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 치료 어려웠던 '폐암'... '새로운 항암치료법'으로 희망↑
대한항암요법연구회 주도 '면역-화학 병용요법' 임상 결과, 국제 학계서 주목
그간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 지역에서 발생하는 폐암(비소세포 폐암) 환자는 서양에서보다 치료가 어려웠다. 서양 환자들보다 EGFR, ALK 등의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흔하게 일어나면서 정확한 진단과 치료에 난항을 겪었기 때문이다. 서양에선 전체 폐암 환자의 10~15% 수준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약 40% 정도다.
최근 진단 기술이 발전하고 표적 항암치료제도 개발되면서 돌연변이가 뚜렷한 폐암에 대한 치료 예후도 나아지곤 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유전자의 돌연변이 위치를 확인하고 해당 유전자 변이를 정확히 표적으로 하는 항암제로 투약한다. EGFR, ALK 유전자 변이 양성 환자가 많기 때문에 1차 치료제로 '티로신 키나아제 억제제'(TKI)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
문제는 치료 효과가 나타나더라도 약물 내성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에 기존 화학항암제 대신 면역항암제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전체 폐암 환자에 대한 임상 효과가 제한적이란 과제가 남아있다.
따라서, 최근에는 화학항암제와 면역항암제를 함께 사용하는 병용요법이 그 대안으로 떠올랐다. 주사제나 경구약을 통해 종약 조직을 직접 공격해 암세포가 자라는 것을 막거나 죽이는 방법인 화학항암요법은 수술, 방사선요법과 함께 기존에 표준적으로 활용하는 암 치료법이다. 면역항암요법은 항암치료의 정확도를 높이고 부작용을 낮추기 위해 비교적 최근 발전한 새로운 암 치료법이다. 인공면역 단백질을 주입하는 면역치료제는 특정 면역세포가 암세포만을 표적해 공격하도록 유도하는 약제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국내 연구진은 EGFR, ALK 변이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병용요법(면역항암제, 항혈관억제제, 항암화학제)의 3상 임상시험 결과를 학계에 최초로 보고했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안명주·박세훈 교수 등을 중심으로 대한항암요법연구회(KCSG) 소속 국내 15개 기관 연구진이 참여했다.
연구팀은 국내 16개 의료기관에서 모집한 EGFR 변이 환자 215명과 ALK 변이 환자 13명 등 총 228명을 무작위로 나눈 뒤 환자군을 둘로 나눠 치료 전략을 달리했다.
한쪽에는 면역항암제인 아테졸리주맙과 치료 효과를 증진시키는 베바시주맙, 기존 백금 항암 치료법에서 쓰이는 파클리탁셀, 카보플라틴을 추가했다. 다른 한쪽에는 표적항암제 이후 표준 치료방식인 페메트렉시드에 카보플라틴 또는 시스플라틴을 병용 투여하고, 두 집단의 예후를 비교 분석했다.
이 결과, 면역항암제를 병용 투여했을 때의 치료반응률은 69.5%로 기존 치료군의 41.9%보다 높았다. 무진행 생존 기간도 8.48개월로, 기존 치료군의 5.62개월로 38%가량 낮았다.
이러한 경향은 면역항암제의 효과를 가늠하는 생체지표(바이오마커)인 'PD-L1'의 발현율이 증가할수록 함께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종양침윤림프구의 밀도가 높을수록 비슷한 효과가 확인됐다. 이들 지표를 활용한다면 치료 예후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연구 결과는 지난 20~24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유럽임상종양학회(ESMO)' 학술대회에서 발표돼 국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ESMO에선 '최신 임상연구 초록'으로 채택됐고, 동시에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의 학술지인 '임상종양학회지'(JOURNAL OF CLINICAL ONCOLOGY)에도 실시간 공개됐다. ESMO와 ASCO는 국제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암 치료법 연구 단체들이다. 따라서, 연구진은 해당 항암치료이 돌연변이 폐암 환자에 대한 '새로운 표준 치료법'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고 기대하고 있다.
해당 논문의 제1저자로 참여한 박세훈 교수는 "폐암과 싸우면서 내성을 경험한 환자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새로운 치료법을 찾게 된다"면서 "환자들에게 항암치료라는 어려운 길 속에서도 암과 싸울 또 다른 치료법이 남아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 책임자인 안명주 교수 역시 "새로운 치료 전략이 유효하다는 점을 입증해 더 많은 환자에게 치료 기회를 줄 수 있게 돼 고무적"이라면서 "사용하는 약제가 늘어나는 만큼 작은 부작용이라도 발생할 우려를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기 때문에 더욱 안전하고 정교하게 환자를 선별해 치료할 방법을 연구하는 데 매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