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원이 있다면 얼마나 기부하겠습니까?
[이성주의 건강편지]
“젊었을 때는 돈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줄 알았는데…, 늙어보니, 정말 그렇더라(When I was young I thought that money wa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life. Now that I am old, I know that it is).”
1854년 오늘(10월16일) 태어난,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진심으로 이 말을 했을까요, 아니면 그 답게 풍자와 해학의 반어법으로 했을까요?
과연 돈은 무한대로 다다익선일까요? 10억원 가진 사람보다 1000억원 가진 사람이 100배 더 행복할까요? 돈은 불안감을 낳고, 불안감은 이유를 낳고, 그 탓에 돈에 더 목말라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힘든 건 아닐까요?
최근 만난 부자들마다 자녀, 손주가 미국 사립학교 가서 공부할 때 돈 걱정 없도록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고 당연히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돈이 이유를 낳는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가 아니라 ‘자녀에게 물려주고 떠난다’인가요? 과연 자녀에게 물려주는 만큼 비례해서 행복할까요?
최근 미국에서 추모의 목소리가 끊기지 않는 ‘진짜 부자’ 찰스 피니는 이 문제에 대해 답을 주는 듯합니다. 세계 최대 면세점 업체 DFS의 공동설립자였던 그는 9일 샌프란시스코의 방 2개 짜리 아파트에서 그야말로 다 비우고, 92세의 나이에 미소 지으며 눈 감았습니다.
미국의 평범한 맞벌이 가정 출신인 그는 고교 졸업 후 공군에 자원입대한 뒤 군 장학금으로 코넬대학교에 입학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했습니다. 파리에 유학갔다가 현지의 미국 해군에 면세 주류와 향수 등을 팔다가 면세업에 발을 들였으며 1950년대 관광업 활황에 힘입어 거부가 됩니다. 그러던 50세 때 자신의 재산을 챙겨보다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세계 주요 도시의 별장과 제트기, 요트 등 많은 재산이 오히려 ‘불안거리라’는 걸 느끼는 순간, 남에게 생색내지 않고 누군가를 도왔던 어머니의 행복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1982년 자선재단 ‘애틀랜틱 필랜스로피’를 설립하고 DFS의 지분 38.5%를 넘겼습니다. 리무진 대신 지하철과 택시를 이용했습니다. 비행기는 이코노미 클래스를 이용했고, 초호화 레스토랑 대신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햄버거를 즐겼습니다. 그의 손목 시계는 수억 원 짜리 대신 10달러 짜리였습니다. 자선 봉사는 철저히 비밀로 했지만, 1997년 회사를 LVMH(루이비통 모에 헤네시) 그룹에 매각할 때 드러났습니다.
피니는 가족과 자신을 위해 200만 달러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분야에 80억 달러(약 10조8000억원) 이상을 기부했으며, 자선재단은 돈을 다 써서 계좌가 0달러가 되는 바람에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부인과 같이 말년을 보낸 집은 임대 아파트였습니다. 5명의 자녀는 유산으로 거금을 받진 못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것을 물려받았다고 여긴다고 합니다.
피니는 자서전에서 “돈은 사람들을 돕는 데 써야 하며, 여러분도 한 번 실천하면 기쁨을 알 것이다. 기부는 죽어서 하는 것보다 살아 있을 때 하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돈에 대해서, 울림이 계속 번지는 멋진 말을 남겼습니다. “돈은 어떤 사람들에겐 매력적이겠지만, 누구도 한 번에 두 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는 없다(Money has an attraction for some people, but nobody can wear two pairs of shoes at one time).”
1994년 오늘은 장한나(현 노르웨이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 겸 예술감독)가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날입니다. 장한나의 아름다운 첼로 연주로 카미유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 듣겠습니다. 2010년 ‘KBS 중계석’ 공연입니다.
존경 받을 부자였군요. 예전에 해외여행 갈 때 DFS 매장을 자주 이용했었는데 감회가 새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