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공간 디자인은 어떻게 바꿔야 하나?

[김영훈의 참의사 찐병원]스마트병원과 디자인싱킹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데이비드 켈리는 애플의 첫 마우스를 만든 디자이너이며, 스티브 잡스의 친구이기도 하다. 그는 1978년 암 선고를 받고 생존율이 40%밖에 되지 않는다는 진단이 내려지자 ‘아이데오(IDEO)’를 창업해 디자인 변혁에 뛰어들었다. 독일 소프트웨어 기업 SAP의 하소 플래트너의 의뢰로 디자이너들이 생각하는 방식을 연구했고, 2004년 그 과정과 방법론을 활용해 스탠퍼드대학에 하소플래트너디자인연구소를 세웠다. 이 연구소는 2005년 스탠퍼드대 D스쿨로 발전했으며 이후 ‘디자인 싱킹’이라는 방법론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디자인 싱킹은 디자인 과정에서 디자이너가 활용하는 창의적 전략이다. 어떤 제품이나 설계를 전문적으로 생각하기보다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문제를 풀어 나가는 방식이다. 인간의 필요에 공감하고 대중이 모르는 잠재적 욕구를 찾아내 제품(설계)으로 만들어 간다. 사람들이 겪는 불편함을 찾아내 해결하기에 창의적 문제 해결 방법론으로 불린다.

디자인 싱킹은 보통 ①공감하기 ②정의하기 ③아이디어 떠올리기 ④프로토타입 만들기 ⑤테스트하기의 5단계를 거친다. 이 단계를 거치면 우리가 실생활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을 풀어 나갈 수 있다.

이를 병원에 적용해 보자. 2022년 3월 고려대 구로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디자인 싱킹 워크숍을 열었다. 소아청소년과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개선하기 위한 워크숍이었다. 참여한 의료진 10명은 첫 번째로 ‘문제점 발견하고 공감하기’ 단계를 시작했다.

고려대의료원 소아청소년과 의료진이 병원 공간을 개선하기 위해 ‘키노 디자인 싱킹’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고대의료원]
의료진은 내원하는 고객들의 진료 절차에 따라 전-중)-후로 나눠 과연 환자들과 의료진이 어떤 점에서 불편을 느끼는지 파악했다. 전(前)에는 ‘예약’, ‘접수 수납’, 중(中)에는 ‘대기(검사-대기)’, ‘진료’가 포함됐고, 후(後)에는 ‘진료 후’가 해당했다. 각 절차에는 ‘환자+보호자’와 ‘의료진’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환자+보호자들은 먼저 ‘예약과 접수 수납’에서는 초진 환자에게 안내가 필요하다, 검사 프로세스/ 안내/ 길 찾기/ 예약할 때 고지된 시간과 실제 검사 시간이 다르다, 전광판에 이름이 뜨면 진료실 앞으로 가라는 안내가 필요하다, 진료실과 접수처 공간이 멀어 안내가 필요하다, 입구와 출구를 표시하는 바닥 사인이 필요하다, 동선을 안내하는 바닥 사인이 있으면 좋겠다, 기저귀 가방/ 유모차/ 장애인의 휠체어/ 침대가 이동하는 공간이 확보 돼야 한다 등을 문제로 제기했다.

이어 ‘대기와 검사’에서는 도착 처리 후 대기 절차를 모르겠다, 접수 후 대기하는 곳과 진료 직전 대기하는 곳이 구분되어야 한다, 진료 전 대기 위치 안내가 필요하다, 진료실로 오라는 안내 방송이 필요하다, 검사실(혈액, 내 시경, 뇌파 등)과 거리가 멀다, 놀이방과 수유실이 협소하다 등의 문제점을 제시했다.

‘진료’ 항목에서는 발달 검사실에서 소음이 발생한다, 발달 검사실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등등의 불편함을 토로했다. 마지막 ‘진료 후’에서는 진료가 끝난 후 절차 안내가 필요하다, 소아 예방 접종은 무인 수납과 하이패스가 안 된다, 수납 시에 대기 시간이 필요하다 등이 지적됐다.

의료진이 전체적으로 지적한 문제로는 환자들에게 예약·대기를 설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다른 과로 가는 길을 소아청소년과에 물어본다, 소아과 외래 복도에 칸막이를 설치해 다른 과의 환자들이 드나들기 어렵게 해야 한다, 수유실에서 환자 프라이버시가 보호돼야 한다, 진료·검사·치료 구획을 색으로 구분해야 한다, 소음 방지용 흡음벽(검사실, 진료실, 치료실, 발달 검사실)이 필요하다 등이었다.

