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바다의 심장을 달고… 시절 인연 그리고 ‘감사’

[서동만의 리얼하트 최종회] 쿼바디스(Quo Vadis)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은 온 세계를 살리는 것과 같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증례 1.
네 돌이 막 지난 아이는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곳, 파미르 고원에서 왔다.
하늘과 태양과 산이 높고, 청아한 민요의 고음이 몇 옥타브인지 모르게 올라가는, 그런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서.

그런데 높은 것이 또 있었다. 아이의 폐동맥 압력이 심각하게 높았다.

서울에 오기 전 진단은 ‘심실중격 결손증’이라고 했었다.
입원 후 시행한 흉부 X선 검사 결과 심장이 매우 부어 있었고, 주 폐동맥도 크게 늘어나 있었으며, 폐혈관 음영이 몹시 증가되어 있었다[사진1-1].

[사진1-1] 커진 심장(별표)과 주 폐동맥(화살표). 증가된 폐혈관 음영(화살표 머리). 
심장 초음파 검사에서는 좌심실이 많이 늘어나 있었고 수축력도 저하(40%)되어 있었다. 승모판막은 중등도의 폐쇄 부전을 보였다. 우심실 기능도 저하(30%)되어 있었다. 우심실 압력이 좌심실 압력과 9 mmHg 밖에 차이가 없을 정도로 폐동맥 압력은 높아져 있었다(>90 mmHg). 심실중격 결손을 통한 혈류는 양 방향(좌->우, 우->좌)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좌->우’ 흐름이 조금 더 많았다. 무엇보다 산소 포화도가 97%를 보여 수술의 여지가 있었다. 즉 아이젠멩거 상태(Eisenmenger complex)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상태에서 심실중격 결손을 봉합하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다(나중에 안 사실은, 중국 베이징의 어느 큰 병원에서 손을 댈 수 없다고 하였단다.)

우선 폐동맥 밴딩을 시행하기로 하였다[사진1-2]. 그럼으로써 좌심실의 용적 부하를 줄이고, 폐동맥 고혈압의 진행을 막아, 좌/우 심실과 승모판막 기능이 호전되는 정도를 살펴, 차후에 심실중격 결손 봉합을 포함한 완전 교정 수술의 가능성을 기대해보려는 것이다. 수술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중환자 실에서 회복 도중 복합 폐렴(Coronavirus NL63, Human Metapneumovirus, Haemophilus influenza )으로 3 주 동안이나 인공 호흡기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사진1-3]. 게다가 병원내 감염인 포도상 구균(Staphylococcus hominis) 패혈증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사진1-2] 폐동맥 밴딩(화살표). 출: An Illustrated Guide to Congenital Heart Disease. In Sook Park, Springer Nature 2019.
[사진1-3] 복합 폐렴 소견으로 기관내 삽관된 상태(화살표).
그렇게 두 달 여의 힘들었던 시간은 흘러갔고,
아이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여[사진1-4] 하늘 아래 높은 마을로 돌아갔다.
하지만 후일을 기약할 수 있으려나?
(어여삐 여기소서)

[사진1-4] (가) 수술 전. 
(나) 폐동맥 밴딩 수술 후. 현저히 줄어든 주 폐동맥(화살표) 폐혈관 음영(화살표 머리).

증례 2.

작고 까무잡잡한 아이는 한눈에 미크로네시아 지역에서 왔음을 알 수 있었다.
8살 반 나이에 키 105 cm, 체중 13.5 kg로 또래 중 하위 1퍼센타일에 해당되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밝고 눈은 반짝 반짝했다.
필리핀 어느 섬에서 선교사님의 손에 이끌려 온 아이였다.
어찌 어찌하여 현지를 방문한 순회 진료 팀을 만나 심실중격 결손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단다.
입원하여 시행한 흉부 X선 검사 결과, 심장이 크고 주 폐동맥이 불거져 있었으며 폐혈관 음영이 늘어나 있었다[사진2-1]. 심장 초음파 검사에서 좌심실은 약간 커져 있었지만 기능은 정상이었고, 승모판막도 정상이었다. 커다란 심실중격 결손을 통해 혈류는 양 방향(좌->우, 우->좌) 단락을 보였으나, ‘좌->우’ 단락이 우세하였다. 심방중격 결손은 없었다. 이때 말단 산소 포화도는 97%를 보였다.

