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명퇴 남편의 후회 “가족부터 챙겼어야”

[김용의 헬스앤]

중년 부부에게 가장 중요한 가족 사랑은 ‘내가 건강한 것’이다. 아파서 누워 지내는 아빠, 엄마를 상상해보자. 자녀들의 마음 고생이 심하고 집의 분위기는 최악이 될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하루 종일 집에 있다 보니 애들하고 서먹해요. 대화도 어렵고...내가 수십 년 동안 돈 버는 기계 역할만 한 것 같아요...”

50대 초반에 회사에서 명퇴한 A씨는 한동안 ‘집안 적응’이 쉽지 않았다. 어느덧 20세가 훌쩍 넘은 자녀들은 아버지가 집에 있는 게 불편한 눈치였다. A씨처럼 50~60대 남성들은 ‘회사형 인간’이 많다. 가정보다는 회사에 올인해 주말에도 접대 골프 등으로 집을 비우기 일쑤였다. 모처럼 잡은 가족 모임도 회사 회식을 핑계로 단칼에 취소하는 일이 잦았다. 지방 근무로 주말부부가 되면 가족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그는 말이 명퇴(명예퇴직)지 회사에서 밀려 나온 케이스다. 인사부에서 ‘신호’를 줬을 때 A씨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25년 동안 오직 회사만 바라보며 청춘을 바쳤는데, 나이 드니 나가라?... 그는 퇴직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울적하다. 가족보다 먼저 챙겼던 회사 후배들 중 지금도 연락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후배들을 위해 윗선에 ‘바른말’을 하느라 찍히기도 했지만, 그의 덕을 많이 본 후배도 감감무소식이다. 역시 회사는 이해관계로 뭉친 집단이라는 생각에 후회가 밀려온다.

남편이 명퇴하면 아내, 자녀 모두 비상이다. 식구(食口-같은 집에서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가 아니었던 아버지가 뒤늦게 식구가 된 것이다. 취업 준비생인 막내딸과는 삼시세끼 식구여서 아빠도, 딸도 영 불편하다. 남편은 꼰대 분위기는 풍기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쉽지가 않다. 청소, 요리에도 열심인데도 아내와 딸은 영 불만인 눈치다. 얼굴을 안 보여주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에 시간 날 때마다 산을 오른다.

이런 상황은 운 좋게 60세 정년 퇴직을 해도 마찬가지다. 무뚝뚝한 남편, 아빠가 하루 종일 집에 있을 것을 상상하면 숨이 막힌다. 아내는 퇴직 후 3~6개월은 남편을 위로하고 여행도 권하지만 ‘휴식’이 길어지면 마음이 심란하다. 대기업 출신이라도 50대 재취업은 매우 어렵다. 힘들게 작은 회사에 들어가도 월급은 3분의 1 이하로 쪼그라든다. 이마저도 1년 정도 다니면 다시 퇴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55~64세(2022년 기준) 대상 설문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에서 그만둘 당시 평균 연령’은 49.3세(남자 51.2세, 여자 47.6세)였다. 올해는 경기 불황으로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 명퇴자가 더 쏟아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막상 회사를 나오면 이전 직장과 대우가 비슷한 회사에 취업할 확률은 손에 꼽을 정도다. 50세에 명퇴하면 65세 국민연금 수령까지 길고 긴 ‘연금 보릿고개’를 버티어야 한다. 연금이 나올 때까지 ‘주린 배’를 움켜쥐어야 한다. 아들, 딸이 아직 학생이라면 밤잠을 못 이룬다.

중년의 은퇴자 앞에는 여러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퇴직 선배들은 ‘돈, 건강, 취미, 친구’ 등을 거론하지만 경제적 자유 없이는 다른 것에 신경 쓸 엄두가 안 난다. 친구 모임 때마다 계산을 꺼린다면 누가 반길 것인가. 돈 몇 만원에 친구들에게 이내 찍히고 만다. 그래서 질 낮은 일자리를 전전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노인 빈곤과도 이어진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선진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차가 크다. 2019년 기준 한국 노인 빈곤율은 43.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3.5%)보다 3.2배 많은 1위였다.

지금의 중년 세대는 30세가 넘어도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자녀(‘캥거루족’)와 여러 질병을 앓고 있는 양가 노부모까지 부양해야 하는 위기의 세대다. 매달 자녀 용돈과 노부모의 치료비까지 부담하면 중년 부부의 품위 유지는 거의 불가능하다. 해외여행으로 미어터지는 공항 로비 모습은 나와는 거리가 멀다. 매번 돈 문제가 불거지면 사이좋던 부부 사이도 냉랭해진다. 늦둥이 아들의 학업 뒷바라지를 못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찢어진다.

나는 은퇴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담배부터 끊고 술을 절제하며 매년 돌아오는 국가 건강검진은 꼭 받아야 한다. 귀찮다고 검진을 건너뛰다 보면 암을 늦게 발견할 수 있다. 조기 암은 치료가 쉽고 돈이 덜 들지만 꽤 진행된 암은 막대한 치료비가 든다. 요즘은 암 4기라도 신약만 쓰면 치료가 가능한 경우가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신약은 건강보험이 안 돼 약값을 모두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퇴 후 하나 남은 집까지 팔아야 한다.

남의 일로 여겼던 ‘메디컬 푸어(Medical Poor)’가 되면 가족 관계에도 위기가 닥칠 수 있다. 부부의 편안한 노후는 물 건너 간다. 자식들과도 다시 소원해질 수 있다. 물론 이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는 가족도 있지만, 아버지의 병 때문에 살던 집을 팔고 초라한 월세방을 얻을 때 자녀들의 심경은 어떨까? “그렇게 담배 끊고 술 줄이라고 잔소리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는 원망의 마음만 가득할까?

암은 술-담배 뿐만 아니라 유전, 환경, 대기 오염 등 여러 요인이 뒤섞여 있다. 환자의 나쁜 생활 습관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하지만 꾸준히 건강 관리를 한 사람은 위험도가 적은 게 사실이다. 40세 이상은 2년마다 위내시경(건강보험 가입자)을 받을 수 있다. 위암 예방 및 조기 발견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런데도 2020년에만 2만 6662명의 신규 환자가 쏟아졌다.

중년 부부에게 가장 중요한 가족 사랑은 ‘내가 건강한 것’이다. 아파서 누워 지내는 아빠, 엄마를 상상해보자. 자녀들이 힘들어하고 집안 분위기는 최악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규정한 최악의 발암 물질인 담배는 무조건 끊어야 한다. 간접 흡연도 피해야 한다. 중년의 은퇴자에게 다시 말하고 싶다. 회사를 위해 술을 마셨다면, 이제는 가족을 위해 자제하라고.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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