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목숨 삼킬 수도"…'번아웃' 왜 위험할까
번아웃 증후군, 직장인 자살 위험성을 높일 수 있는 요인으로 주목
지나친 업무가 정신건강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번아웃증후군(이하 번아웃)의 경우 자살 위험까지 높일 수 있다는 진단이다.
번아웃은 말 그대로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다가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모두 불타버린 연료와 같이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며 무기력해지는 병리적 징후를 뜻한다. 신체·정서적 에너지의 고갈로 인한 탈진, 직장과 업무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 직업 효능감 저하 등이 나타난다.
보건의료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들에서 번아웃이 자살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은 이미 나온 바 있다. 다만 보건의료 외에 다양한 직업군에서 번아웃과 자살 위험성의 상관 관계에 대해서는 규명된 바가 없었다.
이에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오대종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상원·조성준 교수 연구팀은 다양한 직업군의 직장인들에서 번아웃과 자살 사고 간 유의미한 연관성이 있는 지를 조사했다.
연구팀은 2020~2022년 사이에 직장인 마음 건강 증진 서비스를 이용한 제조 금융 서비스 유통 건설 공공 행정 등 다양한 근로자 1만3000여 명을 대상으로 자가 설문을 실시해 번아웃과 자살 사고 유무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번아웃 중에서도 신체적·정신적 탈진이 있는 직장인의 경우 우울증이 없더라도 자살 사고의 위험이 77%나 증가했다. 일반인 10명 중 8명에게 자살 생각을 들게 만든 것이다.
우울증이 있는 직장인에게서는 자살 사고의 위험을 36% 높였다. 우울증 환자의 경우 번아웃이 없더라도 자살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높다. 여기에 번아웃까지 더해진다면 사고 가능성이 36%나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아울러 탈진 상태의 직장인 중에서 자기 직무를 스스로 조절할 수 없거나, 직장 내 분위기가 우호적이지 않은 경우 자살 사고의 위험이 더욱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오대종 교수는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소진된 직장인들의 경우, 우울증 여부와 상관없이 자살 위험성 증가 여부를 잘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연구는 다양한 직업군에서 번아웃, 우울증 그리고 자살 사고 사이의 연관성을 확인한 최초의 대규모 단면 연구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생산가능인구를 대상으로 한 자살 예방 정책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을 것"고 말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42개국 중 자살률 순위 1위이며 노동시간 역시 1위(연간 1915시간)로 높다. 2021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살은 대한민국 국민 10~30대 사망원인 1위, 40~60대의 사망원인 2위다. 이는 10~60대는 일을 하는 사람이 몰려있기에 높은 자살률과 긴 노동 사이에는 높은 인과가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번 연구는 지난 9월 « Frontiers in Public Health» 저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