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은 어떻게 병원으로 들어갔나?
[유승흠의 대한민국의료실록] (34)병원의 은행
1970년대에만 해도 병원 안에 ATM은커녕, 은행 지점도 없었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타리에 유일하게 한일은행(현 우리은행) 신촌지점이 있었는데 연세대 교직원과 학생, 세브란스병원 직원, 그리고 병원 입원환자 또는 보호자가 은행을 이용하려면 신촌로타리까지 20~30분을 부지런히 걸어가야 했다.
필자는 박사과정을 밟느라고 1978년부터 3년 동안 미국 매릴랜드 주 볼티모어 시의 존스홉킨스대학교를 다녔는데, 의대와 병원이 시내 중심가에 있어서 은행들이 그리 멀지 않은 지역에 있었다. 그런데도 병원 건물에 조그만 사무실을 갖춘 은행이 들어서있는 것이 종종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용자도 꽤 있었다.
병원에 은행이 있는 것이 궁금해 교수들과 대화를 할 때 물어봤더니, 외래환자 뿐 아니라 입원환자와 보호자도 은행을 이용하므로 은행을 병원 건물에 두는 것이 좋다는 견해였다. 학생들과 교직원들도 쉽사리 이용할 수 있어서 편리했다.
필자는 1981년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연세대 의대와 보건대학원 교수로 복직한 뒤 한일은행 신촌지점에 가서 대학이나 병원에 분점을 설치하는 것을 제안했다. 개인으로서도 공금을 지출하거나, 후원금을 받으면 수입과 지출을 제대로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므로 통장에 입출금 자료가 기록되는 은행 이용이 필수적이었다. 병원 환자나 보호자에게 편리한 것도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필자가 개인적 필요를 대며 제안하자, 은행 측은 “정부가 대학에 은행 설치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난색을 표했다. 필자는 그러면 병원에 설치하는 것은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경제기획원, 문교부에 근무하는 선배들, 언론계 선배들, 그리고 은행 임원 출신인 친구 부친들을 만나서 필요성을 주장했다.
1982년 11월 1일 드디어 세브란스병원에 한일은행 신촌지점 ‘연세의료원 간이예금취급소’가 신설됐다. 기념으로 30cm 자를 발행했다(사진). 존스홉킨스병원에서 보았던 은행지점을 대한민국 병원에 설치하도록 제안하고 여러 분야의 리더들을 만나서 강력하게 의견을 제시하였기에 아주 기뻤다.
예금취급소가 세브란스병원에 설치되자 연세의료원은 물론, 연세대 교직원과 학생들이 활발하게 예금취급소를 이용했다. 1년 뒤 신촌지점 연세간이예금취급소로 명칭을 바꿨다.
간이예금취급소는 매우 성공적으로 경영되었다. 교직원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활발하게 이용했다. 3년 뒤 1986년에는 연세간이예금취급소가 연세지점으로 승격해서 연세대 학생회관으로 옮겼다. 연세대동문회관에는 출장소를 신설했고(1993년), 2002년에는 동문회관영업소로 전환하였다. 세브란스 신축병원에는 출장소를 신설했고(2005년), 연세암병원에는 연세암병원 영업소를 신설했다(2014년).
연세지점이 발전적, 성공적으로 운영돼 2015년에는 연세지점을 연세금융센터로 변경하였다. 연세공학원에는 출장소를 신설했다가(2017년) 이듬 해 영업소로 전환하였다. 인천 송도에 있는 국제캠퍼스에는 국제캠퍼스 기숙사동에 연세대국제캠퍼스 출장소를 신설했다(2011년).
연세금융센터에 가면 ‘투 체어스(Two Chairs)’에서 상담과 대화를 한다. 연세금융센터장이 부지점장인데, 다른 지점으로 갈 때에는 대부분 지점장으로 승진하여 간다고 한다.
대학과 병원을 중심으로 간이예금취급소로 시작해 이렇게 발전하면서 국민에게 보탬이 되고 있는 것을 되새기면서 돌아볼 때 마음이 매우 기쁘다. 이따금 필자가 이런 제안을 했다는 것을 아는 연세지점, 금융센터 출신들을 만날 때마다 보람있는 제안을 하였던 옛 생각을 더듬어 보면서 스스로 미소를 짓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