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자살률이 일반인보다 3배 높은 까닭
[김영훈의 참의사 찐병원] 탈북자와 의료서비스
새로운 현상이 생기면 새 단어가 만들어진다. 1960년대에는 ‘가족계획’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70년대에 만들어진 이 단어는 80~90년대까지 사용되다가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악플’이라는 단어는 지금 많이 사용되지만 시대가 변하면 사라질 수도 있다. ‘탈북자’라는 단어는 1990년대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해 지금은 일반명사로 자리 잡았다. 이 단어 대신 ‘새터민’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탈북자를 더 많이 사용한다. 남북한이 통일되면 이 단어는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 그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는 사람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2022년 6월 기준, 우리나라로 들어온 탈북자는 대략 3만3000명이다. 사망자, 이민자 등을 제외하면 한국에서 실제 거주 중인 탈북자는 2만7000여 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들의 삶은 어떠할까?
긍정적 대답보다 부정적 대답이 더 많을 것이다. 우리는 남녀를 차별하지 않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실제 행동은 그렇지 못한 예가 많다. 탈북자도 한국인으로 동등하게 여긴다고 말하지만 실제 나타나는 현상은 정반대이다.
북한 주민이 어떤 이유로든 탈북해 남한에 정착하면 정부와 사회 단체에서 여러 지원을 한다. 그 지원이 남한에서 살아가기에 충분한지, 부족한지를 면밀히 따지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들의 자살률이 현실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익히 아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에서 상위를 차지한다. 부끄러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더 놀라운 것은 탈북자 자살률이 일반인보다 3배 더 높다는 점이다.
누구든지 자기 나라에서 탈출하는 것은 목숨을 건 일대모험이다. 그 힘들고 어려운 모험을 감행해 그토록 그리던 자유국가에 왔음에도 안정적으로 살지 못하고 자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아픔을 우리가 깊이 통찰하기는 어렵지만, 탈북자들은 대개 세 가지 고통을 안은 채 살아간다고 한다.
첫째는 북한에서의 삶이다. 북한에서의 삶 자체가 고통이자 고난이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고 탈북을 한다. 둘째는 탈북의 과정이다. 사회적 통제가 엄격한 북한에서 한 가족 혹은 홀로일지라도 탈북의 여정은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셋째는 남한에서의 삶이다.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왔지만 너무 다른 삶의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좌절하고, 냉대와 편견에 고통받는다. 결국 이를 이겨 내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마지막 방법을 선택한다. 같은 민족으로서 가슴 아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보듬어야 할까? 보듬는 것은 차치하고, 편견과 선입견만이라도 떨쳐 낼 수 있을까?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은 2015년 6월에 창립된 단체이다. 보건의료 교육을 매개로 남북 간 소통과 교류협력을 통해 건강한 통일을 선도하기 위해 의료인들을 주축으로 만들었다. 남북 교류협력 촉진, 통일 한반도에 기여할 보건의료 인력 양성, 남북한 보건의료 교육 복원 등을 목표로 그동안 여러 일을 해 왔다. 필자는 이 재단에 참여해 운영 위원장을 맡아 수년 동안 봉직했다. 또한 남북의학용어사전 편찬 위원장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사전 편찬 외에도 남북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PUST(평양과학기술대학교)와 PUST 의학부의 지속을 위한 후원을 담당하고 있지만 정치적 경색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활동이 매우 제한돼 있다. 또한 우리나라 청년들의 통일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청년 학생 토크 경연’ 대회도 주최한다.
통일에 관심 있는 전국의 대학(원)생이 개인 또는 2인 1조로 대회에 참여할 수 있다. 주제는 매년 달라지지만 ‘건강한 통일, 한반도 건강 공동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경연을 펼친다. 2022년 9월 28일 열린 제5회 대회에는 예선을 통과한 8팀이 참여해 치열한 본선 경쟁을 벌였다. 북한 이탈 학생 3팀, 한반도평화학교 3팀, 동남보건대 2팀이 열전을 벌여 ‘문화 차이 인식을 통한 통일: 여성 질환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한 D대·K대 연합팀이 대상을 받았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통일에 관한 관심도가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에서 통일 토크 경연 대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참가자들이 내건 주제와 강조점 모두 중요하지만 특히 한 학생의 서두 연설이 참석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탈북 후 이화여대에 다니고 있다는 그 여학생은 탈북자들이 처한 남한에서의 현실을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가감없이 들려주었다. 생활 방식의 차이, 경제적 형편의 차이, 인식의 차이, 냉대와 무시, 배려없는 호기심과 값싼 동정. 그 중에는 병원 진료의 어려움도 포함돼 있었다. ‘남한에서는 의료 진료를 받기 너무 어렵다’라고 토로한 그녀는 정보 노출로 생기는 편견을 첫 번째 요인으로 꼽았다. 탈북자임을 알게 되면 그때부터 눈길이 달라 진다는 것이었다.
그 눈길이 탈북자들에게는 멍에로 다가올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환자를 동등하지 못한 시각으로 보는 것, 이상한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는 것 등이 너무 싫어 병원 가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병원뿐 아니라 실생활 곳곳에서 부딪치는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삶이 고달프고 희망이 상실되어 결국 자살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대회장은 침묵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장애는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것 아니냐’ 하고 비판할 수도 있다. ‘목숨 걸고 넘어 왔으면 목숨 걸고 살아야 할 것 아니냐’ 하고 힐난할 수도 있다. 그 말이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비판과 힐난을 하기 전에 우리가 그들을 얼마나 보듬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 민족이 우리 뜻과 관계없이 남과 북으로 나누어진 지 벌써 78년이 지났다. 그동안 교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70년이 넘는 세월은 남북한의 모든 것을 다르게 했다. 의학 용어도 다른 것이 너무 많다. 그 간극이 더 벌어지는 일을 막기 위해 2019년 <남북 의학 용어 사전> 편찬 사업을 시작했다.
어찌 의학 분야뿐이랴. 남북한은 모든 것에서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그만큼 멀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정치, 군사와 관계없는 의학, 문화, 예술, 학술 등의 분야에서 용어를 통일하고, 교류를 활발히 하면 하면 할수록 통일을 더 빨리 맞이할 수 있고, 통일 이후에도 갈등이 줄어들 것이다. 갑작스러운 통일은 남북한 모두에게 재앙이 된다는 것은 우리 모두 인식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 전에 우리는 탈북자들을 마음으로 껴안아야 한다. 북한 이탈 주민이라는 인식 자체를 버려야 한다. 어느 사회 운동가는 다문화 가정이라는 말 자체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단어를 쓰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한다. 그냥 ‘가정’이라는 주장이다. 마찬가지로 탈북자라는 단어 대신에 그냥 주민 김씨, 동네 사람 박씨라고 부르면 된다.
당장 그렇게 하기 어렵다면 탈북자가 편안하게 병원에 올 수 있도록 의료인이라도 솔선수범해야 한다. 동네 사람과 똑같이 대해 주고, 그들이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북한의 의학 용어도 틈틈이 공부해야 한다. 몸의 치료도 중요하지만 마음 건강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미래의 의사는 홀로 사는 사람, 장애인, 탈북자,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정성을 기울이는 마음을 지녀야 할 것이다.
좋은정보 입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