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전 소설 ‘유토피아’의 병원은 어떤 모습?

[김영훈의 참의사 찐병원]

‘완벽한 이상향’ 유토피아에 가장 가까운 병원은 어떤 모습일까? [사진=토마스 모어]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1516년)는 가공의 이상향(理想鄕)을 그린 공상소설이다. 무려 500년 전에 이러한 소설을 썼다니! 모어의 천재성이 충분히 느껴진다. 한반도에서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음을 고려하면 시대를 일찌감치 앞서간 공상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유토피아》가 사회주의의 원류 중 하나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모어가 1500년대 영국 왕족 정치의 타락과 모순, 탄압에 반대해 이 소설을 썼다는 평가가 더 설득력 있다. 실제 모어는 헨리 8세에게 반역죄 처벌을 받았고, 도끼에 목이 잘려 1535년에 5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유토피아는 일종의 섬이다. 사방 길이가 대략 322km이므로 남한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안에는 똑같은 면적과 똑같은 법률, 관습을 지닌 54개 도시가 있는데, 한 도시에는 6000세대가 지낸다. 1세대에는 10~16명의 가족이 산다. 지금 기준으로 식구가 매우 많지만, 중세 시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다. 보통 12명이 한 가족이라면 12명x6000세대x54개 도시=388만8000명이 살아가는 셈이다. 높게 잡아도 400만 명을 넘지 않으므로 인구 밀도는 매우 낮은 편이다.

그런데 유토피아의 각 도시에는 4개의 병원이 있다. 54개 도시를 총합하면 216개의 병원이 있게 된다. 1개 병원이 대략 1만8000명을 돌봐야 한다는 계산이다. 이를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인구 18만 명의 소도시에 10개 병원이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 매우 적은 숫자이다.

유토피아는 행복과 평등, 도덕, 근면을 중히 여기는 사회인데 1개 병원이 1만8000명을 보살펴야 한다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가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이곳의 병원들은 상당히 현대적이고 규모도 크다. 모든 병원은 공공 병원으로 작은 마을로 보일 만큼 널찍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환자들이 아무리 많더라도 번잡하고 비좁은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전염성이 강한 질병을 최대한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능숙한 의사들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간호사들이 환자들을 돌본다. 오늘날 한국의 대형 종합병원에서 누구나 겪어야 할 번잡함을 떠올리면 모어의 미래 설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전염성을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그의 천재성마저 느끼게 한다. 정확히 추정할 수는 없지만, 모어는 1346년에 시작되어 1353년까지 유럽 전역을 강타하며 1억 명을 희생시킨 흑사병을 염두에 두고 전염성 질병 예방을 강조했을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1도시 4병원’이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나아가 유토피아에서는 1일 6시간 노동이 철칙이고 완전한 민주주의이며 치열한 경쟁이 없고 도박, 사치, 범죄, 이혼, 미신, 부의 축재가 없다. 그런 곳에서 산다면 아플 일도 없고, 덩달아 병원도 필요 없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이상향을 실제로 구축한다면 병원은 정말 무용지물이 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토피아에 가장 가까운 병원은 어떤 꼴일까? 다음 주부터 전망과 이슈에 대해 하나하나씩 짚어보려고 한다. 스마트 시티의 스마트 병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떻게 대처해야 바람직할 지에 대해서…

    김영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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