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실 하나로도 빛났던 아이, 하늘의 별로 뜨다

[서동만의 리얼하트 #19] 단심증 (1)

아이는 단심증에도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으로 크고 싶어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멀리서도 눈에 띄는 아이였다.
키가 크고 좀 수척하며 창백한 얼굴, 그래서 큰 눈동자는 더욱 크고 까맣게 보이는 아이.
말수가 적고 무언가 깊이 생각하며 천천히 움직이는 아이.
기린 같았다.
아이는 부모님의 유학 시절 일본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런데 복잡 선천성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나 백일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수정 대혈관 전위, 심실중격 결손, 매우 작은 우심실, 폐동맥 고혈압이라는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진, 요약하자면 폐동맥 고혈압이 있는 단심증이었다[사진1].

[사진1] 환아의 심장 모형.
다행히 그곳 의료진의 정성스러운 보살핌과 ‘폐동맥 밴딩’이라는 수술[사진2] 후 잘 적응하며 자랐다.

[사진2] 폐동맥 밴딩(화살표).
나에게는 11살이 넘어서 처음 찾아오게 되었다. ‘폰탄 수술’을 받기엔 조금 늦은 시기였다.
(지금이라면 서너 살 무렵 수술을 마쳤을 것이다. 그러나 88서울올림픽 당시라면 아직
국내에서 폰탄 수술은 어려운 수술이었다. 또한 폰탄 수술 전 단계인 ‘양방향성 대정맥-폐동맥 문합술’을 국내에서는 필자가 1989년 처음으로 학회지에 보고한 상태였다.)

지체없이 폰탄 수술[사진3]을 시행했다.

[사진3] 폰탄 수술 모식도(Lateral Tunnel Fontan).
수술은 순조로웠고 아이는 무사히 회복했고 주위는 환해졌다.
게다가 신체적인 제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과학 영재로 자라주었다.
‘단심회’ 멤버들의 귀감이며, 희망으로, 기린아로.

발심한 아이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에이즈 연구에 매진하였으며, 후일 다른 환자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수술 후 12년이 지나면서, 폰탄 수술 후 나타나는 심각한 합병증 중 하나인 단백 소실 장병증(Protein-losing enteropathy)이 발생하였다. 여러 가지 투약과 기다림에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다.

정밀 검사 후 다시 개심 수술을 시행했다. 전체적인 디자인을 바꾸고, 좁아진 대동맥으로 나가는 길을 좀 더 넓혀주며, 오른쪽 혈류 체계의 압력을 조금 떨어뜨리는(Fenestration) 수술이었다.
부정맥도 발생(심방 조동, 방실 블록)하여 이에 대한 인공 심박동기도 필요했다.
그러나 여러 노력에도 아이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이제 남은 하나의 방법은 심장 이식을 기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간 기능이 문제였고, C형 간염이 동반된 상태라 이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스물 다섯이었다.
그렇게 아이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슬픔을 남기고 떠나갔다.

“이는 본인의 죄도 아니고 부모의 죄도 아니다.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다” (요한 9:3)
“Neither this man nor his parents sinned” said Jesus,
“but this happened so that the Work of God might be displayed in his life”
(John 9:3)

아이가 마음 속 깊이 항상 간직하고 있었던, 너무도 사랑했던 부모님께 남기고 간 위로의 글이었다.

@ 단심증이란?

앞선 연재 16-18에서 설명하였듯이 정상 심장은 체순환을 담당하는 좌심실과 폐순환을 담당하는 우심실이라는, 각각의 구조가 현저히 다른 두 개의 심실(양 심실)로 구성된다. 그러나 발생 과정에서 어느 한쪽의 심실이 누락되거나, 크기가 현저히 작거나, 심각한 정도의 판막 이상이 있거나, 심방/심실/대혈관의 연결에 이상이 있는 경우 등이 있을 수 있고, 이러한 상태를 ‘단심증’ 혹은 ‘기능적 단심증’ 이라고 부른다.

