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심실’, 허나 희망의 길은 하나가 아냐

[서동만의 리얼하트 #22] 단심증 (4) 무비증후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증례 1.

젊은 아기 엄마는 자신의 수술 통증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어둡고 멀고 힘든 시간을 지나 아기를 낳은 지 2주만에, 감염성 심내막염으로 인한 승모판막 폐쇄 부전증으로 심장 수술을 받았다.
임신과 출산, 심장 수술까지 너무나 위험한 순간들이었다.

그런데 태어난 아기는 더욱 심각하여, 매우 복잡한 선천성 심장병을 가지고 있었다.
무비증후군(Asplenia syndrome)에 삼첨판막 폐쇄, 폐동맥 협착, 총폐정맥 환류이상 이라는 단심증 이었다.
아기도 태어난 지 한달 만에 총폐정맥 환류 이상을 해결하기 위한 일차 개심 수술을 받았다.
갓 태어난 아기와 산모가 산고의 아픔을 잊고 서로의 따듯한 가슴을 느껴 보기도 전에, 똑같이 가슴에 심장 수술의 상처를 안고, 같은 시간과 공간에 누워있다니.
너무 가혹한 시련이었다.
그럴수록 산모는 더욱 강해졌고 빠르게 회복하였다.
그러나 아기의 청색증은 점점 깊어만 갔다.

출생 7개월에 아기는 다시 개심 수술을 받아야 했다. ‘양방향성 상대정맥-폐동맥 문합술 (Bidirectional Cavopulmonary Shunt, BCS)’ 이라는, 단심증 환아 들이 폰탄 수술을 받기 전에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이후에도 추가로 승모판막 폐쇄부전, 심실 기능 저하, 폐동맥 저항 상승 등의 문제점들이 나타났다. 여러 위험 요소들을 가지고 있어 이대로는 폰탄 수술까지 기다릴 수 없을 뿐 아니라 수술을 하더라도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매우 위험한 상태였다.

여러 번의 검사와 토의 끝에 심장 이식에 희망을 걸어 보기로 했다. 다행히 일년의 시간이 경과한 시점(출생 후 21 개월)에 공여자가 나타나 심장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공여자는 생후 12개월로 환자보다 더 작은 아기였다. 심장 이식 수술 후에도 4일 동안 에크모라는 심폐 보조 장치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나 공여자의 작은 심장은 4일 만에 환아의 몸에 적응하여 새로운 삶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이 역시 기적이 아닐까?)
아이는 이제 중학생이 되었다.
행간에 묻기에는 너무도 많은 절망과 기적의 순간들이 이어졌었다.

증례 2.

작고 가냘픈 아이는 늘 얼굴에 불편함을 띠고 우는 소리를 많이 한다.
진료실에는 엄마, 아빠, 동생까지 네 식구가 항상 함께 들어온다.
태어나 8살이 되기 전에 이러 저러한 수술을 여섯 차례나 받았으니 병원 나들이는 얼마나 무섭고 짜증이 나겠는가?
아이는 무비증후군에 심내막상 결손, 매우 작은 좌심실, 폐동맥 협착, 총폐정맥 환류이상 등의 복잡한 선천성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최소한 세 번의 수술이 필요한 단심증 환자이다.
생후 6개월에 첫 심장 수술을 받았다. 변형된 양방향성 상대정맥-폐동맥 문합술 (Pulsatile BCS)이었다.
그런데 심방과 심실 사이의 판막 기능이 나빠져 생후 17개월에 인공 판막을 넣어 주어야만 했다(이 작은 심장에 성인 크기인 25 mm 기계 판막이라니). 다행히 심실 기능은 간신히 유지되고 있었다. 유미흉 이라는 합병증과 심낭 삼출로 세 번이나 작은 수술들이 필요했다. 게다가 청색증이 개선되지 않아 집에서도 산소 공급기를 사용해야만 했다.
통상적으로는 고식적 수술인 체-폐동맥 단락술을 고려하게 되지만 그렇게 하면 심실에 용적부하가 늘어나기 때문에 심실 기능이 위험하다. 그렇다고 일찍 폰탄 수술을 하기에는 위험 인자가 너무 많다.

상-하대정맥 사이의 샛길을 차단하고 기존의 폐동맥 판막 협착을 완화하는 방법을 시도하기로 했다. 3년 후 한차례 더 폐동맥 판막 협착과 우심실 유출로 협착에 대해 수술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후 순조로운 회복을 보였으며, 집에서 산소 공급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산소 포화도가 80%를 넘고, 심실 기능도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더욱이 간 기능도 정상이고 기타 다른 합병증 없이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

이제 아이는 아홉 살, 부모는 아이에게 성장 호르몬을 주고 싶어한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 아이와 온 식구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증례 3.

아이는 무비증후군에 심내막상 결손, 대혈관 전위, 폐동맥 폐쇄, 동맥관 개존 이라는 복잡한 단심증을 가지고 태어났다[사진3-1]. 뿐만 아니라 콩팥도 하나밖에 없었고 단백뇨도 보이고 있었다. 설상가상.

