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뇌파계 사용 합법"... 10년 걸린 판결에 양-한방 갈등 재점화
한의학계, 급여 제도화 추진 박차 VS 의학계, 의학적 근거 없어 위해성 우려
한의사도 파킨슨병과 치매 진단을 위해 뇌파계 진단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왔다. 소송이 제기된 지 10년 만이다.
18일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한의사 A씨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낸 한의사 면허자격 정지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A씨는 2010년 9월부터 3개월간 자신이 운영하던 서울 서초구의 한의원에서 파킨슨병과 치매 진단에 뇌파계를 사용했다. 뇌파계는 뇌파를 검출해 뇌종양이나 간질 등을 진단하는 데 쓰는 의료기기다.
같은 해 한 경제신문엔 해당 행위를 홍보하는 광고성 기사까지 보도되자 의료계엔 논란이 일었고 보건 당국은 행정 대응에 들어갔다. 2011년 1월 서울 서초구보건소는 면허 외 의료행위와 의료광고 심의 위반을 이유로 업무정지 3개월 처분을 내렸고, 2012년 4월에는 보건복지부 역시 자격정지 3개월 처분을 내렸다. 이에 반발한 A 씨는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이를 의료법상 면허 정지 사유인 '면허 외 의료행위'로 보고 복지부의 승소를 판결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1심 판결을 뒤집고 A 씨의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관련 법령이 한의사의 뇌파계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의 명확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며, 위해도 2등급에 해당하는 뇌파계 사용엔 특별한 임상경력이나 서양의학에 관한 전문지식이나 기술도 필요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보건복지부의 불복으로 상고가 진행됐으나, 대법원은 7년 동안의 심리 끝에 이날 2심의 결론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해당 의료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지 △기본적·전문적 지식과 기술 수준에 비추어 한의사가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지 △한의사가 그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한의학적 의료행위의 원리에 입각하여 이를 적용 내지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한 것임이 명백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문은 앞선 2심의 판결 요지를 유지했을 뿐 아니라, 지난해 12월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요지와도 동일하다. 이에 따라 의료계에선 이들 판결이 향후 '한의계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의계는 이번 판결이 당연한 결과라면서 '건강보험 급여화' 등 제도화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최근 들어 초음파와 뇌파계 등 한의사의 현대 진단기기 사용에 대한 사법부의 합리적이고 공정한 판결이 이어지고 있는 것에 매우 고무적"이라면서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뇌파계는 전통적인 한의학적 진찰법인 '복진' 또는 '맥진'을 보조해 한의학의 문진을 현대화할 수 있다면서 판결의 정당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어 "정부당국은 이 같은 사법부의 준엄한 판결에 따라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고, 이를 활성화 할 수 있는 제도를 하루빨리 마련해 국민의 진료 선택권을 보장하고 편의성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반면, 의학계는 '의료면허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결정'이라면서 반발했다. 우리나라의 의료면허 제도는 의사와 한의사로 이원화해 운영 중이다.
대한의사협회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를 포기한 판결"이라면서 "향후 발생할 현장의 혼란과 국민 보건상의 위해 발생 가능성, 그로 인한 국민들의 피해에 대해 극도의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특히 세계신경학연맹(WFN), 국제 파킨슨병·이상운동질환학회(IPMDS), 아시아·오세아니아 신경과학회(AOAN)의 연구 결과를 제시하며 의학적으로 뇌파계로 측정하는 뇌파검사(EEG)를 포함한 전기생리학적 검사 등은 파킨슨병과 치매의 진단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판결문을 반박했다.
이어 의협은 "한의계가 이 판결의 의미를 오판해 의과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등 한의사 면허 범위를 넘어서는 의료행위를 시도한다면,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줄 수 있는 불법적인 무면허 의료행위로 간주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총력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