졸라매서 간신히 장만한 아파트 한 채와 승용차가 있으면 예상밖의 큰 액수의 건보료에 깜짝 놀랄 수 있다. 특히 남편 퇴직 후 안정된 노후를 꿈꿨던 아내 입장에선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남편이 재취업에 실패하면 건보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재산 리모델링을 계획하기도 한다.
건보료 부과 기준은?... 지역가입자는 소득 외 재산, 자동차까지 대상
건강보험료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복잡한 부과 기준에 따라 액수가 정해진다. 지역가입자의 경우 소득, 재산(전월세 포함), 자동차 등을 기준으로 정한다. 각 부과 요소별 점수를 합산한 보험료 부과점수에 점수당 금액을 곱하여 보험료를 산정한 후, 경감률 등을 적용하여 세대 단위로 부과한다.
이때 ‘소득’은 소득세법에 따라 산정한 이자·배당·사업·기타 소득 금액, 소득세법에 따른 근로·연금소득의 금액 합계액이다. ‘재산’은 토지, 주택, 건축물, 선박, 항공기, 전월세를 포함한다. ‘자동차’는 차량 잔존 가액 4천만 원 이상인 승용자동차만 부과한다. 이전에는 1600cc 이상 자동차에 적용하던 것을 2018년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1단계 개편을 통해 그나마 부담을 줄인 것이다. 이에 따라 사용 연수 9년 미만이면서 차량 가액 4천만 원 이상인 승용자동차만 부과 대상이다. 승합·화물·특수차는 제외한다.
지역가입자의 재산보험료 축소 제안... 반기는 중년 퇴직자들
최근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재산에 부과하는 보험료를 단계적으로 축소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이는 정부의 건강보험 정책을 지원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진이 제시한 것이어서 실현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직장가입자에게는 소득(월급 외 소득 포함)에만 건보료를 부과하지만, 지역가입자에겐 소득 외에 재산, 자동차에도 매겨 형평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제2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2024∼2028년)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 보고서’의 초안에 따르면, 보험료 부과의 공정성을 위해 소득과 개인 중심으로 부과 체계를 개편해서 지역가입자의 재산보험료 비중을 단계별로 줄여나가는 내용이 핵심이다. 지역가입자의 주택·토지 등 재산에 대한 기본공제를 1단계 1억원, 2단계 2억원 등으로 올려서 경감하는 방식이다. 3단계에선 거의 모든 재산보험료를 없애고 고액 재산을 가진 사람에게만 부과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OECD 가입국 중 재산에 지역건보료 부과하는 국가는?
지역가입자에게 소득 외 재산, 자동차에도 보험료를 매기게 된 이유는 월급이 노출된 ‘유리 지갑’ 직장가입자와 달리 소득 파악이 어렵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가입자 보험료의 재산 비중(전월세 포함)은 올해 상반기 현재 41.44%로 상당히 높다. OECD 가입국 중에서 부동산 등 재산에 지역건보료를 부과하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다. 일본도 보험료 중 재산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20~30만 원은 큰돈 인데... 중년 퇴직자에겐 엎친 데 덮친 격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이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나이는 49세다. 법정 정년(60세)을 보장하는 공무원, 공기업 외에 일반 사기업에서 정년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경영 상황이 괜찮아도 40대 중반만 돼도 세대교체를 빌미로 ‘명퇴’ 눈치를 준다. 오너에게 눈도장을 받은 극소수 임원을 제외하곤 중년 직장인은 항상 책상 정리를 해두는 게 마음 펀하다. 버티다 못해 끝내 짐을 싸면 지역건보료에 또 한 번 놀란다. 재취업이 어려운 중년 퇴직자에게 20~30만 원은 큰돈이다.
최근 국민연금 개혁이 화두인 가운데 더 늦게 받는 안이 제시되고 있다고 한다. 50대 퇴직자는 15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재취업이 안 돼 퇴직금을 거의 까먹었지만 막내 학자금, 첫째 결혼 지원, 노부모 간병비 보조 등 돈 들어 갈 곳이 너무 많다. 노후를 위한 국민연금, 건강보험이 오히려 중년 부부들을 심란하게 만들고 있다. 30년 직장생활에 집 한 채 겨우 건진 퇴직자들의 건보료를 크게 줄여주는 방안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