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존스홉킨스대, 한국 의료보험 배우려고…
[유승흠의 대한민국의료실록] (36)활짝 꽃핀 국제활동
1977년 국민소득 1000달러, 수출 100억 달러의 제4차 5개년계획 목표가 조기 달성됐다. 1980년대는 비로소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변모했으며,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도 경제적으로 앞서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국제 활동도 활발해졌다. 해방 후 국제 보건 무대에 씨앗을 뿌린 선각자였던 서울대 의대 출신의 한상태 박사와 연세대 의대 출신의 한응수, 윤석우 박사 등에 이어 ‘2세대’라고 할 수 있는 이종욱, 신영수 박사 등이 세계보건기구(WHO)를 중심으로 맹활약했다. 필자는 다른 차원에서 대한민국 보건의료의 국제화에 한몫을 담당했다고 믿는다.
필자는 1979년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보건학 박사과정을 받을 때 세계보건기구(WHO) 미주본부에 제안한 현지실습이 승인 받아 8개 지역(뉴욕, 앤아버, 시카고,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피닉스, 애틀랜타)을 1주씩 방문했다. 고맙게도 본부 담당관이 방문지역 교통편을 구체적으로 알려줬고, 숙소도 예약해줬다. 학술잡지와 서적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내용을 알고 싶어서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실습 제안서에 포함했는데, 방문하는 기관마다 관련 자료를 받았고, 업무 담당자와 대화했다. 이듬해 여름방학에는 지도교수의 추천을 받아서 볼티모어시립병원, 보건재정청(Health Care Financing Administration, HCFA), 의료심사평가원, 의료질관리기구(QA) 등 관련기관을 방문했다.
1980년 2월에는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 지도교수가 현지 보건 자료 수집과 분석 책임자로 추천하여 2개월간 쿠웨이트에 다녀왔다. 원유 생산국이기에 소득 수준이 세계 4위였던 쿠웨이트의 배려로 난생처음 비행기 1등석을 탔고, 숙소, 자동차와 기사를 제공받았다. 겨울인데 새벽에도 30도를 오르내리고, 술은 일체 없으며, TV는 영어방송이 없어서 일과가 끝나면 귀가해 휴식하며 책을 읽을 수만 있었다.
박사 학위를 받고 1981년 8월 초 귀국해서 대학 교수로서의 담당 업무뿐 아니라, 보건사회부를 비롯한 정부 기관의 요청 업무로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이듬해 보건사회연구원장이 향후 보건정책 기획을 위하여 WHO 방문과학자(Visiting Scientist)로 이화여대 구연철 교수와 필자를 추천해서 1982년 11월에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대만을 1개월 방문했다. 보건정책관리와 관련, 궁금했던 것들을 상당히 이해하게 되었다.
1984년 1월에는 일본 교토대학 마에다 노부오 교수의 초청으로 국립공중위생원을 방문했고, 원폭 피해지역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현장을 돌아보았다. 마침 1912년 중국 연길에 설립된 여학교에 대해 현지 일본 경찰이 일본 외무대신에게 보낸 공문을 찾아보게 되었다. 필자의 조부가 관여했고 고모가 교사로 활동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70여 년 전 기록을 통해 확인하고 공문의 복사본을 갖게 돼 매우 기뻤다.
1985년에는 주한 영국대사관 문화원(British Council)의 지원으로 영국을 1개월 방문해 국제적으로 전성기였던 영국의 보건의료 관련 사항을 돌아보게 되었다. 런던에서 도서관을 방문하고 여자 과장과 함께 공원 길 건너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되돌아오는데 공원 풀밭에 삼각팬티만 걸치고 선글라스를 쓴 여성들이 빼곡하게 누어있었다. 모처럼 해가 뜬 날이라서 일광욕을 하려는 것이라는데 무척이나 어색했다.
그해 11월에 일본 도쿄에서 한일 의학교류 심포지엄이 열렸다. 문태준 대한의사협회장이 동행하자고 하여 발표 및 토의를 담당했다. 연말에는 인도네시아에서 개최한 국제노동기구(ILO) 산하 국제사회보장회(ISSA)에서 주제발표를 하였다.
1986년에는 9월에 대만 타이페이에서 아시아병원연맹이 주최한 심포지엄에 조운해, 노경병, 한두진, 백낙환 등 대한병원협회 전현직 회장들이 참석했다. 필자를 주제발표자로 지정하였기에 열심히 준비하여 발표하였다. 11월에는 호주에서 WHO 아시아태평양본부가 주최하는 보건경제 워크숍이 3주 동안 열렸는데, 각국의 고위 공무원들이 많이 참가하였다. 필자도 참석해 개발도상국들의 보건의료 현실과 과제를 널리 이해하게 되었다.
1987년 1월에는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 초청으로 특강을 했다. 관련 교수들이 이구동성으로 필자를 초빙교수로 하고, 의료보험 정규강좌를 개설하도록 결정했다. 매년 겨울방학인 1월에 가서 3주간 머무르며 강의했다. 강좌를 마치면 학생들이 평가하고 이를 모아 도서관에 결과를 제시하는 것이므로, 강의 준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세계 최고 보건대학원인 모교에서 필자에게 강의를 부탁한 것은 우리나라 의료보험이 1977년에 시작해 12년만에 전국민 의료보험으로 자리잡은 성공사례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2001년에 미국에서 9.11 사태가 발생하였고, 필자가 연세대 보건대학원 원장이 되었기에 겨울방학에 원장실을 비울 수 없어서, 강좌를 15년 만에 종료했지만 겸임교수는 22년 동안 지속했다.
한편, 1987년에 독일 개신교해외개발원조처(EZE)에서 재정지원을 받아서 3년 간 병원관리자 연수과정을 실시했다. 첫해에는 1년, 둘째 해에는 1학기, 셋째 해에는 3개월 과정을 실시하였다. 병원경영의 국제 현황도 소개하였는데, 수강자들이 매우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하였다. 강좌 자료를 정리하여 《병원행정강의》(1990) 교과서를 출판했다.
이처럼 필자는 1980년대에 교육과 연구를 부지런히 하였고, 정부와 의료보험연합회 등 관련 기관들과 관계를 가졌으며, 국제적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에 WHO에 요청한 결과 1989년 11월 연세대학교 인구 및 보건개발연구소(현 보건정책 및 관리연구소)가 보건의료시스템 연구협력센터(WHO Collaborating Center for Health Service Research)로 승인됐다. 국내 보건기획관리 영역에서는 유일한 협력센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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