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왜 방귀 냄새를 만들었을까?
[김영훈의 참의사 찐병원] 트로이 코처의 질문과 진정한 미래병원
“신이 왜 방귀 냄새를 만들었는지 아니?”
‘어쩌면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아서 이 질문에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답은 “소리를 못 듣는 사람도 냄새로 즐길 수 있으니까”이다. 방귀에 냄새가 없다면 듣지 못하는 농아들은 누군가가 방귀를 뀌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이 오묘한 질문과 답은 영화 ‘코다’에 나오는 명대사이다.
‘미국작가조합상의 영화각색상’을 비롯한 여러 상을 받은 이 작품은 베로니크 풀랭이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수화, 소리, 사랑해!》를 원작으로 만들었다. 풀랭은 이른바 코다(CODA)로 불린다. 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뜻하는 ‘Children of Deaf Adult’의 준말이다.
우리는 ‘듣지 못하면 말도 하지 못한다’고 알고 있다. 이들을 농아(聾啞, Deaf mutism) 또는 농아인(聾啞人)이라 통칭한다. 그런데 부모가 맹인이어도 자녀들은 대부분 정상적인 시각을 갖고 태어나지만, 농아의 자녀들은 똑같이 농아일 확률이 높다.
그런데 정상 청각력을 지니고 태어나 듣기도 잘 듣고, 말하기도 잘하는 자녀들이 있다. 그 자녀를 코다라고 부른다. 코다는 가족의 대외 소통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들의 일상적인, 그리고 현실의 난관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그린 영화가 ‘코다’이다. 특별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지만 잔잔한 감동을 주면서, 장애를 지닌 사람들을 이해하게 해 주는 영화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루비 로시는 가족 중에 유일한 코다이기에 가족과 세상을 연결해 주는 연결자로 등장한다. 그녀의 아버지 프랭크 로시 역을 맡은 트로이 코처는 딸의 꿈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로 나온다. 코처는 우리에게 낯익은 배우는 아니다. 영화 ‘넘버 23,’ TV 미니시리즈 ‘크리미널 마인드’ 등에 출연한 배우인데 실제로 청각장애인이다. ‘코다’에서 뛰어난 연기로 제94회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 영국아카데미 남우조연상, 미국배우조합상 남우조연상, 크리틱스초이스영화상 남우조연상 등을 받았다. 자신이 농아이기에 농아의 행동을 특별히 배울 필요가 없고, 수화를 익힐 필요도 없이 평소 그대로 연기한 것이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고, 평론가들에게 큰 점수를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그 트로이 코처가 2022년 가을 한국을 방문해 고려대 안암병원의 홍보대사로 임명됐다. 이듬해 한국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제19회 세계농아인대회 홍보대사로서 행사 준비를 위해 한국을 찾은 그는 고려대 안암병원에도 뜻깊은 발걸음을 했다. 농아인을 향한 사회적 고민에 함께하겠다고 뜻을 밝힌 코처는 고려대의료원의 진료, 연구, 교육뿐 아니라 사회적 의료 기관의 행보에 공감하며 동행의 뜻을 전했다.
임명식이 끝난 후 담화 자리에서 코처는 나에게 물었다.
“고대 안암병원은 농아인들이 오면 어떻게 진료합니까?”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대답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순간이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와 시설을 꾸준히 개선해 왔다. 건물 계단마다 휠체어가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경사로를 만들고 있으며, 교통 편의를 위해 전철역마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있다. 또 장애인을 위한 점자 안내판도 부착해 가고 있다. 실제 공공 기관에 가보면 거의 100%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점자 안내판이 있다. 또 장애인들이 업무를 보러 가면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TV 뉴스에서는 동시 수화가 방송된다.
코처의 질문에 나는 “농아인용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서 한다”라고 답했다. 사실, 부끄러운 대답이었다. 애플리케이션 하나만 가지고 그 환자의 아픈 상태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맹인이나 농인은 자기 몸에 어떤 아 픔이 있는지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
“막 떨리고, 으스스하고, 찌뿌두둥하고, 쑤시고, 결리고, 밥맛도 없고.”
이런 상태를 수화 통역자가 의사에게 정확히 전달하기도 쉽지 않다. 또 병원마다 수화 통역자가 상시 근무를 하지도 않는다. 그만큼 농아인은 진료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이들의 어려움을 외면해 왔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대학 병원들이 앞장서서 장애인 진료 권리를 확대해야 한다. 그 중 하나가 수어(手語)를 배우는 것이다. 외국 몇몇 나라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수어를 가르친다고 한다. 수어를 배우면 사람을 향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지능도 높아진다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 교육과정에 수어 배우기를 넣는 나라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숫자는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현황’에 따르면 2022년 기준 265만 3000명에 이른다. 여기에는 지체, 청각, 시각, 자폐성 등 모든 장애가 포함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다고 추정된다. 자신이나 자녀에게 장애가 있어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병원들은 이들을 위해 어떻게 진료를 행했는가? 이 질문에 자신있게 답할 병원은 극히 아주 것이다.
고려대의료원은 원장 직속의 사회공헌사업본부를 통해 사회 공헌 사업을 수행해 오고 있었다. 해외 의료 봉사를 포함해 실질적 사회 공헌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해 왔다. 특히 병원은 장애인 고용 확대와 차별 없는 조직 문화 조성에도 힘써야 한다. 최근에는 ESG위원회와 어울림 아카데미 등을 통해 교직원들의 장애인-비장애인의 인식 격차 해소와 장애인 교직원을 위한 병원 환경 개선, 지역 사회 연계 사업 및 의료 봉사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코처의 방문은 이런 노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자극제가 됐다.
병원은 다양한 분야에서의 장애인들이 병원에서 자유롭고, 속시원하게 자기 아픔을 설명할 수 있도록 여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미 갖추어진 장애인 시설들을 다시 점검하고, 개선하고, 직원들에게 수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도 준비해야 한다. 수어를 배우는 데에는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린다. 그러나 기본적인 인사말을 비롯해 병원에서 자주 통용되는 수어부터 차근차근 배우는 것, 그 시작만으로도 농아를 배려하는 마음을 키우는 것이다.
코처는 “항상 환자들을 위해 열심히 애쓰는 직원들께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또한 고대의료원에 농아인의 진료를 위한 수어 통역 서비스와 병원 인프라 개선 등의 의견도 제시했다.
“농아인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 일으킬 것입니다. 고대 의료원이 그 선구적인 역할을 하기 바랍니다.”
그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코처의 부인이며 배우이자 교육학자인 디엔 브레이는 “농아인에게 생명과도 같은 수어에 비장애인 분들께도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기를 부탁한다”라고 당부했다.
미래의 병원에서 편리하고 따뜻한 장애인 진찰은 필수요소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한두 개를 개발했다 해서 장애인 대책이 마련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당연히 그것도 필요하지만 인간적 배려를 우선시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사람, 들리지 않는 사람, 걷는 것이 원활하지 않는 사람, 자폐가 있는 사람… 그들 모두가 우리와 똑같이 자유롭고 편리하게 진료를 받는 병원이 참된 미래의 병원이다.
좋은정보 입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