좌심실에서 120/80mmHg의 압력으로 내보내진 산소 포화도가 높은 혈액은 우리 몸 구석구석까지 산소를 전달하여 세포 하나하나가 ‘산소 대사’를 이어갈 수 있게 해준다(체순환). 이 대사의 결과 이산화탄소가 높아진 혈액은 우심방을 거쳐 우심실로 돌아와 30/15mmHg의 압력으로 폐로 보내지게 된다. 폐의 말단 구조인 허파꽈리에서 이산화탄소는 산소로 바뀐 후 좌심방을 거쳐 좌심실에 이르게 되며(폐순환), 이어서 다음 순환이 또 시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릴레이를 하듯이 매끄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체순환과 폐순환은 중간에 새면(섞이면) 안 되며, 릴레이 교대 시 정량적으로 일대일(1:1)의 관계가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데 단심증인 경우, 체순환 혈액과 폐순환 혈액이 심장 내에서 섞이게 되며, 정량적으로 일대일의 관계도 부서지게 된다. 그 결과 주로 청색증이나 심부전이라는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는 살아갈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치료는 투약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수술적인 방법이 필요하게 된다. 그 여러 가지 방법들(체-폐동맥 단락술, 폐동맥 밴딩)을 ‘고식적 수술’이라고 부르며 ‘폰탄 수술’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것이 최선의 길이었다.

@ 폰탄(Fontan) 수술이란?

프랑스 흉부외과 의사 폰탄(Francis Fontan)이 처음 성공한 수술이다. 1968년부터 청색증을 띠는 3명의 복잡 선천성 심장병 환자들에게 시행하여 2례에서 성공한 결과를 1971년 발표하였다. 이 후 복잡 선천성 심장병을 가진 환자들에 있어서는 복음으로 여겨지고 있다.

핵심은 삼첨판막 폐쇄증이라는 우심실이 없는 선천성 심장병[사진4-가]에 대하여, 상대 정맥을 오른쪽 폐동맥에 연결해주고, 우심방을 주폐동맥에 연결해주면서, 우심방 아래위로 인공 판막을 심어주어, 우심방이 우심실의 기능을 대신 해주기를 기대하고 시행한 수술이었다[사진4-나].

[사진4] (가) 삼첨판막 폐쇄(화살표)증의 모식도. (나) 폰탄 수술 후, 우심방 아래/위에 삽입된 인공판막(화살표).

이렇게 하여 체순환과 폐순환을 섞이지 않게 분리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 환자들의 청색증은 사라지고 임상적으로 드라마틱한 호전을 보여 학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심어준 인공 판막들은 당연히 그 기능을 잃게 되었고, 그리하여 그 인공 판막들은 제거되었다. 그러나 우심실 기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의 상태는 잘 유지되는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되었다. 이후에는 대다수의 흉부외과 의사들이 처음부터 인공판막 없이 전체적인 수술 디자인을 하여 소기의 성적을 얻게 되었다.

이에 1980년 흉부외과 학회에서는 복잡 선천성 심장병 치료의 지평을 넓힌 것으로 치하받기에 이른다(Fontan’s operation: an expanded horizon. J Thorac Cardiovasc Surg. 1980).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변형된 수술 기법들이 제시되었으며, 이제는 도관(인조 혈관)을 이용하여 하대 정맥을 폐동맥에 연결해주고 상대 정맥은 직접 폐동맥에 연결해주는 기법[사진5]이 기본으로 자리잡았다. 병의 조합에 따라 신생아 시기에 일차, 돌 전에 이차(이 과정은 생략되기도 한다), 두세 살 경에 삼차의 과정을 거치며, 결과적으로 두 번 혹은 세 번의 수술로 나누어 치료 받게 된다. 이 환자의 경우 2차 수술은 건너뛰고 바로 폰탄 수술을 받았다.

[사진5] 심장 외 도관(화살표) 폰탄 수술 모식도(Extracardiac Fontan).
폰탄 수술 후 환자들의 청색증은 몰라보게 호전되어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믿게 되었다. 그러나 정상적인 우심실의 기능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 여파가 쌓여 다양한 문제들(합병증)이 나타나게 되었다.

우심실이 있어야만 우심방의 압력이 낮게(<5mmHg) 유지되어 체순환을 거친 혈류가 수월하게 돌아올 수 있다[사진6]. 또한 우심실의 추진력(수축 기능)이 있어야 폐동맥에 걸리는 30/15mmHg의 압력을 이겨내고 허파꽈리까지 폐순환 혈류가 닿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심실의 기능이 없는 상태는, 몸속의 모든 정맥 체계를 높은(10-15mmHg) 압력에 지속적으로 노출시키게 되어 다양한 문제점(합병증)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모든 환자에서 예외없이 수술 직후부터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문제이다.

[사진6] 정상 심장, 우심방 압력(< 5 mmHg), 폐동맥 압력(30/15 mmHg).
*출처: An Illustrated Guide to Congenital Heart Disease. In Sook Park, Springer Nature 2019.
이 환자의 경우에서 치명적이었던 ‘단백 소실 장병증’도 그중 하나이다.
다음 회에서는 단백 소실 장병증에 대한 증례를 좀더 살펴보기로 한다.

 

 

    서동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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