 

[사진 3-1] 무비증후군에 심내막상 결손, 대혈관 전위, 폐동맥 폐쇄, 동맥관 개존이 동반된 기능적 단심증.    출처: An Illustrated Guide to Congenital Heart Disease. In Sook Park, Springer Nature 2019.
출생 후 6주만에 통상적인 체-폐동맥 단락술 대신에 우심실과 폐동맥 사이에 6 mm 인조 혈관을 삽입해주는 수술을 받았다.
생후 8개월에 양방향성 상대정맥-폐동맥 문합술을 받았고, 산소 포화도와 심실 기능은 안정적이었다.
생후 3살에 폰탄 수술을 고려하였으나 여전히 위험 인자들을 감안하여 우심실과 폐동맥 사이에 조금 큰(8 mm) 인조 혈관을 넣어 주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하였다 (변형된 양방향성 상대정맥-폐동맥 문합술, Pulsatile BCS) [사진3-2].

[사진 3-2] 우심실과 폐동맥 사이 인조 혈관(화살표). Pulsatile BCS.
그리고 8년 후, 다시 한번 10mm 인조혈관으로 대치하였으며 이제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다.
간 기능 정상, 심실 기능 정상, 산소 포화도 85% 내외로 잘 유지되고 있으며, 단지 콩팥 문제로 투약 관찰 중이다.

@ 폰탄 수술, 꼭 따라야 하는가?
이번 연재에서 살펴본 세 증례는 비슷한 또래에, 무비증후군을 바탕으로 한 매우 위험한 조합의 단심증 아이들이었다. 이 병은 비장이 없으므로 면역력이 저하되어 있고, 세균 감염에 취약하며, 치료를 받지 않으면 95%가 돌 전에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폰탄 수술이 유일한 치료법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이번 증례의 아이들은 폰탄 수술을 받지 못할 정도로 위험 요소들을 가진 경우였다.
폰탄 수술이 선천성 복잡 심장병을 가진 아이들에게 복음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치료의 지평을 넓힌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한동안은 치료자와 환자 측 모두에게 증상의 호전과 만족감을 주었다. 여러 가지 심각한 합병증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러나 이제 그 합병증들에 대한 아래와 같은 합리적인 병태생리학적 해석이 가능 해졌다.
1. 높은 중심정맥 압력에 장 기간 끊임없는 노출되는 복부 장기들.
2.효율적인 심박출량 감소, 특히 복부 장기들로 가는 혈류의 감소(특히 Fenestrated Fontan에서)로 인한 증상들.
3.다양한 이상 혈관 형성(체-폐 측부혈관, 폐혈관 이상, 상-하대정맥간 샛길, 체-폐정맥 루, 간 내부 샛길)으로 인한 청색증의 재발(특히 Fenestrated Fontan에서).
4.이에 따른 하나뿐인 심실에 대한 용적 부하와 심실의 구조적 문제로 인한 기능 저하.

무엇 보다도 근본적인 문제는 ‘우심실의 기능이 없다’는 사실로 인해 이러한 모든 합병증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단심증 환자들은 체순환과 폐순환이 섞이기 때문에 청색증이나 심한 심부전을 나타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체순환과 폐순환의 분리(폰탄 수술)가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우심실의 기능을 포기하는 대가로 높은 산소 포화도를 얻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만큼의 산소 포화도가 우리 몸이 성장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일까?
또한 그 산소 포화도의 유지를 위해 치명적인 합병증들을 얼마만큼 감수해야 하는 것인가?

이번 연재에서 심장 이식을 받았던 첫 번째 아이를 제외한 두 아이는 산소 포화도 85% 전후 에서도 잘 커가고 있다. 게다가 간 기능은 정상이며 다른 합병증도 보이지 않는다. 앞선 연재에서 보았듯이 심각한 합병증을 가진 환자들도 비록 운동능력은 떨어지더라도 다행히 지적 발달이나 성취도는 유지되고 있었다. 이러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단심증 환자들의 치료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그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1.폰탄 수술의 적응을 좀더 신중히,
구조적으로 한쪽의 심실이 없는 경우(삼첨판막 폐쇄, 좌심형성 부전증 등)에는 어쩔 수 없이 폰탄 수술로 갈 수밖에 없다. 원래 닥터 폰탄이 수술했던 환자들도 삼첨판막 폐쇄증이었으며 우심방의 입/출구에 인공 판막을 삽입함으로써 우심실 역할을 하리라 기대하였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2.그러나 심실을 일부라도 사용할 수 있는 경우(증례 2, 3), 폐동맥 판막을 넓혀주거나, 우심실에서 폐동맥으로 도관을 삽입해서라도 심실에서 폐동맥으로 혈류를 보내는 변형된 양방향성 상대정맥-폐동맥 문합술(Pulsatile BCS)을 만들어 주면, 산소 포화도는 폰탄 수술을 했을 때보다 낮더라도 주요 복부 장기들의 합병증 없이 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3.가능하면 적극적으로 양심실의 기능을 만들어 가려는 시도(Ventricle recruitment)들이 필요하다. 연재-17에서 살펴본 증례와 다음 연재 증례.
4.심장 이식, 증례 1처럼 행운이 따르지 않으면 기회를 만나기 어렵지만 향후 이종 심장 이식의 발전을 기대해 볼 수 있겠다.
5.체내 삽입이 가능한 우심실 보조장치 개발에 대한 기대도 있다.

Are we doing the right thing?
Are we doing the thing right?

    서동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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