[사진 2-1] 불거진 주 폐동맥(화살표), 증가된 폐혈관 음영(화살표 머리).

심도자술 결과 심한 폐동맥 고혈압을 보였다(폐동맥 압력 104/52 mmHg, 대동맥 압력 114/69 mmHg). 폐혈관 저항 수치는 9.2였으며, 산소 공급에도 감소하지 않았다. 그러나 폐혈류량이 아직 증가된 상태(Qp/Qs 2.0)로 수술의 여지는 남아 있었다.

심실중격 결손을 봉합하기 위한 개심 수술을 시행했다[사진2-2].
그러나 이런 정도의 심장 상태에서, 수술을 한다고 해서, 높은 폐동맥 압력이 즉각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점점 더 진행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우심실 부전으로 치명적인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게다가 아이가 그 나라의 7000개가 넘는 섬들 중 어느 하나로 돌아가고 나면, 지속적인 투약이나 검사, 의료진의 손길이 닿기를 기약할 수 없다. 따라서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여 우심실의 높은 압력이 떨어질 수 있도록, 심방중격 결손을 만들어주면서, 동시에 심실중격 결손을 막아 주어야 했다.

[사진2-2] (가) 수술 전. 
(나) 수술 후, 줄어든 주 폐동맥(화살표)과 폐혈관 음영(화살표 머리).
다행히 아이는 순조롭게 회복되었고, 서울 구경에 들떠 병실에 함께 있던 다른 환자들까지 환하게 만들어주었다. 또한 그림에 재주가 있어, 친히 그린 작품 한 점[사진2-3]을 나에게 선사하고 돌아갔다.

[사진2-3] (세상에는 참 좋은 것들이 많다: 포옹, 웃음, 친구, 키스, 가족, 잠, 사랑, 너털 웃음, 즐거운 추억……이러한 것들은 모두 공짜다!)

@ 폐동맥 고혈압
우리는 선천성 심장병 중에서 심실중격 결손증, 심방중격 결손증, 동맥관 개존증 등을 쉬운 병으로 여긴다. 그런데 이 들에서 체순환으로 흘러 가야 할, 산소 포화도가 높은 혈액이, 우심실, 우심방, 폐동맥 등으로 새어 나가 폐순환에 더해지게 되면(좌->우 단락) 그 양과 기간에 따라 폐동맥 고혈압이라는 합병증이 발생하게 된다. 개인 차가 있을 수 있으나 ‘증례1’의 경우 너무 어린 나이에, 너무도 심한 폐동맥 고혈압이 와버린 상태였다. 아마도 고산 지대에 사는 것도 위험을 높이는 요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증례2’에서처럼 해수면 가까이 살아도 폐동맥 고혈압은 발생한다. 이 합병증이 진행되면 수술이 불가한 아이젠멩거 증후군(Eisenmenger syndrome)이 될 수도 있다. 과거에는 국내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으나, 조기 진단과 조기 수술로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어 너무도 다행이다. 우리 나라 환아들은 언제부터 인가 좋은 시절 인연으로 이 무서운 강을 건너온 것이다.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아직 의료의 손길이 모자라는 나라들 에서는 이런 안타까운 사연들이 도처에 있을 것이다.
(긍휼히 여기소서)

“Whoever saves one life, saves the world entire.”
― Thomas Keneally, Schindler’s List 1993.

(이제 6개월에 걸친 필자의 칼럼을 마치려고 한다. 매우 생경하여 모래알을 씹는 듯한 글이었을 것이다. 나름으로는 이 전문적인 내용을, 수술이라는 높고 험한 관문을 지나온 환자와 보호자 분들을 대상으로 알아듣기 쉽게 쓰려고 노력하였다. 각자의 병에 대한 이해를 넓혀, 앞으로 오래오래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무엇보다 읽어 주시느라 고생하신 독자들께 감사드리며, 그림 인용을 허락해 주신 ‘선천성 심장병’ 저자 울산의대 박인숙 명예 교수님, 편집을 맡아 주신 건국의대 심장내과 양현숙 교수님, 그리고 지면을 할애해 주신 코메디닷컴 이성주 대표님과 실무진께도 감사드린다.

들쭉날쭉 고르지 못한 내용을 가다듬어 머지않아 책으로 다시 만나기를 소망해 본다.)

 

    서동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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