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들 두고...40대 엄마 생활고-혈관병으로 떠나다
[김용의 헬스앤]
연립 주택의 현관문 앞에는 기저귀 상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세입자는 계속 연락이 되지 않고 개 짖는 소리만 요란했다. 지난 8일 집주인의 신고를 받은 경찰과 119구급대원이 문을 열자 40대 여성과 3~4살로 보이는 아이가 쓰러져 있었다. 엄마 A씨는 사망 한지 상당 시간 지난 것 같았다. 그는 어린 아들과 살면서 관리비와 가스비를 3~6개월 동안 연체하며 극심한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한 결과, A씨의 몸에 별다른 외상이 없는 점으로 미뤄 혈관이 막힌 게 직접적 사망 원인이 된 것으로 추정됐다. 혈관이 굳어가면서 막히는 동맥경화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A씨는 극심한 통증을 일으키는 담석증도 갖고 있었다. 복통으로 신음하다 쓰러져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엄마 옆에서 쓰러져 있었던 아들은 병원 치료를 통해 의식을 되찾았다. 아이는 출생 신고가 안 돼 있어 정확한 신원 확인이 어려운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시 복지 사각지대... 주위와 연락 닿지 않았던 아이 엄마
A씨는 정부가 관리하는 위기 가구 의심 대상에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스·수도·전기요금이나 건강보험료 등을 두 달 이상 체납하는 개인 또는 가구의 경우 이 시스템에 자동 등록되어 전국 각 지방자치단체에 알려진다. A씨는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지만 사회보장정보시스템(행복e음)에서 정부가 올해 4번째 통보한 위기 가구 의심 대상에 포함돼 있었다. 행복e음은 정부가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구축한 시스템이다.
지역의 사회복지 관계자가 “지원 대상으로 포함되었으니 생활에 어려움이 있으면 연락하라”는 안내문을 일반 우편으로 보내고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달 24일 직접 방문을 했으나 전입 신고 당시 A씨가 지번만 쓰고 호수를 정확히 기재하지 않아 만나지 못했다는 것.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우편함에는 A씨의 우편물은 없었다고 한다. 지난 4일에는 우체국에 등기 발송을 요청하기도 했다.
‘한 부모’ 여성 가장의 고통... 아이와 어떻게 생존할까?
A씨는 어린 아들을 곁에 두고 고통 속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아이는 꿈쩍 않는 엄마의 몸을 만지며 얼마나 울었을까? 고인은 거동이 가능할 때 왜 주위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든다. A씨는 ‘한 부모’ 여성 가장으로 추정된다. 이혼-사별로 인해 18세 미만 자녀와 살면서 혼자서 부모 역할-경제적 활동을 전담하는 사람이다. 이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생활고다. 아이와 함께 생존하기 위해 생계의 최일선에서 뛰어야 하지만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을 구하는 게 어렵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전 남편과의 분쟁도 이들을 괴롭힌다.
한 부모 가정은 정부 및 사회기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지만 지원 조건이 까다롭다. 18세 미만 자녀와 같이 살고 소득이 중위소득 52~60% 이하 등 여러 기준에 맞아야 한다. 재산 상황도 따져야 한다. 기준을 통과하면 1인 당 월 20만 원의 아동 양육비를 지원 받을 수 있다. 초중고 자녀들은 학교 급식비, 가구당 인터넷 통신비, 특히 고등학생 자녀의 경우 입학금·수업비·학교운영 지원비 등을 받을 수도 있다. 가사 지원 서비스를 도입한 지방자치단체도 있다.
엎친 데 덮친 격, 중년 괴롭히는 혈관병... 동맥경화, 뇌졸중. 심근경색
중년에 접어든 A씨는 고혈압도 오래 앓은 것으로 보인다. 국가건강검진을 매년 했더라면 도움이 됐을 것인데 그가 건강보험 가입자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아이 출생 신고도 안 한 상태이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혈관이 굳어가는 동맥경화증의 원인은 고혈압이다. 동맥경화가 심해지면 뇌졸중(뇌경색-뇌출혈), 심근경색증, 말초혈관 질환이 생긴다. 동맥경화증으로 인해 혈관이 좁아지거나 갑자기 막혀서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하는 것이다.
죽어가는 엄마 곁의 아이... 더 한층 강화된 시스템 구축해야
고혈압 등 동맥경화증 위험 인자를 일찍 발견해 약을 먹는 등 관리를 했더라면 사망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A씨가 함께 앓은 담석증은 음식물의 소화를 돕는 담낭(쓸개)의 액체가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져 결석이 생긴 병이다. 흔한 증상이 복통, 발열이고 황달도 나타날 수 있다. A씨는 집에서 쓰러져 엄청난 통증으로 괴로워했을 가능성이 크다. 어린 아이는 옆에서 울고, 몸은 움직일 수 없고... 엄마는 마지막 가는 길에서도 사랑하는 아이의 손을 꽉 잡았을지도 모른다.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며...
A씨의 사례는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떠오른 한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박봉에 시달리며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고단한 노동을 하는 전국의 사회복지 관계자들만 책망할 순 없다. 더 이상 A씨와 같은 사각지대가 없도록 한층 강화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전국의 한 부모 가장 지원을 위한 통과 기준도 완화해서 그들이 자녀들과 살아갈 수 있도록 숨통을 터줘야 한다.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주위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죽어가는 엄마의 몸을 흔들며 보챘을 아이가 더 이상 나오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