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개선 위해 식욕억제제 복용한다면?
[노윤정 약사의 건강교실]
며칠 전, 비만약 부작용에 관한 뉴스와 기사를 접했다. 해당 내용은 경희대 약대와 아주대 의대·약대 공동 연구팀이 2010∼19년 식약처 의약품 부작용 보고 시스템에 보고된 비만치료제 사용 후 부작용 1만 3천 766건을 분석한 것이었다. 약과 부작용의 인과관계가 확실한 것 중에서 보고 횟수가 가장 많았던 약은 식욕억제제 ‘펜터민’ 성분이었다. ‘리라글루티드(제품명:삭센다)’의 부작용 건수도 2위를 차지했으나, 대개 위장관 장애로 이 경우는 시간이 지나면 해소되거나 용량을 줄이면 나아지는 것으로 현장에서 관리가 가능한 부작용으로 본다. 그러나 정신신경계 부작용을 주로 호소한 ‘펜터민’은 다르다. 왜 그럴까?
4주 이내 단기간 사용이 허가된 펜터민 단일성분 식욕억제제
펜터민은 원칙적으로 4주 이내 단기간 사용이 허가된 식욕억제제다.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뇌를 흥분시키는 신경전달물질(노르에피네프린)을 증가시켜 포만감을 늘리고 식욕을 억제한다. 쉽게 말해, 사람을 예민하게 만들어 식욕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원칙은 4주 이내이지만, 4주 이내에 만족할 만한 체중 감소가 있다면 투여를 지속할 수도 있다.
펜터민의 허가사항에 따르면, ‘만족할만한 체중 감소’는 최소 1.8kg 이상 체중감량이 있거나 의사와 환자 모두 만족할만한 체중감량이 있다고 판단하였을 때다. 그런데 펜터민은 복용하는 날부터 대개 식욕이 억제되므로 4주 이내 1.8kg 감량이 매우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아주 가끔, 식욕억제제를 개인의 식욕이 이기는 사례도 있긴 하다. 그럼 4주 이상으로 식욕억제제 사용 기간이 길어지는 건 괜찮을까? 원칙에 맞게 사용했다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식욕억제제를 처방받는 다수의 환자가 원칙적으로 약의 사용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원칙적으로 사용대상이 정해져 있는 식욕억제제
펜터민 성분의 허가정보에 따르면, 이 약은 식이요법이나 운동요법 등 적절한 체중감량 요법에 반응하지 않는 BMI 30kg/m² 이상(비만 이상)이거나 고혈압, 당뇨, 이상지질혈증 등 다른 위험인자가 있는 BMI 27kg/m² 이상인 비만(과체중) 환자의 체중감량 보조 요법제다. 비만진료지침을 근거로 허가사항에 맞게 활용하는 게 훨씬 많지만, 여전히 허가와 무관하게 처방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보험’ 특성상, 식약처에서 개별 처방이 허가사항에 맞는지 다 검토하지 않는다. 대신, 처방 자료는 확인 가능해 특정 병원에서 식욕억제제를 평균 이상 처방한다면 알림을 보낸다. 그럼에도 허가기준을 벗어난 식욕억제제 사용은 여전하다. 빠르고 쉽게 살을 빼고 싶은 사람의 욕망이 계속되고, 잘못된 약물 사용으로 식욕억제제를 끊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는 사람도 생기기 때문이다.
피로 관리 또는 각성 목적으로 식욕억제제를 복용하는 사람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식욕억제제를 끊으면 몰려오는 심각한 피로와 졸음 때문에 약 복용을 지속하는 경우다. 단기 사용이 허가된 식욕억제제를 장기간 복용하다 보니, 중추신경 흥분 작용에 물들어 약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어려운 상황에 도달한다. 게다가, 다이어트약은 식욕억제제 외에 카페인이 함유된 대사 촉진제 등도 함께 쓰여 다이어트약 복용 후 눈이 번쩍 뜨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카페인 과량 섭취로 카페인에 중독되는 것처럼, 식욕억제제에 중독된 것이다.
피로나 졸음 때문에 다이어트약을 복용할 즈음이면 이미 식욕억제제의 식욕 억제 효과는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약의 복용량을 임의로 늘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겪는다. 식욕억제제의 대표적 부작용으로 언급되는 불면은 시간이 지나면 적응되거나 용량을 줄이면 대개 해소된다. 그래서 실제 약의 사용과정에서 매우 심각한 이상 반응으로 관리하진 않는다. 의사가 처방할 때나 약사가 복약지도를 할 때 환자에게 미리 관리법을 알려주거나, 환자들이 불편하면 병원이나 약국으로 전화해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상황은 환자가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 한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다.
원칙대로 사용된다면 안전, 그러나 잘못된 사용은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어
약의 사용원칙이 정해진 건 잘못 사용하면 건강에 큰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식욕억제제 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부터 심심치 않게 펜터민 복용 후 환각 증상을 겪는 사례가 뉴스에 보도된다. 대개 장기간 식욕억제제를 복용하면서 내성이 발생했고, 효과가 떨어져 과량 복용 한 경우다. 23년 4월에 보도된 식욕억제제 과다복용 후 난폭운전 기사에서도, 운전자는 작년부터 식욕억제제를 복용했고 사고를 겪기 전부터 이미 환각 증상을 겪었다는 가족들의 진술이 있었다.
일부 식욕억제제는 6개월 이상 장기 사용이 허가되나, 펜터민 등 1가지 성분만 함유된 식욕억제제는 단기 사용이 원칙이다. 과다 처방된 식욕억제제의 잘못된 사용은 개인을 넘어 사회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바로 어둠의 경로로 청소년에게 판매되는 것이다. 다이어트약을 다량 처방받고 손 떨림, 불면, 가슴 두근거림 등을 이유로 복용 중단한 약이 아까워서 팔거나 아예 웃돈을 받고 판매할 목적으로 식욕억제제를 처방받는 매우 나쁜 사례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아직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오늘의 칼럼에 이 내용을 적는 건 식욕억제제의 어두운 면을 다시 한번 강조하기 위함이다. 식욕억제제는 정말 식욕 억제가 힘든 비만 환자들의 치료 목적으로는 유용하다. 하지만 잘못된 사용은 나를 넘어 다른 사람의 생명도 위협할 수 있다. 지금도 피로 개선 또는 각성 목적으로 식욕억제제를 복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전문가와 상의 후 적절한 감량 절차를 밟자. 급작스런 중단 또한 2차 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니, 꼭 전문가와 상의 후 안전한 감량을 시도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