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학병원 인턴들은 끙끙대며 시신 옮겨야했나?

[김영훈의 참의사 찐병원] 장례와 건축 공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B는 하는 일마다 꼬이고, 몸도 아프고, 집안에 우환도 생겨 친구에게 하소연했다.

“요즘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

친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언한다.

“용한 점쟁이 한 명을 알려 줄 테니 만나 봐.”

B는 피식 웃고 만다. 그러나 친구는 계속 권한다.

“그저 그런 점쟁이가 아니라 집을 고려해 운세를 보는 사람이야. 만나서 손해볼 것은 없잖아.”

며칠 후 B는 점쟁이를 만났다. 생년월일을 대는 것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였으나 주소를 대라는 것은 특이했다. 점쟁이는 대뜸 고개를 저었다.

“지금 사는 곳은 당신하고 안 맞아. 당장 이사 가.”

“어디로 갈까요?”

“그건 당신이 알아봐야지. 이사갈 곳 후보지가 정해지면 내게 알려줘. 그럼 당신하고 맞는지 안 맞는지 알려 줄 게.”

만약 B가 그곳에 살지 않고 딴 곳에 산다면 점쟁이는 뭐라고 했을까? 강남에 산다고 했으면 당신과 맞는다고 했을까? 어느 주소를 대든 그는 맞지 않는다고 했을 것이다.

이는 풍수지리와는 다른 궤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점쟁이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의사로서 나는 건물의 위치보다는 구조에 관심이 더 많다. 의사가 되기 전에는 건물 구조에 관심이 없었다. 멋진 건물을 보면 ‘아, 멋지구나, 건축비가 많이 들었겠구나’라고 단순히 생각하면서 지나쳤다.

하지만 인턴 생활을 하면서 건물 구조로 생기는 기이한 상황에 자주 마주쳤다. 지금은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임종하면 대부분 그 병원 영안실에서 장례식을 치른다. 요양 병원이나 집에서 임종을 맞은 사람은 전문 장례식장으로 간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병원에서 임종을 맞았어도 집으로 가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집밖에서 숨지는 ‘객사’를 불행이라고 여겼고, 이미 ‘밖에서’ 숨졌어도 집으로 모셔갔다. 가족은 사망 확인서를 들고 시신과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그 길에 가족만 가는 것이 아니라 병원 의사가 한 명 동행한다. 인턴 시절에 나는 그 일을 일주일에 서너 번씩 맡았다. 바쁜 일과 중에 호출을 받아 가보면 이런 지시가 떨어진다.

“701호실에 있던 분 돌아가신 거 알지? 거기 갔다 와.”

그러면 흰 가운을 입은 채 병원 구급차를 타고 가족과 함께 고인의 집으로 간다. 구급차 안에서는 호흡기 앰부 백으로 인공호흡을 하면서 아직 의학적 생존 상태를 유지하면서 이송한다. 도착해서 보면 대부분이 연립 주택, 아니면 꼬불꼬불 외진 동네의 작은 단독주택이었다. 그 집 대문 앞에서 인공호흡 앰부 백을 멈추고 ‘시신’을 인계하고 오면 좋겠지만 안방까지 옮겨 주어야 했다. 그리고 인공호흡을 멈추고 말했다. “000 님은 0000년 00월 00일 00시에 별세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 을 빕니다.”

의사로서의 최후 선고를 하고 돌아와야 했다. 단독 주택은 별 어려움이 없지만 그런 집은 드물고 거의 연립 주택이었다. 문제는, 시신은 들것에 길게 누워 있다는 사실이었다. 5층 이상은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그 이하로는 없다. 설사 있다 해도 엘리베이터에 시신을 싣지 못한다. 길게 누워 있는 시신을 세울 수도, 앉힐 수도 없다. 결국은 사람 넷이 혹은 셋이 들것에 시신을 싣고 계단으로 4층까지 옮겨야 한다. 계단이 넓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서민 연립 주택은 계단이 좁다. 특히 꺾이는 부분이 문제다. 앞뒤로 남자 두 명씩 네 명이 들것을 메고 반 층을 올라가면 꺾을 수 없다. 계단 중간 참이 너무 좁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창문을 열고 시신을 밖으로 반절 정도 내보낸 다음 계단을 한 칸 올라가 꺾은 다음에 시신을 안으로 들인 후에 다시 반 층을 올라간다. 이제 겨우 2층에 왔다. 2층 중간 참에서 또 창문을 열고 시신을 밖으로 내보낸다. 이 과정을 세 번이나 네 번 되풀이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계단마다 물건들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고, 어떤 창문은 뻑뻑한 데다가 녹이 슬어 잘 열리지도 않는다.

‘아이고, 힘들어 죽겠네!’

속으로 한탄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망자의 가족 앞에서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겨우 4층에 도착해 시신을 좁은 거실에 들여놓으면, 여름이면 땀이 줄줄 흐르고, 겨울이어도 땀이 흐른다. 거친 숨을 한 번 몰아쉰 뒤 말한다.
“000 님은 0000년 00월 00일 00시에 별세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 후 시원한 물 한 잔 얻어 마시지 못하고 서둘러 돌아온다. 미국에 있을 때도 시신을 집으로 운반해 주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미국에서는 장례식을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대부분 교회에서 치르는데, 시신을 3층 이상의 집으로 운구해야 한다면 고가 사다리를 이용한다. 이삿짐을 나를 때 쓰는 고가 사다리로 단 3분 만에 집으로 옮길 수 있다. 망자를 향한 예의를 떠나 살아 있는 사람들의 노고도 간단히 해결해 준다.

건물을 지을 때 건축주와 설계사는 최상의 결과물을 도출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상의한다. 그리고 집을 짓자면, 따져야 할 요인이 한둘이 아니다. 계단이나 통로는 법 규정 테두리 내에서 최소로 면적을 줄일 것이다. 그 누구라도 시신 운반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1990년대까지 시신을 옮기느라 애를 먹은 의료인들은 대한민국에 부지기수였다. 이제 그럴 일은 극히 드물다 해도 건축가들을 만나면 나는 “통로와 계단은 규정보다 되도록 넓게 만드세요”라고 권한다. 위급 상황을 고려하면 통로와 계단은 넓을수록 좋다.

구급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장례식이 끝나면 저 가족들이 또 시신을 옮겨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 절로 든다. 시신이 창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왔다, 이를 반복해야 할 것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파 왔다. 계단을 조금 넓게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리 생각하며 구급차에서 내리는 나에게 또 지시가 떨어진다.

“이봐, 김 인턴, 중환자실에 계시던 최00 할아버지 별세하셨어. 거기 빨리 갔다 와.”

    김영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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