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20대 교사 죽음으로 몰았나… "학교가 트라우마 현장"
정신건강전문의 "학교 현장의 인권 교육 되돌아봐야"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20대 새내기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교직원 공동체를 비롯해 사회 전체가 큰 충격에 빠졌다. 과연 무엇이 열정적이었던 젊은 선생님을 벼랑까지 몰았을까?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인권'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교육 현장이 결국 잇따른 비극을 만드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교사 등 사람 상대 직업군 스트레스와 트라우마 높아"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특임이사와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찬승 마음드림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학교 교사, 민원 담당 공무원 등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를 하는 분들의 스트레스가 매우 높다"면서 "실제로 많은 교사와 민원 담당 공무원이 극심한 스트레스와 소진, 트라우마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성을 간과하고 오로지 자신이 가진 힘으로만 상대를 제압하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여기는 '갑질'이 이들을 짓누르는 원인 중 하나"라면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경우 신체·정신적 에너지가 모두 고갈돼 소진 증후군 상태에 이를 수 있는데, 심한 경우 피로감, 불안감뿐만 아니라 삶의 의미까지 잃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성모공감정신건강의학과 송민규 원장 역시 "스트레스가 극한으로 치달을 경우 이성적 사고가 마비되는 경우가 있다"면서 "본인이 도움 받을 곳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지할 곳이 전혀 없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송 원장은 "학교에서 학생들이 심리상담을 받는 경우는 있지만, 아무래도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시선 속에서 교내 상담을 어려워하는 사례가 많은 것 같다. 실제 병원을 찾는 교사 환자분들이 다소 늘었는데, 학생에게 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교내 상담을 받으시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6학년 제자에게 폭행당해 전치 3주 진단을 받았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 따르면 교권보호위원회 심의 건수 기준 최근 6년 간(2017∼2022년) 교원 상해·폭행은 1249건이다. 이 중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일은 2018년 165건에서 2022년 347건으로 4년 동안 약 2.1배 늘었다.
인권과 존중 없는 곳엔 상호 '갑질'만
이번 사례를 교육 현장의 인권 교육을 되돌아 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 원장은 교육 현장을 비롯 공공서비스가 이뤄지는 여러 곳에서 인간 존중 교육을 강화함과 동시에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학생 인권과 교사 인권을 분리하면 서로 대결구도가 형성된다”고 지적했다. 즉, 학생의 인권을 강조하고자 교사가 희생하거나 교사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학생의 인권을 무시하는 식이 돼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송 원장은 "어떤 교사분들에게 학교는 트라우마의 현장이 되어버렸다. 때문에 적극적으로 학생의 활동이나 생활에 개입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고 하소연하시는 분들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학교가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 A씨는 지난 18일 오전 교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소식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며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A씨의 사망 경위를 온라인에서는 각종 추측이 퍼졌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은 “해당 교사는 1학년 담임 및 학폭 업무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사망 원인에 대해 학교폭력이 주요한 원인일 수도 있다는 의견이 SNS상에서 유포되고 있다”며 교육당국과 경찰의 철저한 진상 조사 및 수사를 요구했다.
20일 A씨가 근무한 서이초등학교는 소셜미디어에서 올라온 여러 의혹들을 부인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고인의 담당 업무는 학교폭력 업무가 아닌 나이스 권한 관리 업무였으며, 유력 정치인의 가족(자녀)이 학급에 없다는 점 등이 골자였다. 그러나 이같은 학교의 입장 발표를 두고 오히려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고인에 대한 추모와 진상규명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변명에만 급급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학교는 본인이 원해서 1학년 학급을 맡았다고 해명했지만, 배려가 부족한 조치였다는 지적도 나왔다. 1학년의 학교 적응기에 대한 내용을 담은 ‘오늘 학교 어땠어?’의 저자이자 '초등샘Z'라는 이름으로 트위터를 운영하는 20여 년차 초등학교 교사는 “신규 교사에겐 1학년 담임을 맡게 하면 안되는 거다. 모든 학년 중 가장 민원이 많고 학부모와 연락할 일이 너무나 많은 학년이다. 어지간한 경력자들도 학부모 응대가 너무 힘들어 1학년을 꺼리는데 신규 교사에게 1학년 담임을 주다니”라고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