이처럼 제기된 문제들은 개선이 가능한 부분이 있고, 불가능한 부분도 있다. 공간이 협소한 문제는 사실상 건물을 새로 짓지 않는 이상 획기적 개선이 어렵다. 그런데도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2단계 ‘정의하기’가 진행됐다. 이 단계는 문제점들의 ‘우선순위 정하기’다. 중요도와 시급성을 고려하여 투표로 우선순위를 정하되 실현 가능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 문제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고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검토 결과 1순위는 ‘프로세스,’ 2순위는 ‘공간,’ 3순위는 ‘대기 순서,’ 4순위는 ‘길 찾기,’ 5순위는 ‘소음’으로 정해졌다. 기타에는 ‘수납’과 ‘홍보’가 꼽혔다.

7개 항목에는 1단계에서 제기된 예약-접수-대기-진료-진료 후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과 불편 사항들이 망라됐다.

3단계 ‘아이디어 떠올리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순서이다. 여기 에서는 투표로 정한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 및 디자인 원칙을 도출해 낸다. 도출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실행하기 위해선 지속적 논의가 따라야 한다.

소아청소년과는 디자인 싱킹 결과에 따라 디자인 아이디어를 도출했다. 대표적 사례가 각 공간의 색상을 다르게 구현하는 것이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디자인 업체를 선정하고, 협의 후에 디자인을 확정하고, 실제로 적용했다. 3월에 첫 디자인 싱킹 미팅이 열린 후 5월에 적용하기까지 모두 3개월이 걸렸다.

고대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의 바뀐 모습 [사진=고대의료원]
첫째는 소아과의 색상을 규정하는 것이었다. 접수 스테이션 등 메인 테마는 오렌지색으로, 진료실은 진한 핑크로, 검사실(치료실, 검사실, 예방 접종실, 상 담실, 발달 검사실, 수유실)은 초록색으로, 간호 준비실, 물품 보관실, 세척실은 기본 벽색(상아색 계열)을 유지하기로 했다. 환자의 눈에 특별히 띄지 않도록 기본 벽색과 같은 색으로 한 것이다.

이어 접수 스테이션에 프로세스 인포메이션을 설치했고, 놀이방 문은 유리문으로 했으며, 입구와 출구에는 바닥에 큰 글자로 표시를 했다. 또한 홍보를 위한 디지털 정보 디스플레이도 설치했다.

소아청소년과의 변신은 위에서 내려온 일방적 지시가 아니라 관계자들의 참여로 이루어졌다. 또 전문 디자인 회사가 의견을 제시하여 추진된 것도 아니었다. 디자인 회사는 관계자들이 취합한 의견을 받아들여 그에 적합한 결과물을 산출해 냈다. 직접 사용하는 사람, 직접 드나드는 사람들이 느낀 불편함과 필요성에 대해 병원 경영진이나 디자인 회사가 이러쿵저러쿵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직원들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시하지 않았을 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편하다, 개선되어야 한다’라는 불평이 또 나왔을지도 모른다.

디자인 싱킹의 장점은 그 일의 당사자들이 직접 참여해 그동안 겪었던 불편, 느껴왔던 불만들을 모두 꺼내 놓고 스스로 해결해 나간다는 점이다.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투표로 결정하여 완벽하지는 않지만, 실현 가능한 것부터 차례로 풀어 가기에 시의적절하면서도 사용자들에게 큰 편익을 안겨 준다. 어느 조직이든 이 방법을 활용하면 누적한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디자인 싱킹을 모두가 환영하지는 않는다. 리더의 인식에 따라 다르다. 여러 사람이 모여 최적의 해결 방안을 민주적으로 도출하는 것을 좋아하는 리더가 있고, 고위급 한두 사람의 결정으로 모든 것을 추진하려는 독단적 리더도 있다. 서로 장단점이 있기에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쁘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상명하달(上命下達)이 20세기의 방법이었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다. 그렇다 하여 하의상달(下意上達)이 꼭 21세기의 방법이라는 뜻은 아니다. 상하 합의가 제일 나은 방법이다.

디자인 싱킹은 미래 병원의 설계와 운영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새로운 병원을 설계할 때 의료진 한두 명이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활발하게 참여해 의견을 내놓고, 가능한 범위에서 실현해야 한다. 또한 현재 병원의 리모델링에도 응용할 수 있다. 요체는 사용자의 의견을 받아들여 누구나 이용하기 쉽고, 편리하게 한다는 점이다. 미래 병원에서 꼭 필요한 디자인 싱킹은 직관, 감염병 예방, 분리, 고령화 등을 들 수 있다.

독단의 시대에는 ‘나를 따르라’가 맞겠지만, 미래 개방의 시대에는 디자인 싱킹을 통한 ‘더 많은 참여’가 핵심이 된다.

    김영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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