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층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사람이 쓰러졌는데…
[김영훈의 참의사 찐병원]건축물의 구조와 생명
“나 주차장에 도착했어. 이제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갈게.”
H는 부인에게 전화를 건 뒤 엘리베이터에 올라 22층 버튼을 눌렀다. 부인은 저녁 밥상을 차려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5분이 지나도 남편은 오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나? 사람이 많이 탔나? 점검을 하나?’
부인은 10분이 지나도 남편이 오지 않자 분명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15분이 지나자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 순간, 비명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엘리베이터 안에 쓰러져 있어서였다. 그의 몸은 반은 엘리베이터 안에, 반은 통로에 걸쳐져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은 닫혔다가 그의 몸에 부딪혀 다시 열렸다가, 다시 닫히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부인은 힘겹게 남편을 밖으로 끌어냈고, 숨을 쉬는지 살펴다. 다행히 숨을 쉬고 있었다. 급히 119에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부정맥 발작 후유증에 의한 사망이었다.
H의 죽음이 불행한 것은 여러 가지가 겹쳐서이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CCTV가 있었는데, 나는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그 CCTV를 봤다.
그곳은 서울 강남의 초고층 고급 아파트였다. H는 벽에 붙은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푹 쓰러졌다. 쓰러지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그의 몸은 엘리베이터 문에 반절 정도 겹쳐졌다.
그 후 문이 열렸다가 닫히기를 30번 이상 되풀이했다. 그 충격이 그의 죽음을 재촉했다. 하필 그 시각에 경비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1층에서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지만 22층에서 내려오지 않자 ‘이삿짐을 나르나?’하고 생각하며 마냥 기다리기만 했다.
만약 엘리베이터가 조금 더 넓었다면 H는 살았을 것이다. 문밖으로 나가지 않고 안에서 쓰러졌다면 더 빨리 발견됐을 테니 말이다.
효율성을 고려해 엘리베이터 면적은 보통 5~8평 내외로 만들어진다. 침상을 옮기는 대형 병원이나 거대한 장비를 옮기는 공장에만 커다란 엘리베이터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병원의 엘리베이터도 지금보다 더 크게 만들어야 한다. 환자가 누운 침대 하나와 의료진 2명, 보호자 1명이 타면 꽉 찬다. 또 침대 옆과 위에는 링거를 비롯한 온갖 장치가 부착돼 있다. 만일 그 안에서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의료진은 조처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처음 설계할 때부터 넓은 슈퍼 엘리베이터가 가동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래에 ‘스마트 병원’을 멋지게 지어도, 병원 밖에서 사망할 수밖에 없는 뜻밖의 요인이 많다면 스마트 병원은 그다지 쓸모가 없다. 스마트 병원은 우리 사회와 조화를 이뤄야 한다. 사회 구조, 삶의 형태, 건물의 구조가 후진적이면 스마트 병원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어떤 점쟁이는 집 주소로 사람의 운명을 판단하고, 어떤 건축가는 풍수지리를 반영해서 집의 위치와 구조를 결정한다고 한다. 그러나 주소로 사람의 길흉화복을 섣불리 판단하고, 풍수지리를 강조하는 것보다는 사람의 생명에 위해를 줄 수 있는 건물의 구조를 먼저 개선하는 일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고령화 시대에 건물의 구조는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