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불편한 '수술실 CCTV 의무화법'... 왜?
유예 기간 끝나고 오늘부터 본격 시행
오늘(25일)부터 국내 모든 병원의 수술실 폐쇄회로TV(CCTV) 설치·운영이 의무화한다. 환자 권리 보호와 의료사고 입증 책임 강화를 목표로 시행하는 제도지만, 이해관계자 사이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의료계뿐 아니라 환자단체까지도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CCTV 설치 의무화법, 추진 배경은?
정부가 CCTV 설치 의무화를 추진한 배경은 뿌리 깊다. 대리 수술 행태 등 일부 의료진의 비윤리적 진료 행위 때문이다. 특히 2014년 수술실 생일파티를 연 서울 강남의 한 유명 성형외과가 논란이 되며 제도화 여론에 불을 지폈다.
여론이 급물살은 탄 것은 2016년 고(故) 권대희 씨 사망사건 이후다. 권 씨는 한 성형외과에서 사각턱 절개 수술을 받던 중 과다출혈이 발생해 끝내 사망했다. 어머니 이나금 씨는 수술실 CCTV를 수집해 수술 관계자들의 행적을 분초 단위로 세밀하게 확인해 증거자료로 제출하는 등 6년의 싸움 끝에 올해 1월 대법원에서 의료진의 실형을 끌어냈다.
이 씨는 유사한 피해자들과 뜻을 모아 의료정의실천연대를 결성하고 수술실 CCTV 설치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데도 핵심 역할을 했다. 이런 노력 끝에 2021년 8월 국회 본회의에선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에 관한 의료법 개정안이 최종 통과했고,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에 돌입했다.
의료계 "불법수술 예방 효과 < 의료진·필수의료 위축"
병원과 의료계는 다양한 이유로 해당 제도의 시행을 반대해왔다. 특히 수술실 CCTV 의무화로 사회 전체가 얻는 이득이 크지 않기에 의료윤리 원칙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에 주목할 만하다.
비윤리적 진료와 불법행위 예방 효용성은 떨어지는 반면, 의료진의 위축과 방어진료(의료사고 처벌과 배상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치료하지 않는 행위) 등의 해악이 더욱 우려된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미국을 비롯해 해외에서도 관련 논란이 일었지만, 결국 법제화의 영역이 아니라고 판단돼 시행한 사례가 없었다.
현장에선 필수의료 위축 현상을 더욱 가속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소수의 위법 사례를 잡아내기 위해 일선 의료진 전체를 위축하게 만든다는 불만이다.
상급종합병원인 고려대 안암병원의 한승범 병원장은 해당 제도가 기본권 침해와 직업 수행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오히려 환자를 치료하려는 의료진의 사명감을 잃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병원장은 "경제적, 인권적, 헌법적 요소를 모두 훼손하는 일"이라면서 "모든 수술 과정을 녹화한다는 부담감은 의료분쟁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와 의료진을 소극적으로 만들고 그나마 필수의료를 지원하려는 수련의사조차 더욱 압박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병원협회장을 맡고 있는 윤동섭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역시 "현재도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은 전공의 지원자가 정원에 미달해 필수의료 붕괴가 우려되고 있다"면서 "필수의료 과목에 대한 각종 지원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에서 오히려 필수의료 붕괴를 더욱 가속할 것이 명확하다"고 말했다.
10년 가까운 법제화 과정에서 꾸준히 반대의 목소리를 표명했던 대한의사협회(의협) 역시 대한병원협회와 함께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환자와 의료진의 민감한 개인정보 유출과 초상권 등 헌법상 기본권 침해, 환자와 의사 신뢰 관계 훼손, 방어진료 야기 등 의료인의 직업수행 자유 침해 등을 주장하고 있다. 다만, 여러 논란에도 시행이 강행된 만큼 일선 병원들은 관련 준비를 대부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환자단체서도 '포퓰리즘' 비판... "낮은 실효성 대비 불안감 조성 해악"
환자단체에서도 유사한 이유에서 실효성에 의문을 품고 있다. 환자 권리 보호를 앞세운 포퓰리즘 정책에 가깝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장은 과거 한 칼럼에서 "정치가와 비전문가에 의한 '마취 하의 밀실 공포증' 조장은 외과계열의 집단 공범화라는 우려할 만한 사회적 병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면서 "의료윤리와 환자중심의료의 발전이 아닌 '환자 권익 보호'를 방패 삼아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할 환자의 비밀을 희생시키는 역설적인 조치"라고 의견을 내기도 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법 시행을 앞둔 지난 7일에도 "본래 입법취지를 살리기 힘들 정도로 촬영을 거부할 수 있는 예외조항 등이 많아 실효성이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우려를 담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해당 법안이 인정하는 CCTV 촬영 거부 사유로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른 응급환자 수술 △생명에 위협이 되거나 신체기능 장애를 초래하는 질환 수술 △상급종합병원의 전문진료질병군 수술 △전공의 수련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수술 직전 촬영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경우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적 사유로 촬영이 불가한 경우 등 6가지다.
정부, 선시행 후보완... 의료분쟁 대비책 만들어야
정부 역시 이러한 비판을 의식하곤 있지만, 장기간 어렵게 법안을 제정한 만큼 우선 시행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부는 이달 초 법의 쟁점 사안들을 반영해 구체적인 설치·운영 기준(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앞서 언급한 촬영 거부 예외조항을 통해 의료현장의 어려움을 일부 완화하고 촬영 영상 보관 기간·정보 제공 요건 등을 구체화해 개인정보 보호 방안을 강화했다.
복지부 측은 "의료계가 헌법소원을 청구하고 가처분신청을 신청했지만, 이와 무관하게 정부는 시행 일정에 맞춰 추진할 수밖에 없다"면서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 현장에선 모호하다 여기는 부분이 있어도 시행에 최선을 다하면서 가이드라인을 계속 개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의료계 일각에서도 당장 시행 상황을 되돌릴 수 없는 만큼 해당 제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보완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구체적인 제도 운용 방안에선 앞서 시행됐던 유사한 법제화 사례인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법'을 참고하고 △일선 현장에선 의료분쟁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을 반영해 비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민형사 부담감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론 △최근 국회에 발의된 '필수의료 의료사고 형사처벌 면제법'과 같이 비과실·필수의료 의료사고에 대한 의료진의 형사 책임은 법제적으로 감면하고 △의협 의료배상공제조합이 시행하는 '의료배상공제'의 규모와 보장 범위를 확대해 의사와 의료기관의 민사 배상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 등이다.
불편한 사람이 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